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나 희극이나, 그것이 인생이로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Cover Story
셰익스피어 공연은 계속된다
셰익스피어 공연은 계속된다
16세기 영국 런던은 ‘연극 전성시대’를 맞았다. 혜성처럼 등장한 셰익스피어와 극장은 계급을 막론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템스강 남쪽은 우리의 대학로처럼 극장으로 일대를 이뤘다. 셰익스피어 역시 바로 이곳에 자신이 직접 주주로 참여하면서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등 4대 비극의 초연 무대를 올린 ‘셰익스피어 더 글로브 극장’을 1599년 개관했다. 이 극장은 몇 번의 화재를 겪으며 소실됐다가 재개관하기를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을 비롯한 관객이 찾는 지금의 ‘글로브 극장’은 1997년 원래 극장 위치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복원된 것이다.
연극은 주로 오후 2시에 시작했다. 공연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 공연장에 깃발이 꽂히고 트럼펫의 팡파르가 도시 곳곳에 울려 퍼졌다. 호객꾼들은 광고지를 거리에서 뿌려대며 손님들을 유혹했다. 별다른 무대장치도 없이 단지 관객들의 상상력이 더해진 연극은 보통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이어졌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당시에도 그 시간이 길기로 악명이 높았다. 보통 다섯 시간이 기본이었다. 그래도 각 극장은 넘쳐나는 관객들 때문에 하루 두세 번씩 공연을 할 정도였다.
흥미로운 것은 셰익스피어가 세계적인 작가이기 전에 당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떠오른 극장 운영에도 관여할 정도로 탁월한 사업가였다는 점이다. 이는 연극 애호가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든든한 비호 아래 가능한 일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연극 사랑은 수많은 극단이 저마다 경쟁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여왕의 정부가 극장 운영 허가를 내주고 필요한 물건들의 제조와 판매로 짭짤한 수익도 함께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극장문화는 더욱 꽃필 수 있었다.
당시 런던 시민들을 사로잡았던 극장의 화려한 시절을 상상해 본다. 좁은 골목길 어디선가 입장을 재촉하는 나팔 소리와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발길을 재촉하는 시민들의 물결에 어느새 나도 몸을 싣는다. 매음굴에 사는 거리의 여자들이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비누 공장과 염색 가게에서 피어나는 악취와 소음 때문에 극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실신할 지경이다. 피혁 공장 앞에는 동물의 배설물이 담긴 통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배설물 속에 묻혀 있는 가죽은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저기, 뛰어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어 통들이 넘어진다. 향수를 잔뜩 묻힌 부채로 얼굴을 가린 귀족 아가씨 얼굴이 달아오를 듯 붉어진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연극을 보려면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이제, 셰익스피어 공연의 막이 오른다.
‘오늘 밤도 셰익스피어는 공연된다’는 말처럼 셰익스피어 작품이야 일 년 열두 달 언제든, 또 전 세계 어디에서든 관객과 만나고 있지만,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이처럼 비슷한 시기에 차례차례 공연되는 건 이례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는 2014년, 타계 400주년을 기념하는 2016년에도 이처럼 셰익스피어 대표작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땐 분명히 이유가 있던 해였다.
올해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공연된 작품을 보자. 먼저 올봄 포문을 연 작품은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오페라 ‘맥베스’(4월)였다. 곧이어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배우 박호산 주연의 ‘오셀로’(5~6월)가 무대에 올랐고, LG아트센터에는 올해 88세 이순재 배우의 마지막 리어를 내세우며 ‘리어왕’(6월)을 선보였다.
위의 세 작품이 대극장 무대의 스케일을 자랑하는 정통극이었다면, 산울림 소극장에서는 스니커즈를 신은 네 명의 햄릿이 등장하는 현대적 각색으로 ‘플레이 위드 햄릿’(6~7월)이 공연됐다. 이렇게 4대 비극이 모두 공연된 데 이어 국립창극단은 창극단 최초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각색한 ‘베니스의 상인들’(6월)을 공연해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연극은 물론 오페라, 창극까지 그 형식을 넘나드는 셰익스피어 성찬이 차려진 것이다.
‘2023년 왜 지금 다시 셰익스피어?’라는 질문이 다시금 떠오를 수밖에 없다. 진부한 말이지만 셰익스피어가 ‘고전’인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올해 많은 작품이 공연된 이유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가장 먼저 연관성 있는 알리바이로는 올해가 셰익스피어 전집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 발간 400주년이라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본 적이 있을 텐데, ‘어떻게 셰익스피어의 그 많은 작품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는 거지?’라고 말이다. 퍼스트 폴리오가 바로 그 비밀이다. 셰익스피어 사후 7년 뒤인 1623년 셰익스피어의 절친한 두 친구 헨델과 콘웰이 발간한 희곡 전집 퍼스트 폴리오는 원래 <윌리엄 셰익스피어 씨의 희극, 역사극, 비극(Mr. William Shakespeare’s Comedies, Histories, and Tragedies)>이라는 긴 이름의 책이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다른 배경이 더 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세상을 떠난 뒤 제임스 1세로 왕권이 바뀌던 시기에 완성됐다.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사우샘프턴 백작이 반란죄로 종신형을 선고받는 등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36세의 셰익스피어는 비극의 시대를 열게 된다. 격변하는 시기에 놓인 자신의 처지 속에서 작품의 영감이 다양하게 떠올랐을 수도 있다.
다행히 제임스 1세도 연극을 좋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셰익스피어가 속한 극단을 ‘국왕 극단’으로 승격했고, 1604년 윈체스터 주교의 궁전에서 열린 제임스 1세의 대관식에도 참석할 정도였다. 하지만 연극의 전성시대는 길지 않았다. 제임스 1세 이후 즉위한 찰스 1세 때 청교도혁명이 발발해 극장 문화는 탄압당했다. 이런 배경을 연결해 보면 보통 주요 극장과 단체들이 공연을 올리기 1년 전쯤에 작품을 선정한다는 점에서 정권교체가 있었던 작년이 공교롭게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올해 비슷한 시기에 공연된 것은 시대의 불안이 우리 사회에 스며있음을 감지하게 하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한다.
셰익스피어 비극 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본능과 격정, 유한한 삶 속에서 꿈틀대는 욕망과 두려움은 우리의 불안을 더욱 자극한다. 삼촌과 어머니의 계략으로 살해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한 햄릿의 불안, 부하 이아고에게 속아 아내에 대한 질투로 불안에 떨다가 자신과 아내의 목숨을 끊는 오셀로, 딸들의 사랑을 측정하려다가 버림당하고 결국 죽음을 맞는 리어왕, 그리고 왕좌에 오르려는 욕망 속에서 살인과 탐욕을 행하다가 자살을 택하는 맥베스까지, 이 모든 인물의 저 깊은 곳에는 불안이 관통한다.
파스빈더 감독의 작품 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불안이라는 인간의 가장 연약한 감정을 가장 능숙하게 다뤘다는 점이 지금도 그의 주인공들을 무대에 계속 오르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최여정 문화평론가·<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저자
당시 템스강 남쪽은 우리의 대학로처럼 극장으로 일대를 이뤘다. 셰익스피어 역시 바로 이곳에 자신이 직접 주주로 참여하면서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등 4대 비극의 초연 무대를 올린 ‘셰익스피어 더 글로브 극장’을 1599년 개관했다. 이 극장은 몇 번의 화재를 겪으며 소실됐다가 재개관하기를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을 비롯한 관객이 찾는 지금의 ‘글로브 극장’은 1997년 원래 극장 위치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복원된 것이다.
연극은 주로 오후 2시에 시작했다. 공연 시작 시간이 다가오면 공연장에 깃발이 꽂히고 트럼펫의 팡파르가 도시 곳곳에 울려 퍼졌다. 호객꾼들은 광고지를 거리에서 뿌려대며 손님들을 유혹했다. 별다른 무대장치도 없이 단지 관객들의 상상력이 더해진 연극은 보통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이어졌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당시에도 그 시간이 길기로 악명이 높았다. 보통 다섯 시간이 기본이었다. 그래도 각 극장은 넘쳐나는 관객들 때문에 하루 두세 번씩 공연을 할 정도였다.
흥미로운 것은 셰익스피어가 세계적인 작가이기 전에 당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떠오른 극장 운영에도 관여할 정도로 탁월한 사업가였다는 점이다. 이는 연극 애호가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든든한 비호 아래 가능한 일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연극 사랑은 수많은 극단이 저마다 경쟁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여왕의 정부가 극장 운영 허가를 내주고 필요한 물건들의 제조와 판매로 짭짤한 수익도 함께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극장문화는 더욱 꽃필 수 있었다.
당시 런던 시민들을 사로잡았던 극장의 화려한 시절을 상상해 본다. 좁은 골목길 어디선가 입장을 재촉하는 나팔 소리와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발길을 재촉하는 시민들의 물결에 어느새 나도 몸을 싣는다. 매음굴에 사는 거리의 여자들이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비누 공장과 염색 가게에서 피어나는 악취와 소음 때문에 극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실신할 지경이다. 피혁 공장 앞에는 동물의 배설물이 담긴 통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배설물 속에 묻혀 있는 가죽은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저기, 뛰어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어 통들이 넘어진다. 향수를 잔뜩 묻힌 부채로 얼굴을 가린 귀족 아가씨 얼굴이 달아오를 듯 붉어진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연극을 보려면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이제, 셰익스피어 공연의 막이 오른다.
야망에 찌든 맥베스, 교만에 빠진 리어왕…오늘밤도 무대서 울부짖는다
올해 국내 공연계는 셰익스피어 붐이다. ‘왜 갑자기 또 셰익스피어?’라는 생각에 의아해했다.‘오늘 밤도 셰익스피어는 공연된다’는 말처럼 셰익스피어 작품이야 일 년 열두 달 언제든, 또 전 세계 어디에서든 관객과 만나고 있지만,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이처럼 비슷한 시기에 차례차례 공연되는 건 이례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는 2014년, 타계 400주년을 기념하는 2016년에도 이처럼 셰익스피어 대표작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땐 분명히 이유가 있던 해였다.
올해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공연된 작품을 보자. 먼저 올봄 포문을 연 작품은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오페라 ‘맥베스’(4월)였다. 곧이어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작으로 배우 박호산 주연의 ‘오셀로’(5~6월)가 무대에 올랐고, LG아트센터에는 올해 88세 이순재 배우의 마지막 리어를 내세우며 ‘리어왕’(6월)을 선보였다.
위의 세 작품이 대극장 무대의 스케일을 자랑하는 정통극이었다면, 산울림 소극장에서는 스니커즈를 신은 네 명의 햄릿이 등장하는 현대적 각색으로 ‘플레이 위드 햄릿’(6~7월)이 공연됐다. 이렇게 4대 비극이 모두 공연된 데 이어 국립창극단은 창극단 최초로 셰익스피어 작품을 각색한 ‘베니스의 상인들’(6월)을 공연해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연극은 물론 오페라, 창극까지 그 형식을 넘나드는 셰익스피어 성찬이 차려진 것이다.
‘2023년 왜 지금 다시 셰익스피어?’라는 질문이 다시금 떠오를 수밖에 없다. 진부한 말이지만 셰익스피어가 ‘고전’인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와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올해 많은 작품이 공연된 이유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가장 먼저 연관성 있는 알리바이로는 올해가 셰익스피어 전집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 발간 400주년이라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본 적이 있을 텐데, ‘어떻게 셰익스피어의 그 많은 작품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는 거지?’라고 말이다. 퍼스트 폴리오가 바로 그 비밀이다. 셰익스피어 사후 7년 뒤인 1623년 셰익스피어의 절친한 두 친구 헨델과 콘웰이 발간한 희곡 전집 퍼스트 폴리오는 원래 <윌리엄 셰익스피어 씨의 희극, 역사극, 비극(Mr. William Shakespeare’s Comedies, Histories, and Tragedies)>이라는 긴 이름의 책이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다른 배경이 더 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세상을 떠난 뒤 제임스 1세로 왕권이 바뀌던 시기에 완성됐다.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사우샘프턴 백작이 반란죄로 종신형을 선고받는 등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36세의 셰익스피어는 비극의 시대를 열게 된다. 격변하는 시기에 놓인 자신의 처지 속에서 작품의 영감이 다양하게 떠올랐을 수도 있다.
다행히 제임스 1세도 연극을 좋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셰익스피어가 속한 극단을 ‘국왕 극단’으로 승격했고, 1604년 윈체스터 주교의 궁전에서 열린 제임스 1세의 대관식에도 참석할 정도였다. 하지만 연극의 전성시대는 길지 않았다. 제임스 1세 이후 즉위한 찰스 1세 때 청교도혁명이 발발해 극장 문화는 탄압당했다. 이런 배경을 연결해 보면 보통 주요 극장과 단체들이 공연을 올리기 1년 전쯤에 작품을 선정한다는 점에서 정권교체가 있었던 작년이 공교롭게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올해 비슷한 시기에 공연된 것은 시대의 불안이 우리 사회에 스며있음을 감지하게 하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한다.
셰익스피어 비극 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본능과 격정, 유한한 삶 속에서 꿈틀대는 욕망과 두려움은 우리의 불안을 더욱 자극한다. 삼촌과 어머니의 계략으로 살해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한 햄릿의 불안, 부하 이아고에게 속아 아내에 대한 질투로 불안에 떨다가 자신과 아내의 목숨을 끊는 오셀로, 딸들의 사랑을 측정하려다가 버림당하고 결국 죽음을 맞는 리어왕, 그리고 왕좌에 오르려는 욕망 속에서 살인과 탐욕을 행하다가 자살을 택하는 맥베스까지, 이 모든 인물의 저 깊은 곳에는 불안이 관통한다.
파스빈더 감독의 작품 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불안이라는 인간의 가장 연약한 감정을 가장 능숙하게 다뤘다는 점이 지금도 그의 주인공들을 무대에 계속 오르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최여정 문화평론가·<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