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사 아미니 의문사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 촉발…이란 정부, 유혈 진압
최소 500명 사망·2만여명 체포·7명 사형…언론인·교수·연예인 등도 탄압
정부, 히잡 단속 강화…아미니 1주기 앞두고 체포·비밀 소환하며 '침묵' 종용
이란인들, 히잡 거부하며 저항 이어가…국제 사회도 꾸준히 연대·지지
이란 '히잡 시위' 1년…끝나지 않는 외침 "여성·삶·자유"
이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한 지 16일로 꼭 1년이다.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이란 내에선 수개월간 반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악의 정치적 혼란을 맞닥뜨린 이란 정부는 갖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시위대를 탄압했다.

아미니의 사망으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안타깝게도 이란 내 인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어떤 면에서는 뒷걸음질 치고 있다.

한때 유화적인 자세를 보였던 정부는 시위의 기세가 꺾이는 듯싶어지자 노골적으로 탄압을 강화하고 있고 아미니의 1주기를 앞두고서는 반대자들에 대한 감시와 처벌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

그러나 이에 맞서 이란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치지 않고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있다.

이란 '히잡 시위' 1년…끝나지 않는 외침 "여성·삶·자유"
◇ 반정부 시위 불 댕긴 스물두살 아미니의 의문사
지난해 9월 13일 당시 스물두살이던 쿠르드계 이란인 아미니는 테헤란 도심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 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에 체포됐다.

히잡 아래로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드러났다는 이유였다.

지도 순찰대는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단속하는 조직이다.

아미니는 경찰서에서 조사받던 중 갑자기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흘 뒤인 16일 숨졌다.

유족은 아미니의 머리와 팔다리에 구타 흔적이 있다며 경찰의 고문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지만,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폭력을 쓴 적은 없다며 아미니의 기저 질환이 사인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다.

이란 전역에서는 곧장 아미니의 의문사에 항의하고 진상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가두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여성, 삶, 자유'를 외쳤다.

검은색 히잡을 벗어 불태우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머리에 쓰는 스카프도 반대, 터번도 반대, 자유와 평등은 찬성"이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란 '히잡 시위' 1년…끝나지 않는 외침 "여성·삶·자유"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불태우며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아미니 사망을 계기로 그동안 신정(神政) 독재 정권에 억눌렸던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갈망이 분출한 것이다.

이란 정부는 반정부 시위를 서방 세력이 조장한 폭동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에 나섰다.

보안군은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거나 곤봉을 휘둘렀고, 때에 따라서는 실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인권 단체들은 미성년자 71명을 포함해 500명 이상이 보안군의 유혈 진압으로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으며, 2만명 이상이 체포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란 사법부는 더 나아가 시위 과정에서 보안군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시위대 7명을 사형에 처했다.

극단적 표본을 보여 반정부 움직임을 내리찍으려는 시도였다.

이란 정부의 여론 탄압은 시위대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개혁 성향의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약 10개월 동안 기자 90명이 체포됐고, 이 가운데 6명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

시위에 뜻을 함께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거나 정직 처분을 받은 대학교수, 강사도 최소 100명에 달한다고 현지 매체는 보도했다.

여론 통제를 위한 인터넷 차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란 '히잡 시위' 1년…끝나지 않는 외침 "여성·삶·자유"
◇ 히잡 단속에 감시 카메라·AI…1주기 앞두고 '공포 분위기' 조성
강경 대응으로 대규모 시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이란 정부는 아미니 사망 이후 한동안 느슨하게 풀어놓은 히잡 단속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지난 4월 경찰은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식별해 처벌하려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이들을 손님으로 받은 식당이나 상점 수백 곳은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말 시위가 격화할 때 잠시 활동을 중단한 '지도 순찰대'도 지난 7월 다시 거리에 나타났다.

히잡 미착용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도 추진 중이다.

새 히잡법은 히잡을 미착용할 경우 최대 3억6천만리알(약 1천105만원)의 벌금과 함께 5년에서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다.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유명인에겐 재산의 10분의 1까지 벌금을 매기고, 일정 기간 활동 금지와 해외여행, 소셜미디어 활동 금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히잡 단속을 위해 AI(인공지능) 단속 시스템까지 동원하려고 준비 중이다.

당국은 오는 16일 아미니 사망 1주기를 앞두고 다시금 시위가 조직될 것을 우려해 '공포 분위기'도 조성하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지난 달 16일 북부 길란 주에서 12명의 여성 인권 운동가가 체포됐고, 지난해 시위대 선봉에 섰던 학생들은 최근 비밀경찰에 소환되고 있다.

아미니 사건의 변호사는 반이슬람 공화국 선전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말 재판이 시작됐고, 이달 5일엔 아미니의 삼촌 사파 아엘리(30)가 이유 없이 보안군에 체포돼 구금돼 있다.

아미니 묘지 주변엔 감시 카메라도 설치됐다.

현지 활동가들에 따르면 시위 도중 사망한 시위대 가족들 역시 보안군에 체포돼 심문받고 있다.

보안군은 이들에게 아미니 사망 1주년을 맞아 거리 시위나 추모 행사를 조직하지 말고 침묵을 지키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한다.

이란 '히잡 시위' 1년…끝나지 않는 외침 "여성·삶·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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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함께합니다' 국제 사회도 동참
이란 정부의 탄압에도 이란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란 체스 선수 사라 카뎀은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국제체스연맹 대회에 히잡을 쓰지 않고 참가했고, 지난해 10월 한국서 열린 클라이밍 대회에 출전한 이란 선수 엘나즈 레카비도 히잡 없이 암벽을 탔다.

프랑스24에 따르면 이란의 싱어송라이터 셰르빈 하지푸르는 시위 지지자들의 소셜미디어 댓글을 가사로 엮어 '바라예(Bayaye)'라는 곡을 만들었다.

여성의 자유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은 이 곡은 올해 2월 열린 미국 그래미 시상식에서 '사회를 바꾼 노래'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 역시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이미 기소돼 재판 중인 이란의 노동 운동가 세피데 콜리얀은 히잡을 쓰지 않고 계속 법정에 출석했다가 최근 판사로부터 추가 기소 경고를 받았다.

이달 5일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에 참석한 한 이란 여배우는 저항 운동의 키워드인 '여성, 삶, 자유'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나타나 주목받기도 했다.

중동 및 세계질서 센터의 선임 연구원 아자데 푸르잔드는 프랑스24에 "강제 히잡 정책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삶의 모든 측면에서 여성을 심하게 차별하고 통제해왔다"며 "그럼에도 이란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왔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금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히잡 시위' 1년…끝나지 않는 외침 "여성·삶·자유"
이들의 싸움이 외롭지 않게 국제 사회도 함께 응원하고 있다.

지난해 이란 전역이 반정부 시위로 들끓을 때 전 세계 각지에서도 아미니를 추모하고 여성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동조 시위가 열렸다.

올해 1월 16∼17일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엔 '여성, 삶, 자유'와 '이란 내 사형 중단'이라는 슬로건이 내걸렸고, 지난 5월 이란 주재 스위스 대사관은 아미니의 포스터가 찍힌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기도 했다.

아미니 사망 1주기를 앞두고 각국 언론은 지난 1년을 돌아보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으며, 각국 주재 이란 대사관 앞에선 인권 단체들의 항의 시위가 열리고 있다.

이란 정부의 반인권적 조치에 국제 사회가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듭 나오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독일 지부는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이란 당국이 수십 년간 억압과 불평등에 저항해 온 이란 국민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학 행위를 저질렀다"며 국제 사회가 법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중의 분노와 정권의 탄압이 폭발적으로 뒤섞인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팀슨 센터의 석좌 연구원 바버라 슬래빈은 프랑스24에 "이란 사회는 여전히 비참하고 분노하고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란인들은 더 이상 정권이 결정권을 쥐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며 "이란 정권이 지난해 시위를 효과적으로 진압하긴 했지만 정권에 대한 분노는 훨씬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