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칼럼] 왜 비싼 와인만 찾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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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생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포도주의 생산 및 보관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와인의 소비량이 크게 늘어났다. 당신은 어떤 와인을 즐겨 마시는가? 다음 두 와인에 대한 리뷰를 보고 선택해보시기 바란다.
A와인 : 메를로 품종으로 만들어 숙성시킨 리저브 와인이자 100% 자가 양조 와인이다. 레드베리와 블랙베리, 삼나무 향과 허브 향을 가미한 벽난로 연기의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부드러운 질감에 풍미를 농축한 풀바디 와인. 점수는 95점.
B와인 : 다크 초콜릿 향과 체리 향이 코를 자극하면서 흑연향이 살짝 감돈다. 미디엄바디에 부드러운 타닌 풍미가 엷게 깔린다. 우아하고 절대된 풍미를 담은 레드 와인으로 식감이 신선하다. 점수는 95점.
A와 B와인 중 어떤 와인을 선택했는가? A와인은 자비스 2012년산 자가 양조 동굴 발효 리저브 레를로(Jarvis 2012 Estate Grown Cave Fermented Reserve Merlot)이고, 한 병에 200달러다. B와인은 프레일 2015년산 리드 게리히츠베르크 메를로(Pleil 2015 Ried Gerichtsberg Merlot)이고, 한 병에 19달러다.
그런데 A와 B와인의 리뷰를 보고 현격한 가격 차이를 알아챘는가? 캘리포니아주 북서부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로버트 호지슨은 와인 전문가 10명을 초빙해 눈을 가리고 각자에게 와인 세 잔을 시음하는 실험을 했다. 전문가는 업계의 표준 척도에 따라 각 와인 샘플에 점수를 매겼다.
실험결과 평균적으로 심사위원진이 매긴 와인 평점의 차이는 ±4점이었다. 그런데 한 전문가는 92점을 매겼고 다른 전문가는 82점을 매겼다. 일부 심사위원들의 폭은 훨씬 컸다. 10명 중 1명만 같은 와인을 큰 오차 없이 ±2점 범위안에서 채점했다.
또 다른 연구자 프레데리크 브로셰는 와인 비평가들이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확실하게 구분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와인 전문가 54명에게 레드 와인 한 잔과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시음하게 하고 어떤 맛인지 말해 달라고 했다. 실제로 와인 두 잔은 같은 화이트 와인이었고, 레드 와인은 식용 색소로 물들여 제공했다.
그러자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비평가들은 레드 와인을 마시고 나서 "오크 향과 붉은 색 과일에서 풍기는 부드러움이 입안을 감싼다"는 묘사를 했다. 비평가 54명 중 레드 와인이 실제로는 화이트 와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은 왜 비싼 와인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걸까? 인지과학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증거에 근거한 추론보다 직관에 더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인의 히스토리를 상세하게 조사하기보다는 와인 병의 디자인만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즉 직관과 느낌이 판단과 결정을 형성하고, 논리적 추론은 이러한 판단과 결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중에 따라온다. 그런데 문제는 직관이 나중에 따라올 수 있는 논리형 증거 기반 추론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로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이나 정보를 접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을 ‘진실 기본값 이론(truth-default theory)’이라고 하는데, 상대방과 소통할 때 진위 여부보다는 일단 상대방 말을 정직하고 진실하다고 소극적으로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정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과도 어렵지 않게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으나 상대방의 속임수에 취약해지기도 한다. 특히 상대방의 속임수와 자신의 세계관이 일치할 때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와인 뿐만 아니라 특정 물건을 구매할 때 전문가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와인, 어떤 제품을 선호하는지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유명한 수석 와이너리가 360년 전통의 샤토 로장 세글라를 권하면 마음에 들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 훨씬 더 좋아할 와인이 달리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맛과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의 와인을 고를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와인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A와인 : 메를로 품종으로 만들어 숙성시킨 리저브 와인이자 100% 자가 양조 와인이다. 레드베리와 블랙베리, 삼나무 향과 허브 향을 가미한 벽난로 연기의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부드러운 질감에 풍미를 농축한 풀바디 와인. 점수는 95점.
B와인 : 다크 초콜릿 향과 체리 향이 코를 자극하면서 흑연향이 살짝 감돈다. 미디엄바디에 부드러운 타닌 풍미가 엷게 깔린다. 우아하고 절대된 풍미를 담은 레드 와인으로 식감이 신선하다. 점수는 95점.
A와 B와인 중 어떤 와인을 선택했는가? A와인은 자비스 2012년산 자가 양조 동굴 발효 리저브 레를로(Jarvis 2012 Estate Grown Cave Fermented Reserve Merlot)이고, 한 병에 200달러다. B와인은 프레일 2015년산 리드 게리히츠베르크 메를로(Pleil 2015 Ried Gerichtsberg Merlot)이고, 한 병에 19달러다.
그런데 A와 B와인의 리뷰를 보고 현격한 가격 차이를 알아챘는가? 캘리포니아주 북서부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로버트 호지슨은 와인 전문가 10명을 초빙해 눈을 가리고 각자에게 와인 세 잔을 시음하는 실험을 했다. 전문가는 업계의 표준 척도에 따라 각 와인 샘플에 점수를 매겼다.
실험결과 평균적으로 심사위원진이 매긴 와인 평점의 차이는 ±4점이었다. 그런데 한 전문가는 92점을 매겼고 다른 전문가는 82점을 매겼다. 일부 심사위원들의 폭은 훨씬 컸다. 10명 중 1명만 같은 와인을 큰 오차 없이 ±2점 범위안에서 채점했다.
또 다른 연구자 프레데리크 브로셰는 와인 비평가들이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확실하게 구분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와인 전문가 54명에게 레드 와인 한 잔과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시음하게 하고 어떤 맛인지 말해 달라고 했다. 실제로 와인 두 잔은 같은 화이트 와인이었고, 레드 와인은 식용 색소로 물들여 제공했다.
그러자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비평가들은 레드 와인을 마시고 나서 "오크 향과 붉은 색 과일에서 풍기는 부드러움이 입안을 감싼다"는 묘사를 했다. 비평가 54명 중 레드 와인이 실제로는 화이트 와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은 왜 비싼 와인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걸까? 인지과학자에 의하면 사람들은 증거에 근거한 추론보다 직관에 더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인의 히스토리를 상세하게 조사하기보다는 와인 병의 디자인만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즉 직관과 느낌이 판단과 결정을 형성하고, 논리적 추론은 이러한 판단과 결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중에 따라온다. 그런데 문제는 직관이 나중에 따라올 수 있는 논리형 증거 기반 추론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로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이나 정보를 접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을 ‘진실 기본값 이론(truth-default theory)’이라고 하는데, 상대방과 소통할 때 진위 여부보다는 일단 상대방 말을 정직하고 진실하다고 소극적으로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정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과도 어렵지 않게 효율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으나 상대방의 속임수에 취약해지기도 한다. 특히 상대방의 속임수와 자신의 세계관이 일치할 때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와인 뿐만 아니라 특정 물건을 구매할 때 전문가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와인, 어떤 제품을 선호하는지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유명한 수석 와이너리가 360년 전통의 샤토 로장 세글라를 권하면 마음에 들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 훨씬 더 좋아할 와인이 달리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맛과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의 와인을 고를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와인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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