작은 ‘술잔’이 당부하는 중용(中庸), 그 속에 담긴 한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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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미술평론가‧크래프트믹스 대표 홍지수의 ‘공예 완상’
과거나 지금이나 술 한 잔에서 하루 고단함을 잊고 즐거움을 얻으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고려와 조선시대 문헌에 보면, 술을 절친한 붕우(朋友)로 칭하고 시로 읊은 선비들이 많다. 만약 ‘술’이 없었다면, 그들이 읊었던 시가 그만큼 유창할 수 있었을까? 분명 ‘술을 그만 마시라.’라는 아내의 성화가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과음을 자제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술을 스스로 절제하거나 멀리하기 쉬웠다면, 시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문학과 기사에 그토록 과음으로 인한 폐해 기록되어 있을 턱이 없다.
술은 즐겁지만 어두운 면도 있다. 과음하게 되면 몸을 해치고 사고가 날 수도 있다. 해야 할 일을 숙취 때문에 하지 못하거나 전날 술로 저지른 실수를 해명하거나 만회하는 데 쓸데없는 기력을 낭비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옛 선비들이 술 마시는 즐거움을 시로 풀어내면서도, 과음을 경계한 시 또한 잇따라 남긴 이유다.
술뿐 아니라 무엇이든 ‘적당히’가 관건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적당히’라는 말은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어디까지 적정한가 모호하다. 서양인들의 과학적이고 실리적인 사고에 따라 누군가 ‘이만큼이 ‘중간이다’ 수치화하고 함의하면 편할까? 그러나 그것은 숫자에 불과하다. 기계적 절충은 오히려 참된 중간, 적절함(opium)을 망친다. 술 뿐 아니라 인간이 하는 모든 일, 처신, 관계에 모두 적당함이 필요하다. 동양철학에서는 현자들은 ‘적당함’을 각자의 언어로 달리 말한다. 공자는 ‘자기 뜻과 이상을 지키고 나아가나, 상황에 맞게 그 뜻을 적절하게 펼쳐나가는 것’을 중용(中庸)이라고 했다. 중용은 극단적인 것, 쏠림을 피하고 올바른 중간을 지향하는 것이다. 자연이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처럼, 공자는 인간의 몸과 생활 방식, 타인과의 인간관계와 소통, 거시적으로 국가정치에서조차 중용의 도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맹자는 중용을 두고 무엇이라 말했을까? 맹자는 송구천(宋句踐)에게 “그대는 인생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어도 혹은 몰라주어도 상관없이 초연하게 자족하고 거듭 자족하라.”했다. 욕구 앞에서 ‘초연’ 할 것. 즉 맹자는 평온함이 답이라고 말한 셈이다. 평상심을 갖고 더 마시고, 더 갖고 싶은 욕구로부터 초연하려면 결국 욕망하지 않아야 할 것을 욕망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옛 현자들의 예법과 스님들의 절제된 삶에 감히 이르지 못할 범인들은 내 안에 분명히 있을 ‘중용’, 그 적절함을 이해하기도, 자제하기도, 지키기도 어렵다. ‘술’ 앞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인간의 필요와 이기를 늘 고민하여 적당한 솜씨를 부리는 장인들은 범인이 적절한 음주를 즐기는데 요긴할 물건을 만들었다. 바로 ‘계영배(戒盈杯)’다. 7할 이상 술을 채우면 관한 욕심을 경계하는 뜻으로 훌쩍 밑으로 흘려 버린다. 과음 또는 넘침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의 다른 이름은 절주배(節酒杯)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계영배’는 공자(孔子)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찾았을 때, 환공이 스스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의기(儀器)’에서 비롯되었다. 술을 붓다 어느 순간 사라지는 신기한 잔을 보고 감동해 공자 역시 평소 계영배를 곁에 두고 즐겨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기록에는 조선시대 실학자 하백원(1781∼1844)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백자를 굽던 분원 장인이었던 우명옥의 원래 이름은 ‘우삼돌’이다. 그는 20여년간 노력하여 솜씨 좋은 장인이 되었고 순조대왕에게 백자 반상기를 진상한 공을 인정받아 ‘명옥’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자다. 우명옥의 솜씨가 유명세를 타며 인기를 끌자, 그는 우쭐함에 번 돈을 수시로 기녀집에 가 탕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야심한 밤 배를 탔다가 폭풍우에 죽을 고비를 겪었다. 깨우침을 얻어 다시 장인의 길로 매진하던 중 지인이자 조선 후기 실학자 하백원(1881-1844)의 권유와 지도로 만든 술잔이 ‘계영배’다. 후일 우명옥은 스승에게 계영배는 바쳤고, 이것이 거상 임상옥(林尙沃,1779∼1855)에게 전해졌다. 이 전사에 모티브를 얻어 쓴 현대 문학이 최인호 작가의 <상도>라는 소설이다.
하백원이 우명옥에게 알려주었다는 계영배의 제작원리는 무엇일까? 계영배에는 사이펀(Siphon) 원리가 숨어있다. 사이펀은 압력 차로 작동한다. 사이펀이 작동하려면 관은 액체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가득찬 액체 표면에 대기압이 작용하면 누르는 힘이 차오른다. 잔을 기울인 것도 아닌데, 계영배 내부 구부러진 관에 술이 담뿍 차면 압력 차에 의해 높은 곳에 있던 액체가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술이 한번에 빠져나간다. 욕심에 대한 경고요, 작은 ‘술잔’이 당부하는 중용(中庸)의 가르침이다. 유려하고 멋진 주자 속 보이지 않게 사이펀의 원리를 숨겨놓고 재치 있게 과함을 방지하고 중도의 유익함을 권유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계영배에 담겨 있다. 최근 시중에 공예가들이 제작한 계영배가 간혹 보인다. 그러나 계영배가 과거만큼 대중적이지 않아서인지 오히려 옛것의 형태가 재미있다. 좀 더 다양한 계영배를 구경하고 싶다면, 국립중앙박물관, 리움미술관, 서울공예박물관 등을 찾아가 보자.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백자양각매화무늬계영배’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계영배를 볼 수 있다. 리움미술관은 ‘백자 음각 거북이형 계영배 받침’을 소장중이다. 서울공예박물관 3층 전시실에 올라가면 그곳에서 19세기 조선시대 무명의 장인이 제작한 ‘해치(獬豸)모양 계영배 잔대’를 볼 수 있다. 해치는 예로부터 선악을 구별하고 정의를 지키는 상상 속 동물이다. 불이 나거나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 준다고 믿어 궁궐의 앞에 쌍으로 배치한다. 서울공예박물관 소장품 계영배는 해치 등 위에 작은 술잔을 올려두고 해치가 뒤돌아보는 제스처다. 해치가 어디 얼마나 술을 따르나 보자 경계의 눈을 부릅뜨는 듯하나 입을 벌려 혀까지 빼꼼히 내민 표정이 무섭기보다는 익살맞다. 선악과 위법을 경계하는 해치를 계영배의 소재로 삼은 장인의 의도를 알아채면서도, 어째 어린 강아지가 제 몸집보다 큰 맹수를 호기롭게 짖고 쫓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도 난다. 작은 물건에서도 발견하는 우리 공예의 DNA-해학미다. 타인을 자칫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을 교훈을 부드럽게 풀어 감동과 재미로 다독이고 권유한다. 한국미술의 유의미한 태도이자 미적 특질이기도 하다.
도판1)
백자양각매화무늬계영배(白磁陽刻雙鶴文戒盈杯)
높이 9.7cm,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도판2)
백자양각매화무늬계영배 내부 이미지
도판3)
백자거북형계영배(白磁陽刻龜形戒盈杯)
높이 13cm,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도판4)
백자음각거북이모양계영배(白磁陽刻雙鶴文戒盈杯), 조선 ©삼성리움미술관
도판5)
백자해치모양계영배잔대(白磁獬豸形戒盈杯盞臺), 조선 19세기-20세기 초 ©서울공예박물관
술은 즐겁지만 어두운 면도 있다. 과음하게 되면 몸을 해치고 사고가 날 수도 있다. 해야 할 일을 숙취 때문에 하지 못하거나 전날 술로 저지른 실수를 해명하거나 만회하는 데 쓸데없는 기력을 낭비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옛 선비들이 술 마시는 즐거움을 시로 풀어내면서도, 과음을 경계한 시 또한 잇따라 남긴 이유다.
술뿐 아니라 무엇이든 ‘적당히’가 관건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적당히’라는 말은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어디까지 적정한가 모호하다. 서양인들의 과학적이고 실리적인 사고에 따라 누군가 ‘이만큼이 ‘중간이다’ 수치화하고 함의하면 편할까? 그러나 그것은 숫자에 불과하다. 기계적 절충은 오히려 참된 중간, 적절함(opium)을 망친다. 술 뿐 아니라 인간이 하는 모든 일, 처신, 관계에 모두 적당함이 필요하다. 동양철학에서는 현자들은 ‘적당함’을 각자의 언어로 달리 말한다. 공자는 ‘자기 뜻과 이상을 지키고 나아가나, 상황에 맞게 그 뜻을 적절하게 펼쳐나가는 것’을 중용(中庸)이라고 했다. 중용은 극단적인 것, 쏠림을 피하고 올바른 중간을 지향하는 것이다. 자연이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처럼, 공자는 인간의 몸과 생활 방식, 타인과의 인간관계와 소통, 거시적으로 국가정치에서조차 중용의 도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맹자는 중용을 두고 무엇이라 말했을까? 맹자는 송구천(宋句踐)에게 “그대는 인생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어도 혹은 몰라주어도 상관없이 초연하게 자족하고 거듭 자족하라.”했다. 욕구 앞에서 ‘초연’ 할 것. 즉 맹자는 평온함이 답이라고 말한 셈이다. 평상심을 갖고 더 마시고, 더 갖고 싶은 욕구로부터 초연하려면 결국 욕망하지 않아야 할 것을 욕망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옛 현자들의 예법과 스님들의 절제된 삶에 감히 이르지 못할 범인들은 내 안에 분명히 있을 ‘중용’, 그 적절함을 이해하기도, 자제하기도, 지키기도 어렵다. ‘술’ 앞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인간의 필요와 이기를 늘 고민하여 적당한 솜씨를 부리는 장인들은 범인이 적절한 음주를 즐기는데 요긴할 물건을 만들었다. 바로 ‘계영배(戒盈杯)’다. 7할 이상 술을 채우면 관한 욕심을 경계하는 뜻으로 훌쩍 밑으로 흘려 버린다. 과음 또는 넘침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의 다른 이름은 절주배(節酒杯)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계영배’는 공자(孔子)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찾았을 때, 환공이 스스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의기(儀器)’에서 비롯되었다. 술을 붓다 어느 순간 사라지는 신기한 잔을 보고 감동해 공자 역시 평소 계영배를 곁에 두고 즐겨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기록에는 조선시대 실학자 하백원(1781∼1844)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백자를 굽던 분원 장인이었던 우명옥의 원래 이름은 ‘우삼돌’이다. 그는 20여년간 노력하여 솜씨 좋은 장인이 되었고 순조대왕에게 백자 반상기를 진상한 공을 인정받아 ‘명옥’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자다. 우명옥의 솜씨가 유명세를 타며 인기를 끌자, 그는 우쭐함에 번 돈을 수시로 기녀집에 가 탕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야심한 밤 배를 탔다가 폭풍우에 죽을 고비를 겪었다. 깨우침을 얻어 다시 장인의 길로 매진하던 중 지인이자 조선 후기 실학자 하백원(1881-1844)의 권유와 지도로 만든 술잔이 ‘계영배’다. 후일 우명옥은 스승에게 계영배는 바쳤고, 이것이 거상 임상옥(林尙沃,1779∼1855)에게 전해졌다. 이 전사에 모티브를 얻어 쓴 현대 문학이 최인호 작가의 <상도>라는 소설이다.
하백원이 우명옥에게 알려주었다는 계영배의 제작원리는 무엇일까? 계영배에는 사이펀(Siphon) 원리가 숨어있다. 사이펀은 압력 차로 작동한다. 사이펀이 작동하려면 관은 액체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가득찬 액체 표면에 대기압이 작용하면 누르는 힘이 차오른다. 잔을 기울인 것도 아닌데, 계영배 내부 구부러진 관에 술이 담뿍 차면 압력 차에 의해 높은 곳에 있던 액체가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술이 한번에 빠져나간다. 욕심에 대한 경고요, 작은 ‘술잔’이 당부하는 중용(中庸)의 가르침이다. 유려하고 멋진 주자 속 보이지 않게 사이펀의 원리를 숨겨놓고 재치 있게 과함을 방지하고 중도의 유익함을 권유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계영배에 담겨 있다. 최근 시중에 공예가들이 제작한 계영배가 간혹 보인다. 그러나 계영배가 과거만큼 대중적이지 않아서인지 오히려 옛것의 형태가 재미있다. 좀 더 다양한 계영배를 구경하고 싶다면, 국립중앙박물관, 리움미술관, 서울공예박물관 등을 찾아가 보자.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백자양각매화무늬계영배’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계영배를 볼 수 있다. 리움미술관은 ‘백자 음각 거북이형 계영배 받침’을 소장중이다. 서울공예박물관 3층 전시실에 올라가면 그곳에서 19세기 조선시대 무명의 장인이 제작한 ‘해치(獬豸)모양 계영배 잔대’를 볼 수 있다. 해치는 예로부터 선악을 구별하고 정의를 지키는 상상 속 동물이다. 불이 나거나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 준다고 믿어 궁궐의 앞에 쌍으로 배치한다. 서울공예박물관 소장품 계영배는 해치 등 위에 작은 술잔을 올려두고 해치가 뒤돌아보는 제스처다. 해치가 어디 얼마나 술을 따르나 보자 경계의 눈을 부릅뜨는 듯하나 입을 벌려 혀까지 빼꼼히 내민 표정이 무섭기보다는 익살맞다. 선악과 위법을 경계하는 해치를 계영배의 소재로 삼은 장인의 의도를 알아채면서도, 어째 어린 강아지가 제 몸집보다 큰 맹수를 호기롭게 짖고 쫓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도 난다. 작은 물건에서도 발견하는 우리 공예의 DNA-해학미다. 타인을 자칫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을 교훈을 부드럽게 풀어 감동과 재미로 다독이고 권유한다. 한국미술의 유의미한 태도이자 미적 특질이기도 하다.
도판1)
백자양각매화무늬계영배(白磁陽刻雙鶴文戒盈杯)
높이 9.7cm,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도판2)
백자양각매화무늬계영배 내부 이미지
도판3)
백자거북형계영배(白磁陽刻龜形戒盈杯)
높이 13cm,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도판4)
백자음각거북이모양계영배(白磁陽刻雙鶴文戒盈杯), 조선 ©삼성리움미술관
도판5)
백자해치모양계영배잔대(白磁獬豸形戒盈杯盞臺), 조선 19세기-20세기 초 ©서울공예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