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투자자들 충격에 빠뜨린 대법원 판결 뭐길래 [집코노미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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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코노미 유튜브 채널(youtube.com/@jipconomy)에 게재된 영상을 옮긴 글입니다.
▶전형진 기자
얼마 전 정비업계를 뒤흔들 만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왔습니다. 이른바 '지분쪼개기'를 통해 조합원수가 불어났다면 사업 동의율 충족 과정도 따져봐야 한다는 내용이죠. 그동안 지분쪼개기 관련 논쟁은 새 아파트의 분양대상을 결정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입니다. 대법원은 지난 10일 서울 장위3구역의 재개발조합설립인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조합설립에 필요한 동의율을 충족시킬 때 지분쪼개기로 늘어난 과소지분권자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게 요지입니다.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은 추진위원회설립→조합설립 순서로 사업이 진행됩니다. 추진위원회를 설립하려면 주민(토지등소유자)의 50%가 동의해야 하고, 조합을 설립하려면 75%가 동의해야 합니다. 장위3구역은 2019년 이 조건을 충족하고 성북구청으로부터 조합설립인가를 받았죠. 그런데 조합원들의 동의서 하나하나를 면밀히 따져보면 실질 동의율은 65%에 불과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장위3구역의 토지등소유자 512명 가운데 과소지분권자가 194명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과소지분이란 구역 내에 아주 적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을 말합니다. 실제로 이 구역의 많은 토지등소유자들이 1㎡짜리 땅이나 0.1㎡의 건물을 갖고 있는 형태로 조합원에 포함돼 있었고, 이들의 동의서가 전체 동의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죠.
사실 앞으로 사업이 더 진행되더라도 과소지분권자들이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는 어렵습니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곤 제도 자체에서 막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이들이 조합설립에 동의한 이유는 뭘까요? 원래부터 조합설립을 목적으로 지분쪼개기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토지등소유자들만으론 사업에 필요한 동의율이 충족되지 않으니 세포분열처럼 지분쪼개기를 해서 새로운 소유자들을 만들어내고, 이렇게 만들어진 소유자들이 사업에 동의하는 형태가 된 것이죠. 대법원은 이렇게 충족인 75%의 동의율이 잘못됐다고 본 것입니다. 장위3구역에서 이 같은 꼼수가 등장한 배경엔 복잡한 사연이 있습니다. A건설사가 이 지역에 많은 땅을 갖고 있었는데 덜컥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것입니다. 지금은 주민들이 요청하면 재개발구역을 지정하는 형태지만 과거 뉴타운사업 당시엔 관에서 먼저 구역을 지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A건설사 입장에선 자체사업으로 개발할 수 이었던 땅이 재개발구역으로 묶이면서 손대기 어려워진 것이죠.
그렇다고 재개발사업이 빨랐던 것도 아닙니다. 장위뉴타운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곳들 가운데 가장 느린 속도로 진행됐는데요. 결국 A건설사는 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갖고 있던 땅과 건물을 쪼개 아군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일단 조합설립 단계까지는 진행시킬 수 있으니까요. 이후의 사업 절차에선 따로 동의율 요건을 채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많았습니다. 장위뉴타운은 유난히 해제구역이 많은 뉴타운이기도 한데요.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행동에 나섰고, 대법원까지 이어진 소송전에서 결국 조합이 패소했습니다. 조합설립 자체가 취소됐기 때문에 이제 추진위원회 단계부터 다시 사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다만 대지주로서 A건설사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업을 처음부터 다시 추진하더라도 '패권'엔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는 이유입니다.
주목할 만한 건 대법원이 지분쪼개기 문제에 대해 조합설립의 적정성까지 따져봤다는 건데요. 그동안은 지분쪼개기를 통해 토지등소유자가 된 이들에게도 새 아파트를 줘야 하느냐가 재개발구역들의 주요 쟁점사안이었습니다. '당장 조합원이 되는 건 허용하더라도 앞으로 짓게 될 새 아파트는 줄 수 없다'는 원칙을 두고 싸운 거죠. 하지만 이번 판결을 인용하기에 따라서는 '당장 조합원이 되는 것도 허용할 수 없다'는 논리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 인입이 많았던 구역이라면 과거 지분쪼개기가 성행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들의 동의서를 모두 인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사업 진행에 이견이 큰 조합이라면 장위3구역과 비슷한 소송에 직면할 수도 있는 셈이죠. 앞으로 재개발구역에 투자할 때 눈여겨봐야 할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획·진행 전형진 withmold@hanyung.com
촬영 이예주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