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지도 않는데…" 현대차는 왜 '괴물 전기차' 만드나 [노정동의 선넘는 차(車)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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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동의 선넘는 차(車) 이야기
현대차 '아이오닉5 N' 출시
고성능 'N 브랜드' 첫 순수 전기차
정의선, 부회장 시절부터 고성능차 공들여
2019년 WRC 첫 종합 우승 쾌거
"고성능차, 완성차 업체 기술력 척도"
현대차 '아이오닉5 N' 출시
고성능 'N 브랜드' 첫 순수 전기차
정의선, 부회장 시절부터 고성능차 공들여
2019년 WRC 첫 종합 우승 쾌거
"고성능차, 완성차 업체 기술력 척도"
"팔리지도 않는 차를 왜 자꾸 만드는 거야?"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 시리즈' 차량이 나올 때마다 국내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단골처럼 나오는 반응입니다. 현대차의 지난해 글로벌 생산량이 400만대에 육박하는데 N 브랜드는 3만1000대가량 팔았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법도 합니다. 수치로만 따지면 전체 생산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고성능 차량의 성능은 자동차 업체가 가진 기술력으로 간주됩니다. 고성능차에 적용한 기술은 일반차에 적용하기도 합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가 레이싱카에 집착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왔다는 것은 업계에선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완성차 업체들이 잇따라 고성능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거나 개발 계획을 발표하는 것도 이런 역할 때문입니다. 향후 본격화될 전기차 시장에서 앞서나가는 이미지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2000년대까지만해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타는 차'라는 인식이 많았던 현대차는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진작부터 고성능차 개발에 공을 들였습니다. 특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부회장이던 시절부터 벤츠 'AMG', BMW 'M 시리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고성능차 개발에 집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4년 당시 BMW 고성능차 'M 시리즈'의 총괄 책임자였던 알버트 비어만 당시 부사장(現 현대차 기술고문 사장)을 현대차가 영입한 것도 정 회장이 물밑에서 힘쓴 결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차가 고성능차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 처음으로 '티뷰론'을 앞세워 모터스포츠대회(월드랠리챔피언십·WRC 마이너리그)에 참가했는데 꼴찌에서 두번째(5위) 성적을 냈습니다. 이후 참여한 대회에서도 계속 별다른 성과가 없자 아예 모터스포츠대회에서 철수해버렸습니다. 현대차 내부에선 "계속 망신만 당하는 것보다 철수하는 게 낫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합니다. 다시 WRC에 도전한 건 한참이 지난 2014년입니다. 당시 정의선 부회장이 비어만 부사장을 영입하고 밤낮으로 남양연구소를 찾아 개발 차량을 직접 타보기도 하는 등 고성능차 개발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고성능차 개발 담당 임직원들에겐 "포기하지 말고 밀어붙여보자"라고 독려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현대차는 일반인에게 판매할 고성능 차 브랜드 N을 출범시켰고 2017년 i30 N, 2018년 벨로스터 N을 잇따라 출시했습니다.
i30 N, 벨로스터 N 등으로 나름의 고성능차 노하우를 갖춘 현대차는 2019년에는 F1(포뮬러원)과 함께 세계 양대 자동차경주대회로 꼽히는 WRC에서 사상 첫 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이어 2020년에도 현대차는 이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거둬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조사로 평가받았습니다. N 브랜드의 다음 단계는 전기차입니다. 전기차는 배터리의 무거운 무게 때문에 고성능차와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고성능차는 높은 출력과 강력한 제동성능, 부드러운 곡선주행 능력 등이 필요한 데 거대한 배터리를 실어야 하는 전기차가 과연 이 같은 특성에 맞냐는 의구심이 따라붙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전기차 시장이 커질 게 확실시되면서 글로벌 제조사들은 이 같은 우려를 뒤로 하고 너도나도 고성능 전기차 개발에 뛰어든 상태입니다. 포르쉐는 타이칸 GTS를, 아우디는 RS 이트론 GT를, 벤츠는 AMG EQS 53을 각각 내놨습니다. 기술력으로 우려를 잠재우겠다는 목표로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기차에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최근 N 브랜드 첫 전기차인 '아이오닉 5 N'을 내놨습니다. 아이오닉5 N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이 3.4초에 불과합니다. 일정 시간 동안 가속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N 그린 부스트'를 사용하면 최고출력 650마력, 최대토크 770Nm의 압도적 성능을 발휘합니다. 체감할 수 있도록 비교하자면 페라리 '로마', 포르쉐 '911 GTS'와 비슷하고 람보르기니 '우루스'보다 더 빠릅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7월 영국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첫선을 보인 아이오닉5 N의 홍보대사를 자처할 만큼 공을 들이고 있는 차입니다. 정 회장은 이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차는 직접 운전을 해봐야 한다"며 "나도 직접 운전해보니 재밌었고 연구원들이 (이 차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해서 더 기분이 좋다"고 칭찬했습니다.
실제 현대차 연구원들이 이 차 개발을 위해 특단의 연구를 했다는 후문입니다. 개발 과정에서 고성능 전기차인 포르쉐 타이칸을 분해해가며 철저하게 분석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도 지난 6월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아이오닉5 N과 타이칸을 같이 시험 주행해보니 고속 주행 때 오히려 나은 면이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습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 N을 앞세워 N 브랜드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겠다는 목표입니다. N브랜드 판매량은 2017년 2027대로 시작해 ▲2018년 1만2123대 ▲2019년 1만8490대 ▲2020년 8675대 ▲2021년 1만7862대 ▲2022년 3만1724대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10대 중 9대 가량이 해외에서 팔린 건 더욱 주목할 만합니다. 판매량 수치 자체보다는 현대차가 글로벌 최고 수준 완성차 업체로 올라서기 위해 뚝심을 갖고 밀어붙이는 '포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 시리즈' 차량이 나올 때마다 국내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단골처럼 나오는 반응입니다. 현대차의 지난해 글로벌 생산량이 400만대에 육박하는데 N 브랜드는 3만1000대가량 팔았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법도 합니다. 수치로만 따지면 전체 생산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고성능 차량의 성능은 자동차 업체가 가진 기술력으로 간주됩니다. 고성능차에 적용한 기술은 일반차에 적용하기도 합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가 레이싱카에 집착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왔다는 것은 업계에선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완성차 업체들이 잇따라 고성능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거나 개발 계획을 발표하는 것도 이런 역할 때문입니다. 향후 본격화될 전기차 시장에서 앞서나가는 이미지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2000년대까지만해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타는 차'라는 인식이 많았던 현대차는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진작부터 고성능차 개발에 공을 들였습니다. 특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부회장이던 시절부터 벤츠 'AMG', BMW 'M 시리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고성능차 개발에 집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4년 당시 BMW 고성능차 'M 시리즈'의 총괄 책임자였던 알버트 비어만 당시 부사장(現 현대차 기술고문 사장)을 현대차가 영입한 것도 정 회장이 물밑에서 힘쓴 결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차가 고성능차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 처음으로 '티뷰론'을 앞세워 모터스포츠대회(월드랠리챔피언십·WRC 마이너리그)에 참가했는데 꼴찌에서 두번째(5위) 성적을 냈습니다. 이후 참여한 대회에서도 계속 별다른 성과가 없자 아예 모터스포츠대회에서 철수해버렸습니다. 현대차 내부에선 "계속 망신만 당하는 것보다 철수하는 게 낫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합니다. 다시 WRC에 도전한 건 한참이 지난 2014년입니다. 당시 정의선 부회장이 비어만 부사장을 영입하고 밤낮으로 남양연구소를 찾아 개발 차량을 직접 타보기도 하는 등 고성능차 개발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고성능차 개발 담당 임직원들에겐 "포기하지 말고 밀어붙여보자"라고 독려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현대차는 일반인에게 판매할 고성능 차 브랜드 N을 출범시켰고 2017년 i30 N, 2018년 벨로스터 N을 잇따라 출시했습니다.
i30 N, 벨로스터 N 등으로 나름의 고성능차 노하우를 갖춘 현대차는 2019년에는 F1(포뮬러원)과 함께 세계 양대 자동차경주대회로 꼽히는 WRC에서 사상 첫 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이어 2020년에도 현대차는 이 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거둬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조사로 평가받았습니다. N 브랜드의 다음 단계는 전기차입니다. 전기차는 배터리의 무거운 무게 때문에 고성능차와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고성능차는 높은 출력과 강력한 제동성능, 부드러운 곡선주행 능력 등이 필요한 데 거대한 배터리를 실어야 하는 전기차가 과연 이 같은 특성에 맞냐는 의구심이 따라붙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전기차 시장이 커질 게 확실시되면서 글로벌 제조사들은 이 같은 우려를 뒤로 하고 너도나도 고성능 전기차 개발에 뛰어든 상태입니다. 포르쉐는 타이칸 GTS를, 아우디는 RS 이트론 GT를, 벤츠는 AMG EQS 53을 각각 내놨습니다. 기술력으로 우려를 잠재우겠다는 목표로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기차에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최근 N 브랜드 첫 전기차인 '아이오닉 5 N'을 내놨습니다. 아이오닉5 N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이 3.4초에 불과합니다. 일정 시간 동안 가속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N 그린 부스트'를 사용하면 최고출력 650마력, 최대토크 770Nm의 압도적 성능을 발휘합니다. 체감할 수 있도록 비교하자면 페라리 '로마', 포르쉐 '911 GTS'와 비슷하고 람보르기니 '우루스'보다 더 빠릅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7월 영국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첫선을 보인 아이오닉5 N의 홍보대사를 자처할 만큼 공을 들이고 있는 차입니다. 정 회장은 이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차는 직접 운전을 해봐야 한다"며 "나도 직접 운전해보니 재밌었고 연구원들이 (이 차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해서 더 기분이 좋다"고 칭찬했습니다.
실제 현대차 연구원들이 이 차 개발을 위해 특단의 연구를 했다는 후문입니다. 개발 과정에서 고성능 전기차인 포르쉐 타이칸을 분해해가며 철저하게 분석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도 지난 6월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아이오닉5 N과 타이칸을 같이 시험 주행해보니 고속 주행 때 오히려 나은 면이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습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 N을 앞세워 N 브랜드의 글로벌 위상을 높이겠다는 목표입니다. N브랜드 판매량은 2017년 2027대로 시작해 ▲2018년 1만2123대 ▲2019년 1만8490대 ▲2020년 8675대 ▲2021년 1만7862대 ▲2022년 3만1724대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10대 중 9대 가량이 해외에서 팔린 건 더욱 주목할 만합니다. 판매량 수치 자체보다는 현대차가 글로벌 최고 수준 완성차 업체로 올라서기 위해 뚝심을 갖고 밀어붙이는 '포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