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머스크, 당신은 슈퍼 히어로인가요 악당인가요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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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21세기북스
760쪽│3만8000원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21세기북스
760쪽│3만8000원
“당신은 정말 세상을 구하려는 겁니까?”
2015년 미국 CBS 방송의 심야 토크쇼 ‘더 레이트 쇼’에 출연한 일론 머스크에게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가 물었다. “글쎄요, 좋은 일을 하려 노력하고는 있죠.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뭐랄까 조금…” 콜베어가 끼어들었다. “좋은 일을 하려 하지만, 동시에 억만장자이기도 하죠. 그건 좀 슈퍼 히어로나 슈퍼 악당처럼 들리네요. 어느 쪽인지 하나 골라주세요.” 머스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그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 할 뿐”이라고 말했다.
올해 52세인 머스크는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 지도자 등 몇몇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힌다. 우주 로켓(스페이스X), 위성 인터넷(스타링크), 전기차(테슬라), 소셜미디어(엑스), 뇌와 컴퓨터의 연결(뉴럴링크),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보링컴퍼니), 인공지능(엑스AI) 등 그가 벌이는 사업은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친다.
머스크는 영웅인가, 악당인가. 최근 미국과 한국 등 32개국에 동시 출간된 그의 공식 전기 <일론 머스크>는 이제는 단순히 토크쇼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 중대한 질문에 힌트를 제공한다. 그에 대한 책은 이미 몇 권 나와 있지만, 저자가 <스티브 잡스> 등을 쓴 유명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기에 세계인의 이목이 이 책에 쏠리고 있다. 그는 2년 동안 머스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주변인을 인터뷰하며 가장 상세하고 내밀한 그의 전기를 완성했다. 머스크는 자신이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광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다른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하지 않고 지구에만 머물러 있으면, 필연적으로 어떤 재난에 의해 인류 문명은 파괴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가 잠을 줄여가며 일에 몰두하는 이유다. 무능하거나 헌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직원을 맹렬하게 질책하고 심지어 그 자리에서 해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3명의 여성을 통해 11명의 자녀를 낳은 것도 인류를 위해 똑똑한 유전자를 많이 남겨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아이작슨은 이런 머스크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심리 치료사처럼, 그 근원을 파고든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머스크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폭력적인 사회였다. 그곳 아이들은 ‘벨트스쿨’이란 생존 캠프에 보내졌다. 소설 <파리대왕>에 나온 환경과 비슷했다.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은 각각 소량의 음식과 물을 지급받았고, 서로 싸워서 배급품을 빼앗는 게 허용됐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감 능력이 떨어졌던 머스크는 체격이 작던 저학년 시절, 못된 친구들에게 얼굴을 맞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 집에선 아버지에게 정서적 학대를 받았다.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고 돌아와도 머스크를 나무랐다. 머스크에게 멍청이에다 쓸모없는 놈이라도 했다. 아이작슨은 “일론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버지를 멀리하려고 수없이 시도했지만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일론의 기분은 밝음과 어두움, 강렬함과 얼빠짐, 세심함과 무심함을 주기적으로 넘나들었고,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악마 모드’에 빠져들고 했다”고 적었다.
스스로 감정을 차단한 어린 머스크에게 독서가 안식처가 됐다. 오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9시간 내내 독서에 몰두하기도 했다. 여러 과학소설(SF)을 읽으며 우주 개척에 대한 꿈을 키웠다.
혁신가는 괴팍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걸까. 아이작슨은 그렇다는 데 동의하는 것 같다. 다만 머스크에 마냥 호의적이진 않다.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였던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어둠의 힘에 굴복해 다스 베이더로 타락한 것처럼 머스크 역시 그럴 위험이 있다고 본다. 2022년 트위터(현 엑스) 인수가 그런 예다. 머스크의 트랜스젠더 딸인 제나가 급진적인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며 “나는 당신(머스크)과 당신이 옹호하는 모든 것이 싫다”며 절연을 선언한 것이 영향을 줬다. 머스크는 이를 정치적 올바름(PC)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깨어있는 마음(woke mind) 바이러스’ 탓으로 돌렸다. 트위터를 그 온상이라고 봤다. 머스크가 점점 더 우경화되고, 음모론에 빠져든 것도 이 무렵부터라는 설명이다.
아이작슨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책을 끝낸다. “모든 어두운 충동적 행동과 악마 모드의 분출을 억제할 수 있는 충동 조절 버튼이 있다면, 분명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절제된 머스크가 구속되지 않은 머스크만큼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을까? 여과되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것이 머스크라는 인물의 본질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닐까?”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2015년 미국 CBS 방송의 심야 토크쇼 ‘더 레이트 쇼’에 출연한 일론 머스크에게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가 물었다. “글쎄요, 좋은 일을 하려 노력하고는 있죠.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뭐랄까 조금…” 콜베어가 끼어들었다. “좋은 일을 하려 하지만, 동시에 억만장자이기도 하죠. 그건 좀 슈퍼 히어로나 슈퍼 악당처럼 들리네요. 어느 쪽인지 하나 골라주세요.” 머스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그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 할 뿐”이라고 말했다.
올해 52세인 머스크는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 지도자 등 몇몇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힌다. 우주 로켓(스페이스X), 위성 인터넷(스타링크), 전기차(테슬라), 소셜미디어(엑스), 뇌와 컴퓨터의 연결(뉴럴링크),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보링컴퍼니), 인공지능(엑스AI) 등 그가 벌이는 사업은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친다.
머스크는 영웅인가, 악당인가. 최근 미국과 한국 등 32개국에 동시 출간된 그의 공식 전기 <일론 머스크>는 이제는 단순히 토크쇼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 중대한 질문에 힌트를 제공한다. 그에 대한 책은 이미 몇 권 나와 있지만, 저자가 <스티브 잡스> 등을 쓴 유명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기에 세계인의 이목이 이 책에 쏠리고 있다. 그는 2년 동안 머스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주변인을 인터뷰하며 가장 상세하고 내밀한 그의 전기를 완성했다. 머스크는 자신이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광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다른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하지 않고 지구에만 머물러 있으면, 필연적으로 어떤 재난에 의해 인류 문명은 파괴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가 잠을 줄여가며 일에 몰두하는 이유다. 무능하거나 헌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직원을 맹렬하게 질책하고 심지어 그 자리에서 해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3명의 여성을 통해 11명의 자녀를 낳은 것도 인류를 위해 똑똑한 유전자를 많이 남겨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아이작슨은 이런 머스크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심리 치료사처럼, 그 근원을 파고든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머스크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폭력적인 사회였다. 그곳 아이들은 ‘벨트스쿨’이란 생존 캠프에 보내졌다. 소설 <파리대왕>에 나온 환경과 비슷했다.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은 각각 소량의 음식과 물을 지급받았고, 서로 싸워서 배급품을 빼앗는 게 허용됐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감 능력이 떨어졌던 머스크는 체격이 작던 저학년 시절, 못된 친구들에게 얼굴을 맞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 집에선 아버지에게 정서적 학대를 받았다.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고 돌아와도 머스크를 나무랐다. 머스크에게 멍청이에다 쓸모없는 놈이라도 했다. 아이작슨은 “일론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버지를 멀리하려고 수없이 시도했지만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일론의 기분은 밝음과 어두움, 강렬함과 얼빠짐, 세심함과 무심함을 주기적으로 넘나들었고,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악마 모드’에 빠져들고 했다”고 적었다.
스스로 감정을 차단한 어린 머스크에게 독서가 안식처가 됐다. 오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9시간 내내 독서에 몰두하기도 했다. 여러 과학소설(SF)을 읽으며 우주 개척에 대한 꿈을 키웠다.
혁신가는 괴팍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걸까. 아이작슨은 그렇다는 데 동의하는 것 같다. 다만 머스크에 마냥 호의적이진 않다.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였던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어둠의 힘에 굴복해 다스 베이더로 타락한 것처럼 머스크 역시 그럴 위험이 있다고 본다. 2022년 트위터(현 엑스) 인수가 그런 예다. 머스크의 트랜스젠더 딸인 제나가 급진적인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며 “나는 당신(머스크)과 당신이 옹호하는 모든 것이 싫다”며 절연을 선언한 것이 영향을 줬다. 머스크는 이를 정치적 올바름(PC)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깨어있는 마음(woke mind) 바이러스’ 탓으로 돌렸다. 트위터를 그 온상이라고 봤다. 머스크가 점점 더 우경화되고, 음모론에 빠져든 것도 이 무렵부터라는 설명이다.
아이작슨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책을 끝낸다. “모든 어두운 충동적 행동과 악마 모드의 분출을 억제할 수 있는 충동 조절 버튼이 있다면, 분명 좋은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절제된 머스크가 구속되지 않은 머스크만큼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을까? 여과되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것이 머스크라는 인물의 본질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닐까?”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