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레스토랑을 연다면 메뉴판을 읽기 어려운 영어 필기체로 써라[책마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선택한다는 착각
리처드 쇼튼 지음
이애리 옮김/한스미디어
312쪽|2만원
리처드 쇼튼 지음
이애리 옮김/한스미디어
312쪽|2만원
“인간에게 생각이란 고양이에게 수영(swimming)이 주는 의미와 같다. 할 수는 있지만, 굳이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한 말이다. 인간은 합리적이지만, 항상 합리적이진 않다. 깊이 생각하는 건 머리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틈을 노린다.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도 그중 하나다.
<선택한다는 착각>은 장사꾼들이 어떻게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행동과학을 통해 들여다본다. 저자 리처드 쇼튼은 22년 경력의 마케팅 전문가다. 구글, 메타, 브루독, 바클레이 같은 회사들이 행동과학을 이용해 마케팅을 펼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풍부한 사례가 이 책의 장점이다. 행동과학이라면 이제 지겹다고 생각할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내용이 많다.
자동차의 속도를 올리려면 가속 페달을 밟기 전에 먼저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야 한다. 마케팅에서도 ‘마찰 요소’를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는 이를 도와준다. 1966년 스탠퍼드대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하나 했다.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앞마당에 ‘안전 운전하세요’라고 적힌 표지판을 세워도 되는지 물었다. 17%만 허락했다.
그 다음 주택가에선 더 작은 부탁을 했다. 안전 운전을 지지하는 조그마한 스티커를 창문에 붙여달라고 했다. 거의 모든 집주인이 동의했다. 2주 뒤 다시 찾아갔다. 커다란 표지판을 마당에 세워도 되는지 물었다. 창문에 스티커를 붙인 사람 중 76%가 허락했다. 책은 “행동에 주요한 변화를 끌어내고 싶다면 고객에게 작은 변화를 요청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고객에게 제시하는 선택지의 수도 줄이는 게 좋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6가지 잼을 맛볼 수 있게 했다. 지나가던 242명 중 60%가 멈춰 시식했다. 24가지를 늘렸을 땐 260명 중 40%가 발걸음을 멈췄다. 구매율도 달랐다. 잼이 6종류일 땐 시식한 사람 중 12%가 사 갔다. 24종류일 땐 1.7%에 그쳤다.
반대로 ‘어렵게 하기’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미국 식품기업 제너럴밀스는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 제품을 출시했다. 믹스를 물에 붓고 저은 다음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됐다. 판매량은 실망스러웠다. 한 가지 절차를 추가했다. 이젠 믹스에 계란을 넣어야만 했다. 더 잘 팔렸다. 약간의 수고로움을 더하는 단순한 행동이 사람들에게 이 정도면 괜찮은 음식을 만들었다는 기분을 선사했다.
학자들은 이를 ‘이케아 효과’라고 부른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 절반에겐 평범한 검은색 이케아 상자를 직접 조립하게 했다. 다른 절반은 미리 조립해 둔 걸 보여줬다. 그 다음 상장의 가격과 선호도를 매겨달라고 했다. 직접 조립한 집단은 평균 78센트였다. 조립하지 않은 집단의 48센트보다 63% 가격이 높았다. 선호도 역시 52% 높았다. 학자들은 약간의 노력을 들이면 그 물건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고 해석했다.
애플은 이를 아이폰 포장에 활용한다. 몇 번의 과정을 거쳐 개봉하도록 세심하게 구성했다.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따는 것도 마찬가지다. 레스토랑에서 주방을 보여주는 것도 음식에 ‘노력’이 더해졌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다.
심지어 사람은 글꼴에도 영향을 받는다. 쉬운 조리법을 강조하고 싶다면 읽기 쉬운 서체가 좋다.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면 영어 필기체와 같은 읽기 어려운 서체가 도움이 된다. 읽기 어려운 서체로 소개한 음식은 만드는 것도 어려워, 그만큼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는 인상을 준다고 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한 말이다. 인간은 합리적이지만, 항상 합리적이진 않다. 깊이 생각하는 건 머리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틈을 노린다.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도 그중 하나다.
<선택한다는 착각>은 장사꾼들이 어떻게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행동과학을 통해 들여다본다. 저자 리처드 쇼튼은 22년 경력의 마케팅 전문가다. 구글, 메타, 브루독, 바클레이 같은 회사들이 행동과학을 이용해 마케팅을 펼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풍부한 사례가 이 책의 장점이다. 행동과학이라면 이제 지겹다고 생각할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내용이 많다.
자동차의 속도를 올리려면 가속 페달을 밟기 전에 먼저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야 한다. 마케팅에서도 ‘마찰 요소’를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는 이를 도와준다. 1966년 스탠퍼드대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하나 했다.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앞마당에 ‘안전 운전하세요’라고 적힌 표지판을 세워도 되는지 물었다. 17%만 허락했다.
그 다음 주택가에선 더 작은 부탁을 했다. 안전 운전을 지지하는 조그마한 스티커를 창문에 붙여달라고 했다. 거의 모든 집주인이 동의했다. 2주 뒤 다시 찾아갔다. 커다란 표지판을 마당에 세워도 되는지 물었다. 창문에 스티커를 붙인 사람 중 76%가 허락했다. 책은 “행동에 주요한 변화를 끌어내고 싶다면 고객에게 작은 변화를 요청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고객에게 제시하는 선택지의 수도 줄이는 게 좋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6가지 잼을 맛볼 수 있게 했다. 지나가던 242명 중 60%가 멈춰 시식했다. 24가지를 늘렸을 땐 260명 중 40%가 발걸음을 멈췄다. 구매율도 달랐다. 잼이 6종류일 땐 시식한 사람 중 12%가 사 갔다. 24종류일 땐 1.7%에 그쳤다.
반대로 ‘어렵게 하기’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미국 식품기업 제너럴밀스는 인스턴트 케이크 믹스 제품을 출시했다. 믹스를 물에 붓고 저은 다음 오븐에 넣기만 하면 됐다. 판매량은 실망스러웠다. 한 가지 절차를 추가했다. 이젠 믹스에 계란을 넣어야만 했다. 더 잘 팔렸다. 약간의 수고로움을 더하는 단순한 행동이 사람들에게 이 정도면 괜찮은 음식을 만들었다는 기분을 선사했다.
학자들은 이를 ‘이케아 효과’라고 부른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 절반에겐 평범한 검은색 이케아 상자를 직접 조립하게 했다. 다른 절반은 미리 조립해 둔 걸 보여줬다. 그 다음 상장의 가격과 선호도를 매겨달라고 했다. 직접 조립한 집단은 평균 78센트였다. 조립하지 않은 집단의 48센트보다 63% 가격이 높았다. 선호도 역시 52% 높았다. 학자들은 약간의 노력을 들이면 그 물건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고 해석했다.
애플은 이를 아이폰 포장에 활용한다. 몇 번의 과정을 거쳐 개봉하도록 세심하게 구성했다.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따는 것도 마찬가지다. 레스토랑에서 주방을 보여주는 것도 음식에 ‘노력’이 더해졌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다.
심지어 사람은 글꼴에도 영향을 받는다. 쉬운 조리법을 강조하고 싶다면 읽기 쉬운 서체가 좋다.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면 영어 필기체와 같은 읽기 어려운 서체가 도움이 된다. 읽기 어려운 서체로 소개한 음식은 만드는 것도 어려워, 그만큼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는 인상을 준다고 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