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머리나 심장이 아닌 '몸'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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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문영의 아무튼 바이올린
얼마 전 모 대학에서 오케스트라 단원 몇 명을 선정해 초대했다. 평소와는 좀 다른 긴장과 어색함 속에서 짧은 연주를 했고 관객은 무대에 집중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집중해 관찰했다.
그들은 듣기보다는 ‘보기’ 위해 모였다. 저런 자세라면 어떻게 체형이 틀어져 어떻게 아플 것인지 연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행사는 특강 형식의 물리치료학과의 임상 수업이었고 선발된 우리는 아픈 연주자들의 대표였다. 연주를 마친 후 본격적인 실습 대상이 돼 공개 치료를 받았다. 많은 학생들이 둘러싼 베드에 누워, 나는 적잖이 마음이 복잡했다.
수많은 연주자들은 아프다. 가사 노동, 정신 노동을 포함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복 수행하는 동작과 자세에 의해 어딘가 아프고,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악기 노동자(연주자) 역시 그렇다. 심지어 테크닉, 소리, 곡의 완성도를 몸의 고통과 맞바꾸는 사악한 거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리치료학과 실습에 불려간 우리는 대표적으로 비대칭 자세를 요구하는 악기, 바이올린과 플루트 연주자들이었다. 시종일관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요구되는 우리의 몸은 필연적으로 한쪽으로 쏠리고 비틀릴 수밖에 없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경우 턱과 어깨 사이에 악기를 고정해야 하므로 인간 집게가 되어 몸에 바이올린을 밀착시켜야 하는데, 오랜 시간 집게 역할을 하다보면 이 부위에 통증을 피하기 어렵고, 심하게는 목 디스크로 이어진다.
굽은 등과 비뚤어진 골반, 뻣뻣한 목을 다스리기 위해 필라테스같은 운동이나 꾸준한 스트레칭은 필수다. 대여섯 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아이의 여린 손가락 끝은 현을 꼭꼭 누르느라 깊게 파이다가 결국 굳은살로 뭉툭해지고, 활을 잡는 손마디는 조금씩 기형적으로 변형된다. 무대 위 멋진 연주가 뒤안에 드리운 그늘을 최초로 예감하는 대목이다. 음악을 좋아하던 막내가 바순을 시작했다. 막내는 중학교 2학년 말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는데, 들고 서기도 어려울 만큼 큰 악기와 하중을 이겨내야 하니 그 이유만으로도 바순은 아주 일찍 시작하기 어려운 악기다.
그 아이의 가장 큰 소원은 선생님만큼 바순을 잘 하는 것 다음으로 선생님만큼 리드(reed)를 잘 깎는 것이다. 자신의 리드를 스스로 깎은 첫 날 모두에게서 축하를 받았다. 리드는 오보에나 바순같은 목관 악기를 연주할 때 입술에 닿는 부분으로, 나무 조각을 깎아 만들고 악기에 끼우는 소모품이다.
자신에게 맞는 리드를 잘 깎는 재주가 목관 악기 연주자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리드의 두께와 모양이 음색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굉장히 정교한 작업이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집중하다보니 목과 어깨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매우 흔하다. 목관 연주자들이 유사 목공예를 하고 그로 인해 지병을 얻기도 한다니, 몸의 수많은 부분과 기능을 참 골고루 내어줘야 하는 것이 음악이다.
막내는 거르지 않고 근력 운동을 한다. 근육을 다지고 지키는 것이 바순 연습만큼 중요하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훌륭한 체력을 가진 관악기 연주자들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흔히 운동 능력에 대한 잣대로 삼는 힘과 지구력, 폐의 기능이 그들의 재능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매우 크다. 리듬과 음의 정교한 표현을 위해 혀를 쓰고(tonguing) 숨으로 음정과 강약을 조절하니 몸이 악기인 성악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악기는 몸이다. 몸의 연장이다. 단 몇 분의 퍼포먼스를 위해 몇 백 시간을 연습한다. 각자의 악기에 적합한 자세를 위해 부자연스러운 긴장으로 일관하며 특정한 근육을 반복 사용한다. 무용가나 운동선수만큼 체력이 중요하고 부상이 많다.
이처럼 우리의 정서, 감정, 정신의 가장 지고한 영역에서 작용하는 음악은, 사실 몸의 것이다. 소리는 진폭, 파장, 주파수 등의 물리적 특성을 갖는 진동이다. 소리가 음악이 되는 최초의 단계는 몸의 최전방에 있는 감관들이 공기를 통해 전달된 진동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소리는 비물질의 영역에 산산이 흩뿌려지고 각자의 음악이 된다. 음악은 몸에서 비롯하여 몸으로 거둔다.
시인 김수영의 시작(詩作)에 관한 경구를 간혹 떠올린다. 시인 뿐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 나와 동료들의 고군분투에 보내는 응원 같기도 하여.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들은 듣기보다는 ‘보기’ 위해 모였다. 저런 자세라면 어떻게 체형이 틀어져 어떻게 아플 것인지 연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행사는 특강 형식의 물리치료학과의 임상 수업이었고 선발된 우리는 아픈 연주자들의 대표였다. 연주를 마친 후 본격적인 실습 대상이 돼 공개 치료를 받았다. 많은 학생들이 둘러싼 베드에 누워, 나는 적잖이 마음이 복잡했다.
수많은 연주자들은 아프다. 가사 노동, 정신 노동을 포함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복 수행하는 동작과 자세에 의해 어딘가 아프고,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악기 노동자(연주자) 역시 그렇다. 심지어 테크닉, 소리, 곡의 완성도를 몸의 고통과 맞바꾸는 사악한 거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리치료학과 실습에 불려간 우리는 대표적으로 비대칭 자세를 요구하는 악기, 바이올린과 플루트 연주자들이었다. 시종일관 부자연스러운 자세가 요구되는 우리의 몸은 필연적으로 한쪽으로 쏠리고 비틀릴 수밖에 없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경우 턱과 어깨 사이에 악기를 고정해야 하므로 인간 집게가 되어 몸에 바이올린을 밀착시켜야 하는데, 오랜 시간 집게 역할을 하다보면 이 부위에 통증을 피하기 어렵고, 심하게는 목 디스크로 이어진다.
굽은 등과 비뚤어진 골반, 뻣뻣한 목을 다스리기 위해 필라테스같은 운동이나 꾸준한 스트레칭은 필수다. 대여섯 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아이의 여린 손가락 끝은 현을 꼭꼭 누르느라 깊게 파이다가 결국 굳은살로 뭉툭해지고, 활을 잡는 손마디는 조금씩 기형적으로 변형된다. 무대 위 멋진 연주가 뒤안에 드리운 그늘을 최초로 예감하는 대목이다. 음악을 좋아하던 막내가 바순을 시작했다. 막내는 중학교 2학년 말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는데, 들고 서기도 어려울 만큼 큰 악기와 하중을 이겨내야 하니 그 이유만으로도 바순은 아주 일찍 시작하기 어려운 악기다.
그 아이의 가장 큰 소원은 선생님만큼 바순을 잘 하는 것 다음으로 선생님만큼 리드(reed)를 잘 깎는 것이다. 자신의 리드를 스스로 깎은 첫 날 모두에게서 축하를 받았다. 리드는 오보에나 바순같은 목관 악기를 연주할 때 입술에 닿는 부분으로, 나무 조각을 깎아 만들고 악기에 끼우는 소모품이다.
자신에게 맞는 리드를 잘 깎는 재주가 목관 악기 연주자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리드의 두께와 모양이 음색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굉장히 정교한 작업이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집중하다보니 목과 어깨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매우 흔하다. 목관 연주자들이 유사 목공예를 하고 그로 인해 지병을 얻기도 한다니, 몸의 수많은 부분과 기능을 참 골고루 내어줘야 하는 것이 음악이다.
막내는 거르지 않고 근력 운동을 한다. 근육을 다지고 지키는 것이 바순 연습만큼 중요하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훌륭한 체력을 가진 관악기 연주자들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흔히 운동 능력에 대한 잣대로 삼는 힘과 지구력, 폐의 기능이 그들의 재능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매우 크다. 리듬과 음의 정교한 표현을 위해 혀를 쓰고(tonguing) 숨으로 음정과 강약을 조절하니 몸이 악기인 성악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악기는 몸이다. 몸의 연장이다. 단 몇 분의 퍼포먼스를 위해 몇 백 시간을 연습한다. 각자의 악기에 적합한 자세를 위해 부자연스러운 긴장으로 일관하며 특정한 근육을 반복 사용한다. 무용가나 운동선수만큼 체력이 중요하고 부상이 많다.
이처럼 우리의 정서, 감정, 정신의 가장 지고한 영역에서 작용하는 음악은, 사실 몸의 것이다. 소리는 진폭, 파장, 주파수 등의 물리적 특성을 갖는 진동이다. 소리가 음악이 되는 최초의 단계는 몸의 최전방에 있는 감관들이 공기를 통해 전달된 진동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소리는 비물질의 영역에 산산이 흩뿌려지고 각자의 음악이 된다. 음악은 몸에서 비롯하여 몸으로 거둔다.
시인 김수영의 시작(詩作)에 관한 경구를 간혹 떠올린다. 시인 뿐 아니라 모든 예술가들, 나와 동료들의 고군분투에 보내는 응원 같기도 하여.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