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IPO 흥행 걸림돌 '구주매출'…오버행 부담은 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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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시장 되살아날 기미 보이자 구주매출 계획 잇따라

구주매출, 엑시트(자금 회수) 이벤트로 인식하기도
대규모 신주발행이나 오버행 부담일 땐 구주매출 효과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주주나 초기 투자자들의 구주매출은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흥행 걸림돌로 불린다. 구주매출 비중을 높이면 예비 상장사가 직접 확보하는 현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구주매출 비중에 따라 신규 투자자들에게 물량을 떠넘긴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상장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부풀려 공모가가 고평가됐다는 인식을 주기도 한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공모가를 희망밴드 하단에서 확정한 넥스틸도 구주매출이 47.8%에 달했다. 코스피 상장한 이 회사는 수요예측에서 235.56대 1의 경쟁률을 기록, 일반 청약에선 올해 최저 성적인 4.1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구주매출은 대주주 등 기존 주주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 지분 중 일부를 일반인들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을 뜻한다.

코스피 상장에 나선 디에스단석도 공모에서 적잖은 규모의 구주매출을 계획하고 있다. 공모예정주식수(122만주)의 약 35%가량을 구주매출로 구성할 방침이다. 지난달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해 예비심사를 청구한 동인기연도 공모주식수의 약 40%가량을 구주로 구성할 계획이다.

올 하반기 들어 IPO 시장이 다시 살아날 기미를 보이자 대규모 구주매출을 시도하는 딜이 늘고 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구주매출을 계획했다가도 희망밴드 아래로 공모가가 확정되면 이를 철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밀리의서재가 있다. 이 기업은 작년 구주매출(전체 공모 물량의 20% 비중)을 계획했다가 수요예측 부진으로 결국 상장을 철회, 올해 다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밀리의서재는 이번 공모에서 구주매출 없이 전량 신주로 공모하는 구조를 짰다.

구주매출, 누군가에겐 엑시트 기회

IPO 시장에서 대주주나 재무적투자자(FI) 등 주요 주주들은 단연 구주매출 비중이 최대 이슈로 부상한다. 오랜 기간 결실을 기다려온 초기 투자자 입장에서 단번에 대거 엑시트(자금 회수)가 가능한 구주매출 이벤트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모주 등 신규 투자자 입장에선 구주매출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구주매출이 높을수록 회사가 IPO로 직접 확보하는 현금이 줄어든다. 여기에 기존 주주가 공모가격으로 대규모 엑시트를 한다는 건 해당 주주가 상장 이후 단기적인 주가 상승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도 기업의 상장예비심사 시 공모 구조도 검토한다. 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이든 코스닥이든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이 구주 매출 비중을 50% 미만에서 유지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다만 강제성은 없어 50%를 넘는다고 심사 결격사유가 되진 않는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례도 종종 있다. 대주주가 구주매출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내에서 저가에 주식을 담는 경우다. 2020년에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덴탈 소재 업체인 비비씨 대주주의 이야기다. 비비씨 대주주 측은 상장 당시 77억원가량의 구주매출에 나섰다. 상장 이후 주가가 폭락하자 비비씨 대주주는 주식을 다시 사들였다. 대주주 입장에선 주가하락 상태가 지속되자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주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 하지만 구주매출 이력 탓에 결과적으론 비싸게 팔고 싼값에 되산 모양새가 됐다.

어차피 팔 주주는 판다…상장 초기에 오버행 차단

일각에선 구주매출이 무조건 부정적인 이슈가 아니란 의견도 나온다. 대규모 신주발행 부담이 큰 기업들에는 구주매출이 필수적이란 이유에서다. 신주발행을 줄여 상장 직후 유통물량을 통제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더군다나 주식분산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관사나 발행사가 기존 주주에게 구주매출에 나설 것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장내 거래량이 적을 경우 기관투자자 유치가 쉽지 않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구주매출은 상장 이후의 보호예수 해제에 따른 오버행(잠재적 대량 매도물량) 이슈를 미리 회피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투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가 IPO 과정에서 보유 지분을 미리 처분한 만큼 상장 후 대규모 물량 출회의 여력이 줄어, 오히려 IPO 뒤 주가 흐름에 대한 불확실성을 차단한다"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