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시민 없는 시민단체, 초심으로 돌아가라
올 7월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고 했다. 수해의 원인이 치수 사업 부재에 있고, 국가 치수 사업이 멈추게 된 이유는 정부와 환경단체의 보조금 ‘카르텔’ 때문이라고 인식한 데 기인한다. 지난 5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가 성추행을 인정한 작가의 작품 철거를 막아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성추행으로 논란이 된 임옥상 씨 작품 철거를 반대한 정의기억연대 시위를 문제 삼은 것이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국가라는 공적 영역과 가정 및 기업이라는 사적영역 사이에서 정부와 시장을 견제하는 제3의 영역이었다.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민간시민단체는 비정부조직(NGO)과 비영리조직(NPO)으로 ‘자유로운 시민들의 자발적 집합체’로 주목받았다. 시민단체가 중요한 이유는 정부와 시장에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권력을 통제한다는 권력 견제 역할 때문이었다. 내적으로는 함께 활동하는 시민들 사이에 협동하는 습관과 공동체 정신을 배양하며 시민 사이에 신뢰와 호혜, 극단을 자제하는 타협과 포용이라는 ‘민주주의의 습속(habit)’을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높게 평가받았다. 이 때문에 학계는 시민사회를 민주주의의 전제 조건으로 이해했고,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까지 주목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끝나고 보니 민간(시민)단체가 ‘이권 카르텔’이라는 헤어나기 힘든 위기에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단체는 환경부와, 노동단체는 고용노동부와, 여성단체는 여성가족부와 ‘이권 카르텔’로 엮여 있고, 보조금을 매개로 ‘정치적 매수’라는 부패의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비판받게 된 것이다. ‘정치적 매수’란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 내지 침묵으로 협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일부 환경단체는 환경이라는 공익을 내세우면서도 ‘태양광 확대 정책’ 지지 때문에 무분별한 태양광 패널 설치에 침묵하면서 환경 파괴를 방조했다. 시민단체가 ‘정부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을 뒤로하고, 마치 정부 업무를 대행하는 산하기관처럼 행동한 것이다. 시민단체의 관변단체화다.

시민단체를 정권 지지 단체로 만드는 ‘관변단체화’는 역대 정부들의 나쁜 관습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권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과 ‘협조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했다. 학계는 이런 정부-시민단체 연계를 ‘거버넌스’ ‘협치’ 또는 ‘공치(共治)’ 실천이라고 옹호해줬다. 이 때문에 참여연대와 민변 활동가가 대거 발탁돼 청와대와 정부 고위직에 임명돼도, 세금(보조금)으로 시민단체가 운영돼도 ‘협치’니까 괜찮게 됐다.

하지만 정부-시민단체의 무분별한 연계는 시민사회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빠뜨렸다. 권력 견제 역할은 뒤로한 채 권력 지지만 하게 돼 시민단체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이런 현상은 과거 시민단체가 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시민사회 위기를 초래한 경험과 비슷하다. 2000년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총선시민연대’가 제16대 총선에서 부적절한 후보자에 대한 공천 반대, 낙선운동을 전개한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금지하는 현행 선거법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조직적 선거운동에 해당하며 시민단체의 정치 활동에 대해 헌재가 우려를 표시한 것이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은 당파성 때문에 시민단체 전반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그리고 이번 민간단체의 국가보조금 수혜 논란은 한국 시민단체가 활동할 사람도 적고 회비와 후원금이 모이지 않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현실에서 생겨난 일이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공적인 목표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보조금을 취하는 행태’와 부실 회계는 쇠락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 시민단체는 1970년대 유럽의 신사회운동을 끌고 간 ‘비당파성’과 ‘비정부’ 원칙을 깸으로써 쇠락을 자초했다. ‘이권 카르텔’ 논란으로 ‘비영리’ 원칙까지 훼손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라도 ‘비당파성’ ‘비정부’ ‘비영리’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생기고 ‘시민 있는’ 시민단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