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복귀한 직장인들 "계속 재택할 방법 없나요"
*이 글은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의 자문 아래 작성됐습니다.


최근 MZ세대 근로자들이 기업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복지혜택이다. 한국기업의 지불능력이 전례 없이 높아지면서 근로자들은 임금 뿐 아니라 각종 복지혜택의 확대를 요구해 왔다. 이에 기업들도 경쟁하듯 각종 복지혜택을 확대하면서 화답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복지혜택이 권리처럼 여겨저 노사 갈등의 원인이 되는 사례가 있다. '재택 근무 철회'가 대표적이다.

근로자들의 근무장소를 지정하는 권한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인사권에 해당한다. 대부분 근로계약서에 근무장소(예컨대 본사)를 정하면서 ‘기타 회사가 정하는 장소’를 기재하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IT기업을 시작으로 일반 기업에서도 재택근무가 전격 허용됐고, 재택근무의 유용성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지만 업무 퀄리티 저하와 직원들간 의사소통 어려움, 재택근무 중 주식투자나 심지어 투잡(Two Job)을 하는 등 각종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사무실 복귀한 직장인들 "계속 재택할 방법 없나요"
재택근무의 생산성이나 효용성에 대한 의심이 늘어나면서, 세계적 기업의 CEO인 일론 머스크도 테슬라 직원 및 트위터 직원들에게 재택근무(원격근무) 금지를 선언했다. 세계적 콘텐츠 기업인 월트디즈니도 주4일 사무실 출근을 주문하는 재택근무 축소 지침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근로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특히 오피스 근무 명령이 부당전보에 해당한다고 주장까지 제기됐다. 판교의 일부 IT기업에서는 재택근무 축소나 폐지에 따라 노조 가입률이 늘기도 했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재택근무 경험이 있는 직장인 697명과 구직자 367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이나 이직 시 회사의 재택근무 제도 여부가 입사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 묻는 문항에 ‘매우 클 것’(16.4%) ‘대체로 클 것’(41.6%)이라는 응답이 과반(58%)이었다. 특히 현재 재택근무 중인 응답자의 70.3%는 회사에서 현 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면 이직을 고려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재택근무, 별도 조항 없으면 법적 권리 아냐

현행법적으로는 재택근무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고용부도 재택근무의 도입 실시에 대한 가이드라인에서 “재택근무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근로자가 신청했다고 사용자가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기본적으로 재택근무의 시행과 철회는 모두 사용자의 재량이다.

사용자가 재택근무 실시를 철회하고 복귀 명령을 내리는 것은 정당한 인사권에 해당하므로, 이에 대해서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여지는 상당히 적다.

만약 근로자 입장에서 어떤 기업이 재택 등 복지혜택을 실시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직이나 취업을 선택했다면, 해당 기업의 재택근무 근거 조항을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법적으로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회사 측이 과도한 친절을 베풀어 노조와의 합의 등에 따라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 재택근무를 실시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집어넣게 된 경우엔 얘기가 다르다.

임금 삭감이나 근로시간의 변경 없이 재택근무 실시 조항을 취업규칙이나 단체 협약에 넣는것 자체는 사회통념상 근로자에게 불이익하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별도의 과반수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동의 없이도 쉽게 재택근무 조항을 도입하는 게 가능하다. 도입은 매우 쉽다는 뜻이다.

단협·취업규칙에 도입을 하는 경우엔 재택근무의 신청 자격이나 대상 직무 등을 정하고 소정 절차에 따라 재택근무를 신청하는 경우 회사가 허용해주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이 경우 사용자가 조건에 맞는 재택근무 신청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다면, 사용자는 해당 조항에 구속된다. 즉 원칙적으로 재택근무 신청에 응해야하는 법적 의무를 지게 된다.

재택근무를 철회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미 해당 조항에 따라 ‘의무화’가 돼 있으므로 재택근무를 함부로 철회하거나 복귀 명령을 내렸다가는 단협이나 취업규칙 위반 문제로 불거지게 될 수 있다.

사용자가 뒤늦게 재택근무 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싶어진다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재택근무 폐지는 근로자에게 ‘불이익’하다고 해석될 여지가 크기 때문에, 이 경우엔 근로기준법에 따라 과반수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라는 집단적 동의 절차를 거쳐야만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다. 단체협약 바꾸기는 상당한 출혈을 필요로 한다.

“내 선의를 알아주겠지” 안일한 복지제도 도입, 결과는 ‘파국’

이처럼 회사가 의무가 아닌 복지혜택의 일환으로 제공한 제도들이 악용되거나 회사를 상대로 한 제소 등 기업들에 부정적인 결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기업들이 특정 복지혜택을 처음 도입하거나 확대할 때는 선의에 기반한 자의로 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차는 장기근속한 퇴직자에게 자사 제품의 25% 할인 혜택을 평생 제공하는 파격적인 복지혜택을 줬다. 퇴직 근로자들이 75세까지 차를 할인 받을 수 있게 해서 애사심과 소비를 고취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단체협약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근로자들의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가 됐다.

여러 이유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데다 근로자 숫자 증가, 고령화로 회사의 재정적 부담도 늘고 있지만 이제는 돌이키기 어려워 졌다.

심지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부 퇴직자들에게 혜택을 부여하지 않자, 이들은 이러한 복지혜택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고 인권위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였던 GM은 퇴직자 및 그 가족들의 생활과 의료를 보장하는 파격적인 복지제도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2000년 초반 직원과 퇴직자 및 그 가족에게 지급하는 의료보험이 매년 60억 달러(약 7조8000억원)에 달했고, 퇴직자에게 지급할 연금이 600억 달러로 당시 GM 시가총액의 4배를 넘었다. 결국 GM은 2009년 미 연방정부에 파산보호를 신청하기도 했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기업들은 복지혜택의 도입이나 확대가 근로자들을 위한다는 단순한 선의의 판단보다는 해당 제도를 도입할 경우 임금이나 근로조건으로 인정되어 추가 비용을 부담할 리스크, 해당 복지혜택의 축소나 폐지가 자유로운지, 해당 복지혜택의 악용에 대한 관리 리스크는 없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