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평가·성과보상, 팀장에게 맡겼더니…
평가-보상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이 늘고 있다. 디커플링은 한 국가의 경제가 인접한 다른 국가나 보편적인 세계 흐름과는 달리, 따로 노는 현상을 말한다. 평가-보상 디커플링 역시 밀접하게 연결된 평가결과와 보상 간의 관계가 점차 느슨해지는 현상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전통적인 성과평가는 연초에 성과목표를 설정하고 연말에 달성정도를 평가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평가결과를 상대등급화해 높은 등급을 받은 직원에게 보다 많은 보상을 주는 형태를 취한다.

2010년대 들어서며 전통적 성과평가 방식에 변화가 일어난다. 목표설정과 성과리뷰 사이클이 반기나 분기 등으로 짧아지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피드백을 적극 장려하는 방식이 부상한다. 가장 특징적으로, 오랜 기간 골든 룰로 여겨진 상대등급화가 절대평가 방식으로 점차 변한다. 더 나아가 평가등급을 산출하지 않는 사례도 등장한다. 전통적 방식을 탈피한 성과평가는 미국 테크기업 중심으로 등장해 전 산업으로 확산됐다. 이제 삼성전자,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주요 기업에서도 절대평가나 동료리뷰를 도입한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새로운 성과평가로 전환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이슈가 있다. 바로 ‘보상 결정’이다. 기존 성과평가의 두드러진 특징은 평가결과와 보상이 밀접히 연결된다는 점이다. 연봉인상률이나 성과급 지급수준을 결정할 때 상대평가 결과에 기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흔했다. 예를 들어 상대평가 결과가 S등급이면 연봉인상률 10%, B등급이면 4%, D등급이면 연봉인상 없음으로 설정하는 식이다.

그런데 절대평가로 전환하자 혼란이 생겼다. 절대평가에서는 평가등급별 인원수 비율을 정해두지 않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높은 평가등급을 받는 직원이 상대평가 방식 때보다 늘어날 수 있다. 기존의 평가결과-보상 연계방식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자칫 인건비가 크게 증가하는 이슈로 이어진다. 평가등급을 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환한 경우에는 혼란이 더욱 커진다. 잦은 커뮤니케이션과 피드백을 통한 성과향상 과정에 집중하자는 취지는 좋으나, 평가등급 자체가 없다보니 어떤 기준으로 성과급을 차등할지 당혹스럽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들의 대체적인 방향은 평가결과와 보상 간의 연계성을 약화시키거나 끊어버리는 것이다. 수학공식처럼 정해진 전통적 보상결정 방식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월드앳워크 리서치(World at Work Research)의 평가보상 트렌드 조사결과를 보면, 평가-보상 디커플링의 전세계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새로운 성과평가를 도입한 기업에서 평가-보상 디커플링으로 가장 많이 채택한 방법은 리더에게 보상결정의 재량을 주는 것이다. 팀장이나 임원 등 조직 리더에게 임금인상 또는 성과급 재원을 주고, 재원 내에서 리더가 구성원의 임금인상분과 성과급 수준을 개별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평가결과를 어느 정도 참고하지만 기존의 평가-보상 방식처럼 기계적으로 같은 등급을 받은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임금인상이나 성과급을 적용할 의무는 없다.

리더에게 보상결정 재량을 주는 방식은 조직 특성과 개인성과에 맞춰 리더가 최적의 보상전략을 펼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보상이 지나치게 임의적으로 결정되거나 투명성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절대평가로 전환한 국내 한 기업에서는 리더에게 주는 보상재원 중 70%는 조직 구성원에게 동일하게 지급하고 나머지 30%만 리더 재량으로 차등하는 원칙을 적용한다.

성과평가는 절대평가가 기본원칙이지만 보상차등을 위해 일부 상대화 방식을 차용하기도 한다. 성과 스펙트럼 상의 최고와 최하 양극단에 해당하는 성과를 정의하고, 양극단의 성과를 보인 소수 구성원을 식별하는데 중점을 두는 방식이다. 양극단에 해당하는 구성원은 표준적인 임금인상액이나 성과급 금액보다 높거나 낮은 보상을 받게된다.

미국 전자 제조업체 모토롤라는 성과평가 결과와 관계없이 전체 성과급 재원 안에서 연봉에 비례한 성과급을 지급한다. 다만 성과급 재원 중 25%는 최고 성과자를 위해 별도로 배정한다. 미국 의료기기 회사 메드트로닉은 기존의 성과평가 등급제를 없애는 대신 최고 성과자를 식별하는 데 초점을 두고 보상을 차등한다. 각 사업부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인 상위 20~25% 직원에게는 표준보다 많은 연봉인상과 성과급을 주고 최하위 성과자에게는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다. 나머지 직원들에게는 표준임금 인상을 적용한다.

공식적인 성과평가 등급이 아닌 보상 차등을 위해 별도의 점수나 순위를 매긴 후 이에 따라 연봉 인상과 성과급을 정하는 방식도 있다. 이러한 점수나 순위는 직원에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그림자 등급이라 불린다. 성과평가 결과뿐만 아니라 현재 급여수준, 이직 가능성, 핵심인재 여부 등 다양한 요인을 포괄적으로 검토하여 그림자 등급을 결정한다. 대부분의 경우 리더와 HR이 모여 함께 그림자 등급을 조정하는 점에서 리더에게 전적으로 보상 재량권을 부여하는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구성원 성장과 육성에 무게 중심을 두고, 지속적인 대화와 피드백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성과평가의 트렌드임은 분명하다. 이와 함께 평가-보상 간의 관계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가져가는 변화가 인재관리에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몇 가지 평가-보상 디커플링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모든 기업에 들어맞는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는 없다. 조직 목표와 문화, 인재전략에 맞는 보상 방식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절대평가로 전환한 국내 대기업 A사 인사팀장은 평가-보상 디커플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절대평가를 도입하면서 많은 걱정이 앞섰다. 근거없이 마음대로 평가를 줄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싫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과감하게 절대평가를 시행하니 걱정하던 현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과거에는 세세한 기준과 가이드로 평가등급과 보상을 통제했는데, 리더와 구성원을 너무 ‘어린아이’ 취급하지 않았나 싶다. 리더에게 평가와 보상에 대한 권한과 자율성을 주니, 조직 상황과 구성원 특성에 맞게 보다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하는 편이다”

통제와 관리의 패러다임을 벗어난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평가-보상 디커플링을 시도한 A사 인사팀장의 말을 되새겨볼 만하다.

김주수 MERCER Korea 부사장 / HR컨설팅 서비스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