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미술관 속 해부학자] 사랑으로 시작하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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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탈리아의 사진사’로 불리는 로렌초 로토(1480~1557)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을 찍듯이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 중 초상화 ‘마르실리오 카스티와 그의 신부 파우스티나’는 상세하게 뜯어보면 ‘우의화(寓意畵)’다. 신랑이 신부에게 결혼반지를 끼우기 직전의 순간을 그렸는데, 두 사람 모두 행복하다기보단 표정이 굳어 있는 게 마치 부모님에게 등 떠밀려 하는 정략결혼처럼 보인다.
사랑보다 구속 의미였던 결혼반지
독립 근육 없는 약지에 끼는 까닭
로마 시대에는 손가락의 정맥과 심장이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중 넷째 손가락의 정맥이 심장과 가장 가깝다고 해서 이를 ‘사랑의 정맥(vena amoris)’이라고 불렀다. 이런 이유로 넷째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게 됐다는 가설이다. 이와 관련해 해부학적으로도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주먹을 쥔 상태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펴보면 다른 손가락은 손쉽게 길게 펼 수 있지만, 넷째 손가락은 독립적으로 완전히 펴지지 않는다. 또 양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맞대 보면 다른 손가락과 달리 넷째 손가락은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넷째 손가락만 손가락 마디를 펴는 근육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처럼 커플 혹은 부부가 서로 떨어지지 않고 의지하며 함께 붙어 있자는 의미로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낀다는 얘기다. 그래서 넷째 손가락을 링 핑거(ring finger)라고 부른다는 해부학적이고 로맨틱한 가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넷째 손가락을 약지(藥指)라고 부르는데 약물을 달일 때 이 손가락을 주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결국 결혼과 반지는 서로에게 구속과 희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약(藥)이 되는 존재로도 볼 수 있다. 넷째 손가락을 펴기 위해 다른 손가락을 함께 펴듯이, 결혼 기피와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한마음 한뜻으로 마련해야 하겠다.
이재호 계명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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