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왼쪽 세번째)이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대응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인대 경제정책국장, 김동일 예산실장, 정정훈 세제실장, 임기근 재정관리관. 연합뉴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왼쪽 세번째)이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대응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인대 경제정책국장, 김동일 예산실장, 정정훈 세제실장, 임기근 재정관리관. 연합뉴스
올해 국세 수입이 당초 예상치보다 59조1000억원 덜 걷힐 전망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결손액이다. 경기 악화에 따른 기업 실적 부진에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 위축으로 관련 세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3년 세수 재추계 결과’를 18일 공개했다. 올 초부터 당초 계획 대비 세수가 덜 걷히면서 세수 진도율이 크게 부진하자 기재부는 이달께 세수 재추계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재추계에 따르면 올해 국세 수입은 당초 예산(400조5000억원) 대비 59조1000억원 줄어든 341조4000억원으로 예상된다. 전체 세수 결손액 59조1000억원 중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3대 세목 결손액은 52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88.7%에 달한다.

글로벌 경기둔화 및 반도체 업황 침체에 따른 수출 부진으로 기업 영업이익이 지난해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법인세 감소폭이 컸다. 당초 105조원이 걷힐 것으로 예상됐던 법인세는 재추계 결과 79조6000억원으로, 25조40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소득세는 당초 예산(131조9000억원) 대비 17조7000억원 감소한 114조2000억원이 걷힐 것으로 예상됐다. 부동산 등 자산시장 침체로 양도소득세가 12조2000억원 줄어든 영향이 컸다. 경기침체 여파로 부가가치세도 83조2000억원에서 73조9000억원으로, 9조3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세수 재추계에 따른 세수오차는 -14.8%다. 2021년(17.8%)과 2022년(13.3%)에 이어 3년 연속 두 자릿수 세수 오차를 냈다. 2021년과 2022년은 세금이 예상보다 더 많이 걷힌 초과세수였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세수 오차를 낸 건 1988~1990년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이다.
또 빗나간 세수 예측…올해 세수 펑크 59.1조 '역대 최대'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2021년과 2022년엔 코로나19를 딛고 예상보다 빠른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면서 대규모 초과세수가 발생했다”며 “올해는 세계 경제 위축으로 기업 영업이익이 당초 예상을 크게 밑돌면서 큰 폭의 세수 감소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 같은 큰 폭의 세수 오차는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과 일본의 세수 오차는 각각 15.3%, 8.3%였다.

59조1000억원의 세수 부족분 중 중앙정부가 메워야 하는 부족분은 60%인 35조원이다. 정부는 관련법에 따라 내국세의 40%가량을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명목으로 지방에 내려보낸다. 내국세 수입이 줄어들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수입도 줄어드는 구조다.

24조원가량으로 예상되는 지방 부족분은 지자체와 교육청의 통합재정안정화기금과 세계잉여금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은 이달 기준 34조원이 적립돼 있다. 지난해 예산을 집행하고 남은 세계잉여금은 7조원이다. 행안부와 교육부는 지자체·교육청과 협의해 통합재정안정화기금에서 최대 70%의 자금을 인출하겠다는 방침이다.

중앙정부가 메꿔야 하는 35조원 중 24조원은 환율 안정에 사용되는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등에서 끌어오기로 했다. 외평기금은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조성하는 기금이다. 정부는 외평기금을 비롯한 기금에서 24조원을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으로 끌어오고, 이를 일반회계로 전환해 세수 부족분을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외평기금 여유 재원은 공자기금을 거치는 방식으로 일반회계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올해 공자기금 지출 153조4000억원의 최대 20%인 30조원까지는 국회 의결 없이 일반회계에 투입할 수 있다. 공자기금은 여유 있는 기금에서 재원을 빌려 재원이 부족한 기금에 돈을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기재부는 2020년 추가경정예산 편성 과정에서도 외평기금을 통해 2조8000억원을 조달한 적이 있다.

기재부는 기금 활용분 24조원 외 부족한 나머지 11조원은 지난해 예산을 집행하고 남은 세계잉여금(4조원)과 올해 예산 집행이 안 되고 남은 불용 자금을 활용할 방침이다. 지난해 기준 불용 자금은 7조9000억원이다. 정 실장은 “올해 예정된 지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집행관리를 철저히 할 계획”이라며 “세수 결손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올해 59조1000억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서 나라살림 적자 폭도 당초 예상 대비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가 올해 예상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58조2000억원이다. 관리재정수지는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사회 보장성 기금 수지를 차감해 정부의 실질적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 1~7월 관리재정수지는 67조9000억원의 적자였다. 정부의 세수 재추계 결과대로라면 당초 예산 대비 총수입이 59조1000억원가량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 보장성 기금 수지 및 총지출 규모가 당초 예산 대비 동일하다고 가정하고, 줄어드는 지방교부금 규모(23조원)를 제외하면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94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는 세수 전망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국내 전문가 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등 민관 합동 세수추계위원회 운영방식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 전문가로부터 기술 자문도 받기로 했다. 특히 세수 추계 관련 국내 최고 전문기관으로 꼽히는 국회 예산정책처와 협업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