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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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이 급부상하고 있다. 여권 안팎에서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은 당초 40%에서 42%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이 같은 안은 “국민연금 개혁은 수리적·논리적 합리성보다 더 중요한 게 국민적 수용성”이라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이달 초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20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회의 자료집에 따르면 이날 특위 소속 민간자문위원들은 비공개회의에서 이 같은 개혁안을 논의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수완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내년부터 소득대체율 인하를 한시적으로 멈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소득대체율은 2007년 연금개혁에 따라 2008년 50%에서 매년 0.5%포인트씩 내려가 올해 42.5%, 2028년 40%에 도달할 예정이다. 이를 내년 기준인 42%에서 동결하겠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2~13%로 인상하는 안을 제안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등에서 유력하게 거론한 15~18%보다 낮은 수준이다. 김 교수는 “한국은 보험료 인상에 대한 정치·사회적 수용성이 낮다”며 “한 번에 완전한 연금개혁을 이루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정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개혁을 1단계로 한 뒤, 2단계로 수급 개시 연령 조정 등 추가 수단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김 교수안에 사실상 정부·여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소득대체율을 높이지 않고 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공감대가 여권 내에서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 수용성 중요"…총선 의식 '재정안정→소득보장' 기류 바뀌나

갑자기 튀어나온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편안
20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새로 거론된 국민연금 ‘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2%’안은 그동안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등에서 논의된 것보다 재정 안정성 측면에서 대폭 후퇴한 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고강도 연금개혁을 부담스러워하는 기류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날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 회의에서 김수완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안이 발표되자 평소 연금 보장성 강화를 강조하던 위원들 사이에서도 옹호하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재정계산위에선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18%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유지하는 안이 제시되자 이에 반발한 소득보장론자들이 사퇴하는 등 내홍이 있었다. 김 교수 안 정도라면 이들도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재정안정론자로 분류되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정치·사회적 수용성’을 강조했다. 그는 “보험료율 18% 인상이나 수급 연령 상향 조정, 소득대체율 50% 인상 등의 연금개혁안은 현시점에서 국민에게 수용 가능하지 않고, 전문가 간 협의 가능성도 없다”며 “공통분모를 찾아 일단 최소한의 개혁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국민 수용성’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 교수는 재정계산위가 권고한 연금 수급 연령을 늦추는 방안도 중장기적 개혁 과제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정계산위는 연금 수급 연령을 65세에서 66~68세로 늦추는 방안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중장기적으로 노동시장의 변화를 고려해 수급 개시 연령 조정 여부, 소득대체율 인상 등 추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연금개혁을 두 단계로 나눠 하자는 의미다.

정치권에선 이런 방안이 정부·여당의 의중과 맞닿아 있다고 보고 있다. 여권에서는 총선 전 연금개혁이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연금특위 전체회의에서도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소득대체율 인상을 얘기 안 하고 연금개혁 문제를 풀 수 있겠냐” “국민이 불안해할 테니 정부가 연금 지급을 보증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사실상 ‘더 내고 더 받는’ 김 교수안이 현실화하면 ‘반쪽짜리 개혁’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재정 안정을 강조하는 한 자문위원은 소득대체율 인상안에 “연금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보험료 인상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현행대로라면 2055년으로 전망되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이 소득대체율을 2%포인트 올리면 2054년으로 1년 당겨진다. 또 현행 제도를 유지할 때보다 2093년 기준 국민연금 재정 누적적자는 628조원 늘어난다. 보험료율을 현재보다 3%포인트 올리면 적립금 소진 시점이 2062년으로 7년 미뤄지지만, 지급액이 늘어나면 보험료 인상 효과를 상당부분 상쇄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학계에서는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앞으로 납부할 보험료와 적립기금을 제외하고도 올해 기준 1825조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미적립부채 추산이 나왔다. 재정안정성을 강화하는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현세대 연금 지급을 위해 미래 세대가 세금이나 보험료로 납부해야 할 ‘빚’이 1인당 8200만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