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관계에 또 이정표…6.25부터 신냉전까지 아찔한 소용돌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일성에 권력 쥐여준 스탈린…한국전 간접 개입한 구소련
친소인사 숙청에 찬바람…북, 1970년대 중소 '등거리 전략'
냉전종식 후 멀어진 관계…푸틴 집권 뒤 가까워지다 밀착 돌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이 전격 성사되면서 격동의 동북아 현대사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양국 관계에 다시 한획을 긋게 됐다.
13일 AP 통신에 따르면 4년 만에 다시 얼굴을 마주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이번 회담을 계기로 1940년대 이후 롤러코스터를 탔던 북러 관계가 다시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서게 됐다.
양국 관계는 특히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굴곡진 한반도 현대사의 결정적 장면마다 변곡점을 찍었다.
1945년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식민 지배도 종결됐으나 한반도는 각각 미국과 소련이 대치한 상태로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당시 소련을 이끌던 스탈린은 항일 빨치산 주역이던 김일성을 북한 최고 권력자로 앉혔고, 그는 1950년 소련과 중공의 용인 속에 6.25 전쟁을 일으켰다.
소련은 공식적으로는 교전국은 아니었지만 전시인 1950∼1953년 북한에 탄약, 군용기, 조종사를 지원했으며, 북한을 돕던 중공군 뒤에도 소련 공군이 있었다.
1953년 한반도 휴전 이후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소련은 전후 체제이던 북한에 들어앉아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이어갔다.
그러던 북러 관계가 냉담해진 것은 김일성이 후일인 1972년 주석에 오를 발판으로 친소련, 친중국 세력 숙청에 나서면서부터다.
이 여파로 소련은 원조를 줄이긴 했으나 냉전 시대가 끝나기까지 북한과의 고리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1970년대에도 소련과 중국이 서로 라이벌 관계가 되면서 북한은 공산주의 양강 구도인 두 고래 사이에서 최대한 원조를 뽑아내려 '등거리' 전략을 고수했다.
북한은 동시에 소련, 중국에 각각 의존도를 줄이려고도 했으나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실패한 끝에 결국 수십년간 이어진 경제난에 빠져들게 나.
1980년대에는 소련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으로 남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시대가 열리면서 한반도를 상대로도 대북 원조를 줄이고 남한에는 화해의 손을 내밀려는 움직임이 싹텄다.
당시 한국 또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와 외교 관계수립을 모색한 것이 이같은 소련의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북한은 점점 국제 사회에서 고립 행보를 걷게 된다.
그러다 1991년 소련이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북한도 결국 주요 경제, 안보의 뒷배를 잃게 된다.
보리스 옐친 초대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는 북한 원조에 이전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반면 남한과는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투자 유치를 모색했다.
이에 따라 소련 시절 북한과의 군사 동맹 또한 더는 이어지지 못하는 가운데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을 맞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푸틴 시대가 열리면서 북러 관계는 다시 변곡점을 맞는다.
2000년 처음 대통령에 오른 푸틴은 그해 7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전격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북한과 관계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양측은 이 자리에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 계획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2001년과 2002년 각각 김정일 위원장을 러시아로 연달아 초청하면서 밀착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2000대 중후반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 러시아가 두차례 찬성표를 던지면서 양국 사이 훈풍이 잠시 주춤했다.
이후 남한과 북한에 미중러일이 포함된 한반도 비핵화 6자 회담이 가동됐으나 이는 2008년 12월을 끝으로 표류 상태가 됐다.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 지도자에 오르면서 이듬해인 2012년 러시아는 110억 달러로 알려진 북한 채무 중 90%를 탕감해주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6∼2017년 핵실험에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러시아는 안보리 제재에 가세해 양국 관계는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다 2018년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세기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아가 푸틴 대통령과도 첫 정상회담을 했다.
그러나 이렇다할 성과로는 이어지지 못하던 북러 관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서방 제재에 내몰린 푸틴 대통령은 반미 연대를 모색하며 세 대결에 몰두하던 끝에 전쟁 1년반이 넘어선 이날 다시 김정은 위원장을 불러들이면서 다시 고도의 밀착에 돌입했다.
/연합뉴스
친소인사 숙청에 찬바람…북, 1970년대 중소 '등거리 전략'
냉전종식 후 멀어진 관계…푸틴 집권 뒤 가까워지다 밀착 돌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회담이 전격 성사되면서 격동의 동북아 현대사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양국 관계에 다시 한획을 긋게 됐다.
13일 AP 통신에 따르면 4년 만에 다시 얼굴을 마주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이번 회담을 계기로 1940년대 이후 롤러코스터를 탔던 북러 관계가 다시 국제 정세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서게 됐다.
양국 관계는 특히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굴곡진 한반도 현대사의 결정적 장면마다 변곡점을 찍었다.
1945년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식민 지배도 종결됐으나 한반도는 각각 미국과 소련이 대치한 상태로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당시 소련을 이끌던 스탈린은 항일 빨치산 주역이던 김일성을 북한 최고 권력자로 앉혔고, 그는 1950년 소련과 중공의 용인 속에 6.25 전쟁을 일으켰다.
소련은 공식적으로는 교전국은 아니었지만 전시인 1950∼1953년 북한에 탄약, 군용기, 조종사를 지원했으며, 북한을 돕던 중공군 뒤에도 소련 공군이 있었다.
1953년 한반도 휴전 이후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소련은 전후 체제이던 북한에 들어앉아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이어갔다.
그러던 북러 관계가 냉담해진 것은 김일성이 후일인 1972년 주석에 오를 발판으로 친소련, 친중국 세력 숙청에 나서면서부터다.
이 여파로 소련은 원조를 줄이긴 했으나 냉전 시대가 끝나기까지 북한과의 고리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1970년대에도 소련과 중국이 서로 라이벌 관계가 되면서 북한은 공산주의 양강 구도인 두 고래 사이에서 최대한 원조를 뽑아내려 '등거리' 전략을 고수했다.
북한은 동시에 소련, 중국에 각각 의존도를 줄이려고도 했으나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실패한 끝에 결국 수십년간 이어진 경제난에 빠져들게 나.
1980년대에는 소련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으로 남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시대가 열리면서 한반도를 상대로도 대북 원조를 줄이고 남한에는 화해의 손을 내밀려는 움직임이 싹텄다.
당시 한국 또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와 외교 관계수립을 모색한 것이 이같은 소련의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북한은 점점 국제 사회에서 고립 행보를 걷게 된다.
그러다 1991년 소련이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북한도 결국 주요 경제, 안보의 뒷배를 잃게 된다.
보리스 옐친 초대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는 북한 원조에 이전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반면 남한과는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며 투자 유치를 모색했다.
이에 따라 소련 시절 북한과의 군사 동맹 또한 더는 이어지지 못하는 가운데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을 맞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푸틴 시대가 열리면서 북러 관계는 다시 변곡점을 맞는다.
2000년 처음 대통령에 오른 푸틴은 그해 7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전격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북한과 관계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양측은 이 자리에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 계획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2001년과 2002년 각각 김정일 위원장을 러시아로 연달아 초청하면서 밀착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2000대 중후반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 러시아가 두차례 찬성표를 던지면서 양국 사이 훈풍이 잠시 주춤했다.
이후 남한과 북한에 미중러일이 포함된 한반도 비핵화 6자 회담이 가동됐으나 이는 2008년 12월을 끝으로 표류 상태가 됐다.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 지도자에 오르면서 이듬해인 2012년 러시아는 110억 달러로 알려진 북한 채무 중 90%를 탕감해주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6∼2017년 핵실험에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러시아는 안보리 제재에 가세해 양국 관계는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다 2018년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세기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아가 푸틴 대통령과도 첫 정상회담을 했다.
그러나 이렇다할 성과로는 이어지지 못하던 북러 관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서방 제재에 내몰린 푸틴 대통령은 반미 연대를 모색하며 세 대결에 몰두하던 끝에 전쟁 1년반이 넘어선 이날 다시 김정은 위원장을 불러들이면서 다시 고도의 밀착에 돌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