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배럴당 90달러를 넘은 국제 유가가 다시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이번주 들어 현물 시장의 일부 유종은 이미 100달러를 돌파했다. 뉴욕·런던의 선물가격도 상승세여서 조만간 3대 원유 모두 100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에 따른 공급 차질 전망이 고유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표로 나타나는 중국 경제 회복 기미,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량 감소도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에서 고유가는 가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여름철 냉방과 겨울 난방 비용부터 넘쳐나는 자동차의 연료는 물론 산업용 전력까지 대부분 에너지가 석유·가스값과 연동된다. 급등한 인건비와 더불어 도소매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다. 역대 정권마다 에너지 자주권을 외쳤지만 여전히 에너지 과다 수입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당장 추석 물가에 비상이 걸리면서 ‘고공 물가’의 조기 해소 기대도 멀어지고 있다.

몇몇 원유 수출국을 제외하면 국제 경제에서도 고유가는 좋을 일이 없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 석유화학제품을 시작으로 수요 부진이 광범위하게 펼쳐질 수 있다. 고물가는 자칫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해 교역량이 급감할 공산이 크다. 수출에 기대는 한국엔 치명적 복병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연간 경상수지는 90억달러 감소한다. 현재 유가는 한은의 올해 전망치(북해산 브렌트유 기준 상반기 80달러, 하반기 84달러)를 훌쩍 넘어선 상황이다. 국내 유화·항공·해운업계에는 벌써 비상이 걸렸다.

고유가는 국내에선 고물가, 나라 밖에서도 수요 위축의 악조건으로 우리 경제를 밀어 넣을 것이다. 수출에서 가격 인상 요인이 누적되면 최근 3개월간의 ‘불황형 흑자’조차 지속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북반구의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까지 국제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지난 5월 18개월 만에 겨우 역마진을 벗어난 부채 200조원의 한국전력도 구매단가 상승으로 재차 수렁에 빠질 위험이 다분하다. 어제 정치권 낙하산 인사가 우려 속에 사장으로 부임했는데 전기요금 현실화와 한전 정상화라는 난제를 조기에 풀어낼지 의구심이 든다.

한층 복합적이고 치열해지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갈등 속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장기화되면 유가를 비롯한 에너지가격의 고공행진은 길어질 수 있다. 고유가, 고물가를 ‘상수’로 놓고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찔끔 유류세 조정 정도로 넘길 국면이 아니다. 기업도 에너지 효율화에 적극 나서고, 개인들 역시 석유·가스·전기 귀한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