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클로드 엘레나 지음
카린 도어링 프로저 그림
이주영 옮김/아멜리에북스
228쪽|2만5000원

<향수가 된 식물들>을 쓴 장 클로드 엘레나는 ‘향수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향사들은 향기가 천 가지의 말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그들은 귀를 기울여 각 향기가 전하려는 말을 이해한 후에야 핵심에 다가간다”고 설명한다.
장 클로드 엘레나는 14년 동안 에르메스 전속 조향사로 일하며 ‘에르메스 향’의 세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2018년 독립 조향사로 전향해 70대인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국내외에서 사랑받는 향수들의 탄생 비화와 더불어 향수와 식물의 흥미로운 세계를 들려준다.

조향사들을 위한 딱딱한 책은 아니다. 일반인에게도 흥미로운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겼다. 1980년대 ‘향수계의 왕’이라 불리던 투베로즈를 이용한 디올의 ‘쁘와종’은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출입 금지된 향수였다. 향이 너무 강해 주변 손님의 식사를 방해한다는 이유였다.
레몬 향은 매력적이지만 향수로 잘 쓰이지 않는다. 1949년 프록터앤드갬블에서 레몬 향이 나는 주방용 액체 세제 ‘조이’를 출시하면서 이후 레몬 향하면 액체 세제와 식기세척기를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레몬을 향수 이미지와 연결하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진 피즈(Gin fizz)’와 에르메스의 ‘시트론 느와르(Citron noir)’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꽃의 이용 가치가 생산량과 가격의 두 가지 기준으로 정해진다는 조향 세계의 현실적인 면도 엿볼 수 있다. 아이리스 추출물은 당근 추출물보다 50배나 비싸기 때문에 조향사들은 당근 추출물을 더 많이 사용한다. 스위트오렌지 대신 비타오렌지 에센스를 선호하는 것도 가격 부담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투베로즈, 재스민, 오렌지 꽃, 수선화 등 흰색 꽃일수록 향이 강해 향수 재료로 사용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