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책 제목을 보자 사고 싶어졌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김현주의 탐나는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2016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2016
중국의 SF 작가 류츠신의 3부작 소설 <삼체>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떠들썩하지 않았지만, 중국 SF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미국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휴고상까지 받은 이 소설의 영어판 공동번역은 스스로가 SF 작가이기도 한 켄 리우가 맡았는데, 그는 저자에게 원래 1부 중간 쯤에 있던 문화대혁명 이야기가 등장하는 장(“광란의 시대The Madness Years”)을 처음으로 옮기자고 제안했고, 저자가 이를 받아들여 영어판은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도입부를 갖게 되었다.
내가 읽은 한국어판은 영어판이 아니라 중국어판을 옮긴 것이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켄 리우의 선택이 책의 판매와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경험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내가 이 책의 한국어판 편집자였다면 중국어판의 구성을 따랐을지 영어판의 구성을 따랐을지 잠시 생각해보았던 것 같다.
오래전에 찾아보았던 것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켄 리우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 독자들은 중국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의 중요한 배경을 이루는 문화대혁명 장이 처음에 배치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류츠신 역시 이후 인터뷰에서 자신도 애초에 영어판처럼 시작하려고 했으나 검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화대혁명 장을 뒤로 배치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이 미국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켄 리우가 꽤 괜찮은 선택을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번역자나 편집자가 책을 번역하고 편집하면서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도 되는지 결정하는 것은 늘 어려운 문제다.
나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켄 리우처럼 원작의 구성을 바꾸는 시도는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기는커녕 번역서에 제목을 새롭게 만들어 다는 일조차도 아주 조심스러워하는 편인데, 이는 내가 주로 원서 저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관행이 있는 학술서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제목을 바꾸는 것이 낫지는 않을까, 구성을 바꾼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보기는 한다.
<삼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사실 다른 책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한참 전 번역가 홍한별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1999년 미국 콜럼바인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을 다룬 책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의 번역을 맡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가해 학생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쓴 책이라고 했다. 보통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책에 대해 더 질문을 던지거나 가만히 듣고 있는 편인데, 그날 따라 나는 우리나라에서 컬럼바인 사건에 대한 책에 누가 관심을 보이겠냐는 말을 했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나왔고, 이제는 더 이상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전의 악몽을 뒤덮는 유사한 사건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고,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심지어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의 어머니가 쓴 책이라니, 자기 자식을 변호하려는 목적으로 쓴 책이 아니라 해도 독자들의 호감을 얻기 힘들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1년쯤 지나 한국어판 책 제목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로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이지 아차 싶었다. 내가 이 책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었고, 그걸 정면에 내세운 제목이었다.
그전까지는 책을 읽고 싶지 않았는데, 한국어판의 책 제목을 듣자마자 책이 궁금해졌다. 자기 자신 혹은 자녀들이 그러한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는 만큼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적지 않은 수의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가해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한 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고, 그래서 이 책을 구입했다는 독서 후기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내가 이 책의 담당 편집자였다면 저런 식으로 제목을 붙이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랬다면 이 책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지 모른다.
휴고상까지 받은 이 소설의 영어판 공동번역은 스스로가 SF 작가이기도 한 켄 리우가 맡았는데, 그는 저자에게 원래 1부 중간 쯤에 있던 문화대혁명 이야기가 등장하는 장(“광란의 시대The Madness Years”)을 처음으로 옮기자고 제안했고, 저자가 이를 받아들여 영어판은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도입부를 갖게 되었다.
내가 읽은 한국어판은 영어판이 아니라 중국어판을 옮긴 것이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켄 리우의 선택이 책의 판매와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경험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내가 이 책의 한국어판 편집자였다면 중국어판의 구성을 따랐을지 영어판의 구성을 따랐을지 잠시 생각해보았던 것 같다.
오래전에 찾아보았던 것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켄 리우는 한 인터뷰에서 "미국 독자들은 중국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의 중요한 배경을 이루는 문화대혁명 장이 처음에 배치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류츠신 역시 이후 인터뷰에서 자신도 애초에 영어판처럼 시작하려고 했으나 검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화대혁명 장을 뒤로 배치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이 미국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켄 리우가 꽤 괜찮은 선택을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번역자나 편집자가 책을 번역하고 편집하면서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도 되는지 결정하는 것은 늘 어려운 문제다.
나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켄 리우처럼 원작의 구성을 바꾸는 시도는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기는커녕 번역서에 제목을 새롭게 만들어 다는 일조차도 아주 조심스러워하는 편인데, 이는 내가 주로 원서 저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관행이 있는 학술서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제목을 바꾸는 것이 낫지는 않을까, 구성을 바꾼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보기는 한다.
<삼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사실 다른 책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한참 전 번역가 홍한별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1999년 미국 콜럼바인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을 다룬 책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의 번역을 맡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가해 학생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쓴 책이라고 했다. 보통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책에 대해 더 질문을 던지거나 가만히 듣고 있는 편인데, 그날 따라 나는 우리나라에서 컬럼바인 사건에 대한 책에 누가 관심을 보이겠냐는 말을 했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나왔고, 이제는 더 이상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전의 악몽을 뒤덮는 유사한 사건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고,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심지어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의 어머니가 쓴 책이라니, 자기 자식을 변호하려는 목적으로 쓴 책이 아니라 해도 독자들의 호감을 얻기 힘들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1년쯤 지나 한국어판 책 제목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로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이지 아차 싶었다. 내가 이 책의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었고, 그걸 정면에 내세운 제목이었다.
그전까지는 책을 읽고 싶지 않았는데, 한국어판의 책 제목을 듣자마자 책이 궁금해졌다. 자기 자신 혹은 자녀들이 그러한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는 만큼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적지 않은 수의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가해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한 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고, 그래서 이 책을 구입했다는 독서 후기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내가 이 책의 담당 편집자였다면 저런 식으로 제목을 붙이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랬다면 이 책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