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 전기자동차 기업에 중국산 전자부품만 사용할 것을 주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이 전체 전기차 공급망을 자국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에 맞대응하는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中 지시에 미·일 업체 타격 전망

中, 전기차 업체에 "중국산 부품만 써라" 압박
17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 중국 정부의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공업정보화부 장관을 지낸 인사가 작년 11월 자국 자동차 관련 업체에 “전기차 제조 시 중국 기업이 만든 전자부품을 사용하라”는 구두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 고위급 인사는 차량용 반도체 등 부품의 중국산 사용률 목표를 세우라고도 요구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전기차 제조사에 벌칙 등 불이익을 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요미우리는 전자부품의 국산품 사용률 검사 제도 도입 등이 예상된다고 했다.

아직은 중국 업체의 구체적인 외국산 부품 배제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가 은밀한 ‘구두지시’를 내린 만큼 국산화 수준을 단계적으로 높여갈 전망이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재정부 등은 지난 1일 발간한 ‘자동차산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업무 방안’ 문서에서 자동차산업의 공급망 안정을 감독하는 틀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전기차 판매 대수는 2020년 136만7000대에서 2021년 352만 대, 지난해 689만 대로 급증세다. 올 들어 8월까지 판매 대수는 537만 대로, 연간 800만 대 돌파가 유력하다. 중국은 올 1분기 신에너지차와 내연기관차를 통틀어 99만4000대를 수출해 일본(95만4000대)을 앞지르며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발맞춰 중국의 자동차 부품 시장 규모도 작년 3조8800억위안(약 709조원)에서 2028년에는 4조8000억위안(약 878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중국은 미국·일본·유럽 부품업체와 합작하는 과정에서 전기차 부품 제조 기술을 대폭 향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는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구동장치 외에 거의 모든 부품 제조 기술을 이미 확보했다고 전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중국이 국산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 미국과 일본, EU 자동차 부품사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구의 공급망 배제에 맞대응

중국이 전기차 부품 국산화를 추진하는 건 미국 주도로 중국을 주요 산업 분야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에 맞대응하려는 목적이라는 평가다. 반도체 제조 장비처럼 서구가 갑자기 대(對)중국 수출을 중단할 경우에도 전기차 생산에 문제가 없도록 자생력을 키우겠다는 의도다.

미국은 대중국 포위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공급망 협정을 최우선 타결해 반도체와 핵심 광물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로 했다. 또 중국의 자원 무기화로 위기 발생 시 회원국끼리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EU도 반도체와 배터리 등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핵심원자재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법안은 2030년까지 제3국이 생산하는 전략적 원자재 의존도를 역내 전체 소비량의 65% 미만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시작된 전쟁' 저자인 이철 작가는 “양쪽 진영이 기존의 효율적 자원 배분을 망가뜨리는 디커플링(탈동조화) 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결국 제품 가격을 상승시켜 세계 인플레이션을 더 자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