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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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조 시장'. 한 증권사에서 내놓은 2030년 조각투자 시장 규모에 대한 전망치다. 조각투자 시장은 미술품, 소, 와인, 명품 등 기존 증권으로는 담기 어려운 자산을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단 점에서 시장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부각됐다. 증권, 은행 등 금융사들이 조각투자 업체들과 너도나도 협업에 나선 이유다. 300조원 규모의 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인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낙관적인 시각만 있는 건 아니다. 먼저 기초자산의 가격을 산정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마련되기 어렵단 게 가장 큰 문제다. 상장 주식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시장이 합의한 기준이 있다. 기업은 실적, 비교기업 선정, 할인율 적용 등을 통해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을 매긴다. 하지만 이제 막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조각투자 시장은 다르다. 미술품, 소와 같은 기초자산 평가에 대한 합치된 의견이나 금융당국이 지정한 전문 평가기관이 딱히 없다. 매번 새롭게 발굴되는 투자 상품에 맞춰 평가 기준을 일일이 제시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각투자, 법 테두리 안으로

단돈 만원에 미술품 살 수 있다더니…가치 산정은 어떻게 [개화하는 조각투자①]
미술품, 저작권, 한우 등 다양한 금융·실물 자산을 쪼개 파는 '조각투자'는 적은 돈으로 고가의 상품에 대한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을 샀다. 하지만 제도권 밖에서 방치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금융당국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조각투자 상품을 증권으로 규정하고, 법 테두리 안에서 거래하도록 했다.

조각투자는 증권 중에서도 성격에 따라 투자계약증권과 비금전신탁수익증권으로 나뉘며 주식·채권과 같은 정형적증권이 아닌 비정형적증권으로 분류된다. 투자계약증권은 공동 사업에 투자하고, 결과에 따른 사업 손익을 받는 식이다. 발행은 가능하지만, 유통 시장이 없어 증권의 개인 간 거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테사(플랫폼명 테사) △스탁키퍼(뱅카우) △서울옥션블루(소투) △투게더아트(아트투게더) △열매컴퍼니(아트앤가이드) 등 5개 조각투자 업체만이 투자계약증권 발행사로 인정받았다. 신탁수익증권도 유사한 구조를 갖췄지만, 부동산·저작권과 같은 비금전자산을 대상으로 한 증권 발행·유통만이 가능하단 게 차이점이다.

현재 일부 조각투자 증권에 대한 권리 정보는 기존의 전자등록이나 종이발행과 달리 분산원장에 기재되고 있다. 분산원장은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된 거래 장부다. 이같은 분산원장 기술을 토대로 발행된 증권은 토큰증권(ST)으로 불린다. 문제는 현행법상 조각투자가 토큰증권 형태로 거래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투자계약증권이더라도 토큰증권의 모습을 취했다면 발행과 유통 모두 불가능하다.

조각투자 증권신고서 잇단 불발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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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각투자 업체들의 증권신고서 제출이 기초자산 가치 산정에 가로막혀 줄줄이 불발됐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금융당국이 심사를 강화하고 있어 그 문턱을 넘기도 쉽지 않다. 시작은 미술품 조각투자업체 투게더아트의 '1호 투자계약증권' 신고서였다. 투게더아트는 모회사인 케이옥션으로부터 미술품을 매입했단 점에서 기초자산 가치 산정의 객관성 문제를 피하지 못했다. 업계에선 이 때문에 증권신고서를 철회했단 해석이 나왔다.

또다른 미술품 조각투자업체 열매컴퍼니와 테사, 서울옥션블루 모두 제출 시점을 내달로 미루기로 했다. 열매컴퍼니는 이달 신고서 제출을 예고했지만, 일단 보류했다. 한우 조각투자업체 스탁키퍼는 가격 문제보다는 증권신고서 형식을 바꾸는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그간 우려됐던 가치 판단의 객관성 문제가 현실화된 셈이다. 증권신고서 제출부터 막히다 보니 시장 개화도 늦춰지고 있다. 이에 조각투자 업체들은 자산 가격의 객관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다수의 평가기관으로부터 검증을 받거나 국가공인 인증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합의를 이끌어 내겠단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미술품이란 게 '부르는 게 값'이란 비판에서 마냥 자유롭기 어렵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미술품은 특히 매수인이 비싸게 산다고 하면 가치가 뻥 튈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이는 별도의 기준이 없는 한 적정 가치 판단을 둘러싼 논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단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아무리 초기 시장이라지만, 잘못된 판단이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일단 형식적인 기준을 마련했다. 사실상 자율 형식이었던 투자계약증권신고서의 서식을 전면 개정하고, 서식과 관련해 구체적인 예시를 담은 설명서를 제시했다. 공시심사실 내 투자계약증권 증권신고서 전담 심사팀도 뒀다. 금융위원회도 혁신보단 투자자 보호가 우선이라는 기조에 힘을 싣고 있다.

자산별 평가 기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이승행 투게더아트 부대표는 지난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과 한국핀테크산업협회가 공동 개최한 핀테크 혁신 더하기 토큰증권 플러스' 세미나에서 "발행사 입장에선 투자계약증권 판단근거, 발행 플랫폼에서 갖춰야 하는 투자자 보호조치, 다양한 기초자산의 평가방법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며 "이 시장의 활성를 위해선 명확한 증권의 판단 기준과 장내 투자계약증권의 구체적인 발행 및 유통 관련 세부요건을 속히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산의 활용 범위가 넓단 게 기존 증권과 다른 조각투자 증권의 특성이다. 새로운 자산이 등장할 때마다 맞춤형 평가 기준을 일일이 마련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기준의 객관성까지 갖추려면 더 어렵다. 이 때문에 예상과 달리 조각투자의 혁신으로 지목된 다양한 자산에 대한 증권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이 경우 300조원대로 예상되는 시장 규모도 그만큼 커지기 어려워질 수 있단 지적이다.

석우영 KB증권 디지털자산사업추진단장은 "하이브가 아닌 뉴진스에 투자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하는데 뉴진스를 어떤 식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기초자산을 무궁무진하게 늘리는 건 자산에 대한 평가 관점에서 한계가 있는 만큼 업계 안팎에서 기대하는 것만큼 조각투자 시장의 성장세가 빠르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계속)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