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 개인전 전경 /가나아트 제공
임동식 개인전 전경 /가나아트 제공
예술이란 무엇일까.

기존 상식을 깨뜨리는 획기적인 그 무엇인가. 심오하고 철학적인 메시지가 담긴 사유의 정수인가. 아니면 그저 예술가라고 이름 난 사람이 만든 것인가. 저마다 내놓는 답은 다르지만, 모두가 쉽게 공감할만한 답이 하나 있다. 바로 '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이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임동식(78)이 바로 그런 예술가다.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그 밑에 푸른 빛을 머금은 토끼풀. 가로 2.2m, 세로 1.8m의 널찍한 캔버스에 담아낸 시골 밤 풍경은 서정적이다 못해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임동식, '산토끼 되어 양구의 별빛 아래 서다 2'(2021-2023) /가나아트 제공
임동식, '산토끼 되어 양구의 별빛 아래 서다 2'(2021-2023) /가나아트 제공
임 화백은 30여년 전 독일에서 '잘 나가던' 예술가였다. 홍대 미대 회화과를 마친 후 건너간 독일 국립 함부르크 미대에서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그가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만든 야외현장미술연구회 '야투'(들로 던진다)'의 전시는 현지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다 그는 1990년 돌연 한국에 돌아와 공주 원골마을로 향했다. 해외에서 촉망받던 예술가가 인적 드문 시골로 들어간 이유는 딱 하나. '예술과 자연은 하나'라는 자신의 철학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임동식,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1993, 2004, 2020) /가나아트 제공
임동식,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1993, 2004, 2020) /가나아트 제공
'예즉농 농즉예(藝卽農 農卽藝)'. 임 화백에게 농부의 삶은 곧 '자연과 생명을 다루는 예술'이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시골사람이 됐다. 나무와 돌을 구해 자신이 사는 집을 직접 짓고, 주변에 호박과 꽃을 심었다. 이런 농촌의 일상적인 행위는 곧 퍼포먼스 예술이 됐고, 그는 그 작업을 그림으로 옮겼다. 이런 작업은 그에게 2020년 박수근미술상과 '자연예술가'라는 별명을 안겨줬다.

그 중에서도 이번 개인전의 제목이자 대표작인 '이끼를 들어올리는 사람'은 임 화백이 약 30년간 붙들고 그렸던 작품이다. 1991년 여름 금강에서 이끼를 들어올리는 퍼포먼스를 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에게 이끼는 태초의 자연과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였다.
임동식, '비단장사 왕서방-점원시절 2'(2011-2016) /가나아트 제공
임동식, '비단장사 왕서방-점원시절 2'(2011-2016) /가나아트 제공
특이한 점은 임 화백이 이 그림을 세 번이나 고쳐 그렸다는 것이다. 1993년 처음 그림을 그릴 땐 옷을 입은 채 이끼를 들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그러다 2004년, 문득 '옷을 벗고 있는 나체 상태가 원초적 자연에 더 가깝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던 옷을 지우고 나체로 다시 그린 이유다.

2020년엔 디테일, 색감 등을 고쳐 작품을 완성했다. 섬세한 세필로 그려낸 이끼와 남자는 수십 년간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고찰해온 그의 인생을 한 번에 보여주는 듯하다.
임동식 화백 /가나아트 제공
임동식 화백 /가나아트 제공
하지만 이런 철학적인 메시지를 배제하고서라도 그의 그림은 아름답다. 유화로 그렸지만 기름을 최소화한 덕에 번들거리지 않고, 소박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더한다. "모든 게 빨라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노화백의 말처럼. 전시는 10월 1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