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중국산의 습격…EU 태양광 업계 '줄파산' 위기
유럽 태양광 업계의 일부 기업들이 줄파산 위기에 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 보도했다. 값싼 중국산 모듈 제품들이 역내에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판매 가격이 폭락하고 재고가 급증한 탓이다. 유럽연합(EU) 내에선 EU가 러시아에 이어 중국에 대한 과한 의존으로 ‘에너지 안보’가 또 한 차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FT에 따르면 태양광 모듈 생산에 투입되는 잉곳 생산업체인 노르웨지안크리스탈즈(Norwegian Crystals)가 지난달 파산을 신청했다. 이달 들어서는 잉곳과 웨이퍼 등을 만드는 노르웨이의 또 다른 태양광 업체인 노르선(NorSun)이 연말까지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EU 산하 태양광발전협회인 솔라파워유럽은 전날 EU 집행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유럽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중국 업체들의 유입으로 경쟁이 심화했고, 그 결과 연초 이후 태양광 모듈 가격이 평균 25% 이상 급락했다”며 “(유럽) 기업들은 급증한 재고를 평가절하된 가격에 내다 팔 수밖에 없게 됐으며, 이는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명확한 위험”이라고 호소했다.

솔라파워유럽은 특히 태양광 모듈 가격 하락이 “2030년까지 태양광 산업 자체 생산 용량을 30기가와트(GW)까지 늘리겠다는 EU의 목표가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짚었다.
값싼 중국산의 습격…EU 태양광 업계 '줄파산' 위기
EU는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45%를 태양광, 수소,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확보할 계획이다. 태양광은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비중이 가장 큰 전력으로 꼽힌다. 그러나 글로벌 태양광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유럽 시장에 침투해 들어오면서 EU의 에너지 자립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EU 태양광 수입량의 4분의 3을 중국산이 차지하고 있으며, 유럽 내 생산 비용의 절반 수준으로 태양광 모듈 가격을 대폭 끌어내렸다.

중국이 태양광 공급망을 공격적으로 장악해가는 동안 EU가 일관된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2012년 중국이 자국 태양광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기 시작하자 EU는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 불공정 경쟁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2018년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늘리는 과정에서 이런 규제를 들어냈다. 바로 다음 해 EU는 중국을 ‘체제적 경쟁자(systemic rival)’로 규정하고 협력보다는 견제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기업들에 중국으로부터의 ‘디리스킹(de-risking)’을 강조하고 나선 가운데서도 EU는 중국산 태양광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를 복원하지 않았다.

스위스의 마이어버거, 독일의 헤커트솔라 등 유럽 내 40여 개 태양광 설비 제조업체들도 EU 집행위에 별도의 서한을 보냈다. 해당 서한에는 EU가 태양광 발전 부품에 대한 지출액을 2016년 60억유로에서 2022년 250억유로 이상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중국산 패널이 과잉 공급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EU에 쌓여 있는 중국산 태양광 전지 재고량은 유럽 전체 연간 수요량의 두 배를 웃돈다.
자료=파이낸셜타임스
자료=파이낸셜타임스
유럽 태양광 업계는 중국 업체들이 낮은 가격에 2년 치 계약을 맺어 현물 가격을 지속해서 낮추는 방식으로 “덤핑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소 주문량과 독점 계약 등 조건을 달아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EU 집행위가 유럽 기업들의 재고를 일괄 사들이는 동시에 중국 신장(新疆) 지역에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태양광 제품 수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모든 태양광 제품의 주원료인 폴리실리콘의 글로벌 생산량 중 약 5분의 2가 신장 서부 지역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왈부르가 헤메츠베르거 솔라파워유럽 최고경영자(CEO)는 “통제되지 않은 가격 하락은 업계에 중대한 위협이며, EU 지도자들은 긴급히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