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뛰기 딱 좋은 계절
아직 낮에는 햇볕이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가을이다. 가을 하면 우리 회사 야구광들은 ‘가을 야구’를 떠올리지 않을까. 특히 올해는 아시안게임이 예정돼 있으니 온 국민이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하는 가을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가을을 마라톤의 계절로 정의한다. 청명한 하늘 아래, 선선한 날씨에 즐길 수 있는 레포츠가 많겠지만 우리나라 가을은 마라톤을 위한 계절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마라톤을 일곱 번 완주했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해서 지금도 새벽에 1시간가량 뛴다. 출장을 가서도, 조찬 행사가 있어도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루틴이다. 처음에는 달리기가 너무 좋아 시작했지만 여러 번 마라톤을 뛰는 동안 단지 달리기만 잘해서는 완주가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흔히 마라톤을 인생이나 경영의 축소판이라고 말하는데, 이게 왜 상투적인 표현이 아닌지 뛰어보면 이해가 된다.

먼저 마라톤이든 경영이든 기본이 중요하다. 달리기를 잘한다고 해서 풀코스를 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춰놓지 않으면 아예 완주에 도전조차 할 수 없다. 달리기는 신체적 능력을 향상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된다. 기본기가 철저해야만 한다.

기본을 갖췄다면 그다음으로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이번 대회 때 날씨는 어떨지, 코스는 어떤 특성이 있는지 등을 연구해야 한다. 어느 지점에서 체력을 비축하고 어디서 치고 나갈지 등의 계획이 중요한데, 나는 각 5㎞를 기준으로 얼마만큼 속도로 몇 분 안에 주파할지 미리 계획을 세운다. 체력 등 자기 능력을 계획에 포함해 절대 오버하지 않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빠른 대응이다. 마라톤은 대자연 속에서 진행되는 만큼 여러 변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언덕 구간에서 갑자기 맞바람이 불 수도 있고, 일기예보에 없었던 소나기가 내릴 수도 있다. 또 여러 사람과 같이 달리는 만큼 달리는 페이스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순간 상황에 따라 페이스를 조절하는 유연하고 빠른 대응이 있어야만 결국 내가 목표한 것을 이룰 수 있다. 마라톤을 뛸 때 보폭은 50㎝에서 길어봐야 1m 남짓이다. 이렇게 짧은 보폭이 모이고 모여야 42.195㎞를 완주할 수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준비와 실행이 모여 성공에 이른다는 면에서 경영도 마찬가지다.

혹시 주저하는 분들이 있다면 일단 시작하시라. 뛰는 거리를 점점 늘려가며 기본을 착실히 쌓다 보면 달리기의 매력을 느끼고, 풀코스까지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뛰기 딱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