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확대가 중소기업 지원과 은행 이익으로 이어져야 한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기업대출의 중소기업 지원 역할과 수익성의 시너지를 강조했다. 단순히 다른 은행보다 낮은 금리를 기업에 제시해 확보한 대출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올 들어 은행권이 앞다퉈 기업대출 늘리기에 나선 가운데 과당 경쟁에 따른 수익 하락과 부실 대출 증가 등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 달 만에 8조원 불어나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함 회장은 최근 하나은행 기업금융전담역(RM)을 비롯한 관련 부서에 “낮은 금리만 앞세워 기업대출을 늘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40여 년 은행원 생활 대부분을 일선 영업 현장에서 보낸 ‘영업통’인 함 회장이 수익성 확보를 주문한 것은 최근 기업대출 시장에서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 경쟁이 우려된다는 판단에서다.
은행들, 기업대출 놓고 '제살 깎기' 금리 경쟁
고금리 여파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하자 은행권은 기업대출 자산을 늘리고 있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낮은 금리를 앞세워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영업을 확대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8월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747조4893억원으로 전달보다 8조5974억원 증가했다. 올 1월 기업대출 잔액(707조6043억원)과 비교하면 8개월 만에 40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증가폭도 3, 4월 4조원대에서 7월엔 6조원대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달엔 8조원대까지 확대됐다.

○중소기업 대출은 금리도 내려

최근엔 기업대출 점유율이 4위로 처진 우리은행이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목표로 매년 대출을 중소기업은 10%, 대기업은 30% 확대하기로 하면서 기업대출 경쟁이 한층 심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은행 간 출혈 경쟁도 펼쳐지고 있다. 신용도가 탄탄한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등 대기업 계열사에는 은행들이 실적을 내기 위해 다른 은행보다 낮은 금리를 써내서라도 대출 자산을 확보하려 하고 있어서다. 한 시중은행 기업금융 담당 부행장은 “최근 대기업들이 0.01%포인트라도 낮은 금리를 제시한 은행에서 대출받고 있어 은행의 기업대출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에 비해 은행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중소기업 대출금리도 내리는 추세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지난 5~7월 중소기업에 내준 신용대출 금리는 연 5.49~6.57%로 6개월 전(연 5.73~7.03%)에 비해 금리 상·하단이 0.24~0.46%포인트 떨어졌다.

은행들은 직원 퇴직연금 및 법인 신용카드 가입이나 외환거래 등 부수거래를 통해 기업대출의 수익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일부에선 기업대출 담당자들에게 대출 기업을 대상으로 은행이 수수료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저축성 보험 판매 목표치까지 할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리한 기업대출 경쟁이 은행의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금리에 경기 부진 여파로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여신 부실채권이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 집계 결과 올 2분기 기업여신 신규 부실은 2조8000억원으로 전분기(1조9000억원)에 비해 9000억원 증가했다. 반면 2분기 가계여신 신규 부실은 1조원으로 전분기와 비슷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계기업의 부실화 가능성이 큰 만큼 은행 건전성이 예상보다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