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투자·토큰증권은 '새로운 금융'…속도 더 높여야"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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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준 바이셀스탠다드 대표 기고
조각투자 플랫폼 '피스'를 운영하는 바이셀스탠다드의 신범준 대표가 '토큰증권 시대'에 대한 생각을 한경 긱스(Geeks)에 전해왔습니다.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
가을이 왔는데 가을 같지 않다. 조각투자와 토큰증권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금융을 고민하는 사업자로서 요즘 자주 떠올리는 말이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말처럼 가을이 와도 가을 같지 않은 심정이다.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비정형 증권 형태로서 토큰증권이 제도화되는 길이 열렸고, 이제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조바심이 드는 것이다. ‘투자계약증권’이라는 법조문의 개념으로만 받아들여졌던 제도가 실체화되는 등 기대감이 커서 더 그렇다. ‘여물어가야 하는 계절인데 가을 같지 않다’는 점은 무척 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각투자와 토큰증권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금융에 있어서 지난해와 올해는 기념비적인 해가 될 것이다. 현 정부는 대선 직후 국정과제로 토큰증권(당시는 증권형 토큰이라고 표현했다)을 활성화하는 것을 발표했고, 그에 맞춰 정책 방향을 정해왔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신탁업 혁신 방안에서는 수익증권의 대상으로 금전채권 외의 다양한 현물 및 권리까지 확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존에는 금전채권에 대해서만 발행이 가능했다. 11월에는 미술품과 한우에 대한 조각투자가 투자계약증권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투자계약증권의 발행을 위한 구체적인 요건을 제시하여 사업재편에 들어가게 했다. 지난 2월에는 새로운 증권발행 방식으로서 ‘토큰증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발표됐고 관련 입법안이 지난 7월에 제출됐다. 아울러 7월에는 조각투자 관련 투자계약증권 발행을 위한 서식이 발표됐다. 불과 최근 1년 사이에 토큰증권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제도적인 방향성이 결정된 셈이다.
실제로 관련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어떤 부분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여러모로 답답하다. 하지만 새로운 금융에 대한 정부와 금융당국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제도화가 진행 중이거나 논의만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라면 누구라도, 레퍼런스가 없는 정책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창조’의 고통을 이해할 것이다.
‘자연 발생한’ 시장이라도 그 투명성과 안정성을 높여 투자자를 보호하는 관계 당국의 역할은 필요하다. 특히 그것이 금융이라면 긴 말이 필요없다. 훨씬 높은 수준의 규제도 감수해야 한다. 시장이 더 커지기 전에 정부가 제도화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다만, 이미 형성된 시장인 만큼 정책 방향이 결정된 이후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집행이 아쉽다. 이미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하고 있던 회사들은 사업구조를 재구성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었다. 정부의 제도화 및 사업재편 과정에서 이 회사들은 영업을 중단했다. 막대한 손실을 감내하면서 전사적 역량을 동원한 것이다.
지난해 5월 영업을 중단한 뮤직카우는 1년 4개월, 지난 해 11월에 투자계약증권으로 판정받은 미술품, 한우 조각투자 업체들은 1년간 신규 포트폴리오 모집을 중단 중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피스’ 역시 지난해 11월 발표된 지침에 따라 즉시 사업을 중단한 상황이다. 스타트업이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매출이 없다는 것은 크나큰 위협이다. 특히 초기에 적은 가용자원으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실증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고통은 몇 배나 된다. 시장을 건전화하기 위한 제도화 노력이 '퍼스트 펭귄'에게 가혹한 상황이 돼버렸다.
현재 정부의 정책 방향은 크게 두 개의 트랙으로 이해된다. 투자계약증권 등을 통해 현물에 대한 직접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것과 토큰증권을 통해 비정형적 방식으로 이를 발행 및 유통케 하는 것이다. 투자계약증권과 관련해서는 이미 몇몇 업체가 증권신고서 제출을 준비하고 있고, 토큰증권에 대해서는 이제 법안이 제출된 만큼 국회에서 입법이 진행될 것이다.
투자계약증권의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 서식은 지난 7월말 발표됐다. 자본시장법상 개념으로만 존재했던 것이 실체를 갖추게 된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초기 단계의 산업에서, 상당수가 스타트업인 상황에서 상장사 수준의 증권신고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부담이 크다. 현재까지 조각투자 기업 대부분의 발행 포트폴리오는 5억원 미만이었고, 1억원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1억원 수준의 증권을 발행하는 데 외부 회계감사, 투자대상물에 대한 감정평가, 주요 계약 내용에 대한 법률 검토를 모두 외부에서 받게 하면, 순수 외부 용역비용만 건당 수천만원이 소요될 수도 있다.
물론 기업이 발행 포트폴리오의 규모를 키워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면 고가의 현물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사업자만 투자계약증권을 통한 사업이 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 아울러 1억~5억원 규모의 자산을 가진 주체는 해당 자산을 토큰증권화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가령 신진 미술작가의 경우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하려 해도 그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혁신적인 방식의 새로운 금융이 기존 금융의 소외된 이들을 다시 한번 소외시키는 안타까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증권신고 프로세스를 간소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발행 규모에서 30억원 미만의 투자계약증권에 대해서는 간소한 서식을 활용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특히 이미 투자계약증권 발행을 위한 요건(예치금 분리보관, 소유권 공유지분의 법적 입증 등)을 갖춘 기업을 별도로 심사해, 적합한 사업구조를 확립한 기업에 대해서는 발행에 대한 패스트트랙을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투자계약증권 발행에 맞게 사업재편을 마친 기업과 사업구조 자체를 검토받아야 하는 기업 모두를 당국이 함께 심사하는 혼란이 우려되기도 한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토큰증권 관련 법안은 제도의 큰 틀만을 제시한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유불리를 판단하기에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아마 법안이 입법화되고 시행령, 시행규칙 등이 제정되면서 기업이 제도의 효과를 실감하게 될 것 같다. 다소 이른 시점이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우려가 되는 점이 있다.
먼저 토큰증권이 발행 및 유통될 때 장외거래시장에서 일반투자자의 투자 한도를 시장별, 종목별로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도산절연이 되고 투자위험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쉬운 수익증권을 토큰화하는 것은 투자 한도를 상대적으로 높게 설정하되, 투자계약증권의 경우 도산절연에 대한 우려로 일반투자자 투자 한도를 수익증권보다 낮게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익증권의 경우 ‘금전채권’을 신탁할 경우에만 발행이 가능하지만, 정부는 ‘비금전신탁’에 대해서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 해도 수익증권은 ‘신탁사’만 발행이 가능한 것이다. 기존 금융권인 신탁사가 발행한 증권을 토큰증권에서도 우대하는 것이 ‘다양한 투자대상에 대한 비정형 증권발행을 통해 금융혁신을 추구하려는’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
투자계약증권의 발행도 증권신고서 제출 및 주요 사항의 공시, 투자자 보호 관련 제도 도입 등 위험 감소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 위에서 발행하게 된다. 특히 투자계약증권 중 현물에 투자하는 것은 대상 현물이 존재하고, 소유권 배분 상황을 공증하는 등 도산절연의 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엄격한 규제를 받아서 발행되는 투자계약증권인 만큼 부당하게 제한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투자자 보호’라는 원칙이 지켜지는 범위에서 일반 투자자의 투자 한도는 토큰증권 발행 사업자가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이 점에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온투업)의 경우 개인 투자자 투자 한도가 연간 4000만원까지 허용되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투자대상 현물 및 권리가 이미 확보되고 도산절연에 대한 우려를 충분히 불식한 투자계약증권이 온투업보다 위험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지 않겠는가.
토큰증권의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의 요건 역시 시행령에 위임 사항으로서 아직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 수준으로 규정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핀테크 기업으로서 충족하기 어려운 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이 아니어도 증권사 등 기존 계좌관리기관을 통해 토큰증권을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해당 핀테크 기업은 기존 금융기관의 제도적, 기술적 범위 안에서 제한을 받게 된다.
자체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핀테크 기업이라고 해도, 계좌관리기관인 증권사가 해당 블록체인을 인정하지 않고 증권사와 제휴된 블록체인의 사용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융상품의 구성 등에 대해서도 증권사의 간섭을 받을 수 있어 핀테크 기업의 자율성이 제한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비정형증권 발행을 통해 금융시장의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제도의 취지를 고려할 때, 토큰증권 발행에 대한 핀테크 기업의 자율성에 부당한 제한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결국 핀테크 기업 자신이 자체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가지고 계좌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의 등록요건을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되기 전까지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수준에서 결정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지난 2월 정부는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토큰증권 관련 제도화가 되기 이전이라도 혁신성이 있을 경우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실증 테스트하겠다고 했다. 이후로 많은 기업에서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토큰증권의 실증을 위해 수요조사 신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통상 혁신금융서비스는 승인이 되더라도 추가적인 조건들을 충족하고 사업화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이다. 조각투자 업체 뮤직카우는 지난해 10월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됐지만, 그후 1년이 지난 이달 말에야 해당 혁신금융서비스에 따른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정부의 입법 일정으로 볼 때 토큰증권의 제도화는 2024년 말까지 마무리되고, 2025년 초부터 본격적인 토큰증권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선제적으로 움직인 기업들이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사업을 시작하려는 시점과 제도화의 시점이 차이가 없게 될 수도 있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혁신적 핀테크 스타트업인 반면, 제도화를 기다리는 기업들은 기존 금융권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 기존 금융권은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니 토큰증권이 제도화되는 시점까지 시뮬레이션을 충분히 해보면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핀테크 스타트업은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한 실증이 아니고서는 사업화에 대한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퍼스트 펭권으로 움직인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시행착오 가운데서 소외를 당하고, 이들을 예의주시하면서 움직이는 기존 금융권 대기업들이 토큰증권 시대를 향유하는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바람직하다고 보긴 어렵지 않겠는가.
바야흐로 조각투자와 토큰증권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금융의 혁신에 결실의 계절은 당도했다. 새로운 금융에 대해 도전을 한 많은 기업가들과 이들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금융당국 모두가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다. 자신이 가진 자산을 누구나 쉽게 유동화하고 편리하게 투자할 수 있는 그런 혁신적인 금융의 결실을 시샘하는 ‘이상기후’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경험으로 안다. 이런 이상기후는 결국 더좋은 환경을 만들어내려는 모두의 각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신범준 바이셀스탠다드 대표
현물 조각투자 플랫폼 ’피스’를 만들었다. 국민대 정치학 석사를 졸업했고 기자와 국회를 거쳐 스타트업 생태계에 뛰어들었다. 최근 피스를 통해 국토교통부장관상,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상,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사장상 등을 수상했다.
가을이 왔는데 가을 같지 않다. 조각투자와 토큰증권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금융을 고민하는 사업자로서 요즘 자주 떠올리는 말이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말처럼 가을이 와도 가을 같지 않은 심정이다.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비정형 증권 형태로서 토큰증권이 제도화되는 길이 열렸고, 이제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조바심이 드는 것이다. ‘투자계약증권’이라는 법조문의 개념으로만 받아들여졌던 제도가 실체화되는 등 기대감이 커서 더 그렇다. ‘여물어가야 하는 계절인데 가을 같지 않다’는 점은 무척 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각투자와 토큰증권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금융에 있어서 지난해와 올해는 기념비적인 해가 될 것이다. 현 정부는 대선 직후 국정과제로 토큰증권(당시는 증권형 토큰이라고 표현했다)을 활성화하는 것을 발표했고, 그에 맞춰 정책 방향을 정해왔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신탁업 혁신 방안에서는 수익증권의 대상으로 금전채권 외의 다양한 현물 및 권리까지 확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존에는 금전채권에 대해서만 발행이 가능했다. 11월에는 미술품과 한우에 대한 조각투자가 투자계약증권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투자계약증권의 발행을 위한 구체적인 요건을 제시하여 사업재편에 들어가게 했다. 지난 2월에는 새로운 증권발행 방식으로서 ‘토큰증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발표됐고 관련 입법안이 지난 7월에 제출됐다. 아울러 7월에는 조각투자 관련 투자계약증권 발행을 위한 서식이 발표됐다. 불과 최근 1년 사이에 토큰증권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제도적인 방향성이 결정된 셈이다.
실제로 관련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어떤 부분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여러모로 답답하다. 하지만 새로운 금융에 대한 정부와 금융당국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제도화가 진행 중이거나 논의만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라면 누구라도, 레퍼런스가 없는 정책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창조’의 고통을 이해할 것이다.
언젠가는 등장했을 투자 방식
먼저 전제할 것은 조각투자와 토큰증권과 관련된 시장은 이미 자생해왔다는 점이다. 혼자 구입할 수 없는 현물을 지인들과 공동으로 매입해 일정 기간 후 차액이 발생하면 이를 배분하는 방식은 이제 너무 흔한 일이다. 창업가들은 이 지점에서 사업의 기회를 찾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공동으로 현물을 구매하여 수익화할 수 없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다.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이 이에 대한 해결책이었다(물론 모든 조각투자 업체가 블록체인을 활용하지는 않는다. 블록체인을 활용하지 않는 사업자는 현물에 대한 인증과 사업자 자신의 전문성, 신뢰성을 바탕으로 조각투자 사업을 한다). 결국 언젠가는 나타나게 될 시장이었다는 것이다.‘자연 발생한’ 시장이라도 그 투명성과 안정성을 높여 투자자를 보호하는 관계 당국의 역할은 필요하다. 특히 그것이 금융이라면 긴 말이 필요없다. 훨씬 높은 수준의 규제도 감수해야 한다. 시장이 더 커지기 전에 정부가 제도화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다만, 이미 형성된 시장인 만큼 정책 방향이 결정된 이후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집행이 아쉽다. 이미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하고 있던 회사들은 사업구조를 재구성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었다. 정부의 제도화 및 사업재편 과정에서 이 회사들은 영업을 중단했다. 막대한 손실을 감내하면서 전사적 역량을 동원한 것이다.
지난해 5월 영업을 중단한 뮤직카우는 1년 4개월, 지난 해 11월에 투자계약증권으로 판정받은 미술품, 한우 조각투자 업체들은 1년간 신규 포트폴리오 모집을 중단 중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피스’ 역시 지난해 11월 발표된 지침에 따라 즉시 사업을 중단한 상황이다. 스타트업이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매출이 없다는 것은 크나큰 위협이다. 특히 초기에 적은 가용자원으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실증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고통은 몇 배나 된다. 시장을 건전화하기 위한 제도화 노력이 '퍼스트 펭귄'에게 가혹한 상황이 돼버렸다.
'토큰증권 시대' 속도 내야
지금이라도 속도를 내야 한다. 신속하게 시장이 확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간의 긴밀한 소통과 공동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투자 방식에 대한 금융당국의 우려와 시장의 활성화를 꾀하는 기업들의 바람이 함께 논의되면 금상첨화다. 마침 핀테크 기업들의 모임인 핀테크산업협회가 산하에 ‘토큰증권협의회’를 구성했다. 본격적으로 논의에 나서고자 하는 만큼 이러한 채널도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현재 정부의 정책 방향은 크게 두 개의 트랙으로 이해된다. 투자계약증권 등을 통해 현물에 대한 직접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것과 토큰증권을 통해 비정형적 방식으로 이를 발행 및 유통케 하는 것이다. 투자계약증권과 관련해서는 이미 몇몇 업체가 증권신고서 제출을 준비하고 있고, 토큰증권에 대해서는 이제 법안이 제출된 만큼 국회에서 입법이 진행될 것이다.
투자계약증권의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 서식은 지난 7월말 발표됐다. 자본시장법상 개념으로만 존재했던 것이 실체를 갖추게 된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초기 단계의 산업에서, 상당수가 스타트업인 상황에서 상장사 수준의 증권신고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부담이 크다. 현재까지 조각투자 기업 대부분의 발행 포트폴리오는 5억원 미만이었고, 1억원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1억원 수준의 증권을 발행하는 데 외부 회계감사, 투자대상물에 대한 감정평가, 주요 계약 내용에 대한 법률 검토를 모두 외부에서 받게 하면, 순수 외부 용역비용만 건당 수천만원이 소요될 수도 있다.
물론 기업이 발행 포트폴리오의 규모를 키워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면 고가의 현물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사업자만 투자계약증권을 통한 사업이 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 아울러 1억~5억원 규모의 자산을 가진 주체는 해당 자산을 토큰증권화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가령 신진 미술작가의 경우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하려 해도 그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혁신적인 방식의 새로운 금융이 기존 금융의 소외된 이들을 다시 한번 소외시키는 안타까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증권신고 프로세스를 간소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발행 규모에서 30억원 미만의 투자계약증권에 대해서는 간소한 서식을 활용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특히 이미 투자계약증권 발행을 위한 요건(예치금 분리보관, 소유권 공유지분의 법적 입증 등)을 갖춘 기업을 별도로 심사해, 적합한 사업구조를 확립한 기업에 대해서는 발행에 대한 패스트트랙을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투자계약증권 발행에 맞게 사업재편을 마친 기업과 사업구조 자체를 검토받아야 하는 기업 모두를 당국이 함께 심사하는 혼란이 우려되기도 한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토큰증권 관련 법안은 제도의 큰 틀만을 제시한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유불리를 판단하기에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아마 법안이 입법화되고 시행령, 시행규칙 등이 제정되면서 기업이 제도의 효과를 실감하게 될 것 같다. 다소 이른 시점이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우려가 되는 점이 있다.
먼저 토큰증권이 발행 및 유통될 때 장외거래시장에서 일반투자자의 투자 한도를 시장별, 종목별로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도산절연이 되고 투자위험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쉬운 수익증권을 토큰화하는 것은 투자 한도를 상대적으로 높게 설정하되, 투자계약증권의 경우 도산절연에 대한 우려로 일반투자자 투자 한도를 수익증권보다 낮게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익증권의 경우 ‘금전채권’을 신탁할 경우에만 발행이 가능하지만, 정부는 ‘비금전신탁’에 대해서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렇다 해도 수익증권은 ‘신탁사’만 발행이 가능한 것이다. 기존 금융권인 신탁사가 발행한 증권을 토큰증권에서도 우대하는 것이 ‘다양한 투자대상에 대한 비정형 증권발행을 통해 금융혁신을 추구하려는’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
투자계약증권의 발행도 증권신고서 제출 및 주요 사항의 공시, 투자자 보호 관련 제도 도입 등 위험 감소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 위에서 발행하게 된다. 특히 투자계약증권 중 현물에 투자하는 것은 대상 현물이 존재하고, 소유권 배분 상황을 공증하는 등 도산절연의 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엄격한 규제를 받아서 발행되는 투자계약증권인 만큼 부당하게 제한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투자자 보호’라는 원칙이 지켜지는 범위에서 일반 투자자의 투자 한도는 토큰증권 발행 사업자가 충분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이 점에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온투업)의 경우 개인 투자자 투자 한도가 연간 4000만원까지 허용되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투자대상 현물 및 권리가 이미 확보되고 도산절연에 대한 우려를 충분히 불식한 투자계약증권이 온투업보다 위험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지 않겠는가.
토큰증권의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의 요건 역시 시행령에 위임 사항으로서 아직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 수준으로 규정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핀테크 기업으로서 충족하기 어려운 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이 아니어도 증권사 등 기존 계좌관리기관을 통해 토큰증권을 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해당 핀테크 기업은 기존 금융기관의 제도적, 기술적 범위 안에서 제한을 받게 된다.
자체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핀테크 기업이라고 해도, 계좌관리기관인 증권사가 해당 블록체인을 인정하지 않고 증권사와 제휴된 블록체인의 사용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융상품의 구성 등에 대해서도 증권사의 간섭을 받을 수 있어 핀테크 기업의 자율성이 제한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비정형증권 발행을 통해 금융시장의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제도의 취지를 고려할 때, 토큰증권 발행에 대한 핀테크 기업의 자율성에 부당한 제한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결국 핀테크 기업 자신이 자체적인 블록체인 기술을 가지고 계좌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의 등록요건을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되기 전까지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수준에서 결정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지난 2월 정부는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토큰증권 관련 제도화가 되기 이전이라도 혁신성이 있을 경우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실증 테스트하겠다고 했다. 이후로 많은 기업에서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토큰증권의 실증을 위해 수요조사 신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통상 혁신금융서비스는 승인이 되더라도 추가적인 조건들을 충족하고 사업화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이다. 조각투자 업체 뮤직카우는 지난해 10월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됐지만, 그후 1년이 지난 이달 말에야 해당 혁신금융서비스에 따른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정부의 입법 일정으로 볼 때 토큰증권의 제도화는 2024년 말까지 마무리되고, 2025년 초부터 본격적인 토큰증권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선제적으로 움직인 기업들이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사업을 시작하려는 시점과 제도화의 시점이 차이가 없게 될 수도 있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혁신금융서비스를 신청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혁신적 핀테크 스타트업인 반면, 제도화를 기다리는 기업들은 기존 금융권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 기존 금융권은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니 토큰증권이 제도화되는 시점까지 시뮬레이션을 충분히 해보면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핀테크 스타트업은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한 실증이 아니고서는 사업화에 대한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퍼스트 펭권으로 움직인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시행착오 가운데서 소외를 당하고, 이들을 예의주시하면서 움직이는 기존 금융권 대기업들이 토큰증권 시대를 향유하는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바람직하다고 보긴 어렵지 않겠는가.
바야흐로 조각투자와 토큰증권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금융의 혁신에 결실의 계절은 당도했다. 새로운 금융에 대해 도전을 한 많은 기업가들과 이들의 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금융당국 모두가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다. 자신이 가진 자산을 누구나 쉽게 유동화하고 편리하게 투자할 수 있는 그런 혁신적인 금융의 결실을 시샘하는 ‘이상기후’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모두 경험으로 안다. 이런 이상기후는 결국 더좋은 환경을 만들어내려는 모두의 각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신범준 바이셀스탠다드 대표
현물 조각투자 플랫폼 ’피스’를 만들었다. 국민대 정치학 석사를 졸업했고 기자와 국회를 거쳐 스타트업 생태계에 뛰어들었다. 최근 피스를 통해 국토교통부장관상,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상,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사장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