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범죄수익금 현금 교환 장면 (우) 피해자에게 일부 현금을 송금하는 장면 / 서울경찰청 제공
(좌) 범죄수익금 현금 교환 장면 (우) 피해자에게 일부 현금을 송금하는 장면 / 서울경찰청 제공
평소 친분이 있던 지인과 해외로 모임을 떠난 뒤 범죄에 단속된 것처럼 속여 10억원가량의 돈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피해자를 감쪽같이 속이기 위해 경찰에 함께 체포된 것처럼 연기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국제범죄 수사1계는 지난 6월 동남아 골프 여행을 권유하며 피해자를 현장에 유인한 뒤 범죄에 연루돼 경찰에 체포된 것처럼 상황을 꾸민 뒤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며 약 100만불을 갈취한 A씨(63) 등 다섯 명과 돈세탁을 도운 B씨(50) 등 세 명을 검거했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공갈) 위반 혐의와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피해자에게 돈을 뜯어내는 데 가담한 현지 브로커에 대해선 적색수배를 내린 상태고, A씨 일당 중 네 명은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피해자와 평소 골프 모임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사이다. 범행 수개월 전부터 피해자와 현지 골프 여행에 동행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범죄수익금의 세탁을 담당할 공범과 현지 브로커를 섭외하는 등 범행을 전반적으로 설계하고 직접 가담했다. A씨는 범행 당시엔 피해자와 같이 체포돼 현지 경찰의 실제 단속인 것처럼 연기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A씨는 현지 브로커를 통해 경찰 역할을 맡을 현지인을 섭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피해자가 체포 후 인치됐던 장소가 실제 경찰서인 점 등으로 미뤄 현지인이 실제 경찰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의 범행을 도운 현지 브로커는 10년 넘게 해당 지역에서 거주한 한국인으로 확인됐다.

이들 일당은 피해자가 의심하자 합의금을 공동 분담하자며 범죄수익금 일부를 돌려주고 피해 신고를 막으려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지난 7월 중순 관련 첩보를 입수한 뒤 비행기 탑승 기록과 통화내역 등을 바탕으로 피의자들을 특정했다. 경찰은 “현지 브로커 역시 해외 경찰 주재관과 공조해 인적 사항을 특정한 상태로 여권 무효화 조치와 인터폴 적색수배를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해당 국가 경찰청에 범죄 사실을 통보하고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전형적인 ‘셋업’(Set up) 범죄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셋업 범죄는 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무고한 사람에게 허위로 사실을 조작해 범죄자로 몰아가는 행위다. 경찰 관계자는 “셋업 범죄는 피해자 본인도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생각해 피해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적극적으로 신고해달라”고 덧붙였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