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Marco Borggreve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Marco Borggreve
"우리의 대디가 되어주세요."

연주가 끝나자 단원들은 지휘자에게 달려가 이렇게 부탁했다. 연주를 마친 단원들이 집이나 회식장소가 아닌 지휘자를 찾아가는 건, 이 세계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마에스트로'라는 호칭보다 '대디'라는 애칭이 어울리는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71) 이야기다. 그는 온화하고 인간적인 리더십으로 잘 알려진 지휘자다. 그래서 까칠한 체코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비치코프에게 마음을 열었다. 체코필의 전 상임지휘자 벨로 홀라베크의 타계 이후 단원들은 만장일치로 비치코프의 상임지휘자(2018년) 발탁에 찬성했다. 비치코프가 다음달 체코필하모닉을 이끌고 처음 한국을 찾는다.

19일 비치코프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솔로 단원이든 맨 뒷자리 단원이든 각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며 "지휘자가 그들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아니고, 이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게 지휘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대디라는 애칭과 어울리게 인터뷰 답변지에 적힌 글 마디 마디마다 겸손함과 온기가 묻어났다. 그는 지휘란 선명한 의사소통이자,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하고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휘자는 몸짓을 통해 듣고자 하는 음악을 불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지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원 모두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연주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연주자들에게 강요된 이해가 아닌, 스스로 선택한 음악이라고 느껴야 연주로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이유에서일까. 그는 체코필 단원들에 색채와 개성을 이야기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는 "(체코필은) 음악적 뿌리, 음악 교육과 연주 방식 등에 고유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악단"이라며 "단원들은 이 독특한 색채와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체코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세묜 비치코프. ©Petra Hajsk
체코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세묜 비치코프. ©Petra Hajsk
동유럽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체코필하모닉은 안톤 드보르자크가 초연한 악단으로 유명하다. 1896년 프라하 루돌피눔 홀에서 드보르자크가 창단연주회를 이끌었다. 그래서 체코필은 체코 출신 작곡가들의 레퍼토리에 강하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올 드보르자크'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찾는다. 드보르자크의 사육제 서곡, 교향곡 7번, 피아노 협주곡 g단조 등 모두 체코필의 '앙꼬'같은 프로그램이다. 협연자는 일본의 신성 피아니스트 후지타 마오다.

"이번 시즌 프라하에서는 (체코필이) 드로브자크 향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주간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협주곡, 서곡을 연주하고 있죠. 가장 손에 잘 익은 레퍼토리를 한국에서 연주하기로 했습니다. "

악단의 전통과 단원의 개성을 중시하는 '고희의 거장'은 러시아 태생이다. 20세 무렵 라흐마니노프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미국으로 이주해 매네스 음대에서 공부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악단을 이끌며 명성을 쌓은 뒤 1985년 베를린필하모닉 포디움에 올라섰다. 50년째 런던심포니, 빈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등 유럽 정상급 악단의 무대에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세묜 비치코프 ©Sheila Rock
세묜 비치코프 ©Sheila Rock
이번에 처음 내한하는 그는 최근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의 약진을 추켜세웠다. 그는 "이제 한국인이 없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고 했다. 그는 지난 4월 유럽 무대를 함께한 조성진을 두고는 "정말 대단한 음악적 파트너"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피아노, 바이올린을 배우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문화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에요. 저에게 일본 가부키 공연을 하라고 하면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음악가들은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