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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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작업장에서 사고를 겪고 질병 수당을 신청한다. 심사에서 탈락하고 항소를 결심하지만, 복잡한 절차로 인해 마음을 접는다. 하는 수 없이 실업수당을 알아보는데, 이번엔 인터넷 신청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약자한테 유독 불편하고 답답한 정부 행정을 꼬집으며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줄거리다.

영화만의 일은 아니다. 코로나19 기간에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던 사람들은 QR코드를 찍지 못해 식당 앞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인터넷 예매를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귀향길 기차표 현장 발권은 하늘의 별 따기다. 효율성을 위한다고 하지만, 정보 격차로 인해 공공서비스의 문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김재연 지음, 세종)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김재연 지음, 세종)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시민이 이용하기 쉬운 정부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 책이다. 미국의 시빅 테크 단체 '코드 포 아메리카'에서 활동하는 김재연 연구위원은 '시빅 데이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주민등록번호부터 지문까지 대부분의 개인정보를 정부가 관리하는 상황에서 '시민을 위한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의미다.

우선 정부가 만든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을 이용자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 전자정부 서비스 '정부24'의 구글플레이스토어 평점은 5점 만점에 1.5점. 불필요한 기능은 많은데, 정작 필요한 서비스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1만개에 달하는 평가 중 상당수는 '원하는 서비스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만이다.

저자는 "시빅 데이터에 대한 이해 없이, 관공서 창구를 그대로 인터넷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시빅 데이터의 원칙은 크게 세 가지다. 시민의 눈높이에서 정부 서비스를 디자인할 것. 시민이 찾기 전에 먼저 시민을 찾아갈 것. 그리고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피드백을 거칠 것.

알고리즘에 기반한 자동 추천 시스템이 하나의 대안이다. 예를 들면 젊은 부부가 정부 웹사이트에 접속해 육아 복지지원을 신청하면,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주택복지 정책까지 소개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이면 시민들이 정부 웹사이트 곳곳을 헤매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시빅 데이터를 만들고 관리하기 위해선 결국 인력이 필요하다. 관련 분야를 전공한 청년들이 정부에서 일하는 것을 좋은 기회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다. 저자는 "공익을 목적으로 기술, 디자인, 데이터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을 늘리고, 학생들이 정부 기관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돕는 식으로 인력 풀을 키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