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획을 그었을 뿐"…강희석의 실험이 중요한 이유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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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대표 4년 지낸 강희석의 '사퇴의 변'
디지털 DNA를 그룹에 퍼트린 공
계승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신임 한채양 대표의 몫
디지털 DNA를 그룹에 퍼트린 공
계승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신임 한채양 대표의 몫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 논어 옹야편 10장에 나오는 말이다. ‘힘이 달리는 자는 중도라도 그만둘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을 뿐이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4년 만에 이마트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자연인’ 강희석이 21일 카톡 프로필에 이 문구를 올렸다.
공자의 답에서 중요한 단어는 획(畫)이다. 대체로 논어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핑계 대지 말라’ 정도로 해석한다. 좋아하는 도를 왜 중도에 포기하냐는 힐문이다. 그런데 강 전 대표는 자신의 심중을 표현하기 위해 염구의 한탄이 아니라 공자의 답으로 대신했다. 추측건대, 그는 획의 의미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선 긋기로 해석한 것 같다.
베인앤드컴퍼니 출신의 컨설턴트인 강 전 대표의 이마트 입성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사건’이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용단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강 대표는 2019년 10월 이마트 대표직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한국 유통산업의 격전이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쿠팡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매년 천문학적인 숫자의 적자를 내며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강 전 대표는 미국과 중국에서 벌어진 e커머스의 진군을 직접 눈으로 목도했다. 미국에선 아마존의 공세 앞에 토이저러스까지 하염없이 몰락했다. 중국에선 까르푸가 철수하고, 그 자리를 알리바바 군단이 장악했다. 강 전 대표 역시 e커머스로 균형의 추가 넘어가는 현상이 한국에서만 예외일 리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마트와 SSG닷컴을 통합하고, 지마켓을 인수한 후에 신세계의 주력 계열사 6개를 묶은 통합 멤버십을 출시한 강 전 대표의 전략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실행의 방식과 속도였다.
흠결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과연 지마켓을 3조원에 인수할 가치가 있었을까.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지마켓은 쿠팡의 공세에 더 큰 타격을 입었을 공산이 크다. 그랬다면 이마트는 지마켓을 훨씬 더 ‘합리적인’ 가격에 인수할 수도 있었다.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이마트의 본질인 글로벌 상품 소싱에 대해 좀 더 전력투구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전 대표는 초기에 디지털 전문가들을 요직에 투입하면서 그룹 전체의 DNA를 바꾸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전문가라고 했던 엔지니어들은 마치 머리에 설계조차 없이 닥치는 대로 건물을 짓는 엉터리 목수나 다름없었다. ‘바보들아 감(感)이 아니라 데이터야’라고 하는 외부인의 등쌀에 이마트 기존 조직은 흔들렸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강 전 대표는 초기의 실수를 차례차례 고쳐나갔다. 지마켓의 디지털 DNA를 사내 곳곳으로 퍼트렸다. 20일 정기 임원인사에서 W컨셉의 대표로 지마켓의 이주철 전략사업본부장이 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내 1세대 e커머스인 지마켓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이들은 쿠팡과의 전면전에서 요긴하게 활용될 인재다.
상품 소싱과 관련해서도 강 전 대표는 디지털 전문가와의 갈등에서 상품 전문가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갈등을 해결했다.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상품 바이어들을 해외로 급파했다. 이제 이마트 상품 바이어들은 할인 행사 하나를 하더라도 기존 판매 데이터에 기반해서 실시한다.
강 전 대표가 떠나고 이마트는 당분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향은 두 가지다. 전임자의 유산을 수용하고, 뛰어넘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전임자의 과오를 밝혀내는데 집착하고, 이를 부정할 것인가다. 한채양 신임 이마트 대표가 짊어질 짐 역시 만만치 않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정용진-강희석 '콤비'의 4년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었다. 강 전 대표의 지금 심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아마도 공자의 일갈을 자신을 향한 다짐으로 옮긴 것은 아닐까. 옹야편의 이 문구는 공자와 그의 제자인 염구(염유)가 도(道)에 대해 논하면서 나눈 대화 중 공자가 염구에게 한 말이다. 공자의 답에 앞서 염구는 이렇게 말했다.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제가 선생님(공자)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족할 뿐입니다’공자의 답에서 중요한 단어는 획(畫)이다. 대체로 논어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핑계 대지 말라’ 정도로 해석한다. 좋아하는 도를 왜 중도에 포기하냐는 힐문이다. 그런데 강 전 대표는 자신의 심중을 표현하기 위해 염구의 한탄이 아니라 공자의 답으로 대신했다. 추측건대, 그는 획의 의미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선 긋기로 해석한 것 같다.
베인앤드컴퍼니 출신의 컨설턴트인 강 전 대표의 이마트 입성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사건’이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용단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강 대표는 2019년 10월 이마트 대표직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한국 유통산업의 격전이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쿠팡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매년 천문학적인 숫자의 적자를 내며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강 전 대표는 미국과 중국에서 벌어진 e커머스의 진군을 직접 눈으로 목도했다. 미국에선 아마존의 공세 앞에 토이저러스까지 하염없이 몰락했다. 중국에선 까르푸가 철수하고, 그 자리를 알리바바 군단이 장악했다. 강 전 대표 역시 e커머스로 균형의 추가 넘어가는 현상이 한국에서만 예외일 리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마트와 SSG닷컴을 통합하고, 지마켓을 인수한 후에 신세계의 주력 계열사 6개를 묶은 통합 멤버십을 출시한 강 전 대표의 전략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실행의 방식과 속도였다.
기존 조직 바꾸기가 창업보다 어려울 수도
강 전 대표가 해야 할 일의 무게는 사실 창업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맨땅에 건물을 세우는 것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도 재건축이 더 어렵다. 정 부회장과 강 전 대표는 오프라인 유통에 특화돼 있으며, 계열사별로 분절된 신세계그룹을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처럼 만들려고 고군분투했다.흠결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과연 지마켓을 3조원에 인수할 가치가 있었을까.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지마켓은 쿠팡의 공세에 더 큰 타격을 입었을 공산이 크다. 그랬다면 이마트는 지마켓을 훨씬 더 ‘합리적인’ 가격에 인수할 수도 있었다.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이마트의 본질인 글로벌 상품 소싱에 대해 좀 더 전력투구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전 대표는 초기에 디지털 전문가들을 요직에 투입하면서 그룹 전체의 DNA를 바꾸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전문가라고 했던 엔지니어들은 마치 머리에 설계조차 없이 닥치는 대로 건물을 짓는 엉터리 목수나 다름없었다. ‘바보들아 감(感)이 아니라 데이터야’라고 하는 외부인의 등쌀에 이마트 기존 조직은 흔들렸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강 전 대표는 초기의 실수를 차례차례 고쳐나갔다. 지마켓의 디지털 DNA를 사내 곳곳으로 퍼트렸다. 20일 정기 임원인사에서 W컨셉의 대표로 지마켓의 이주철 전략사업본부장이 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내 1세대 e커머스인 지마켓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이들은 쿠팡과의 전면전에서 요긴하게 활용될 인재다.
상품 소싱과 관련해서도 강 전 대표는 디지털 전문가와의 갈등에서 상품 전문가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갈등을 해결했다.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상품 바이어들을 해외로 급파했다. 이제 이마트 상품 바이어들은 할인 행사 하나를 하더라도 기존 판매 데이터에 기반해서 실시한다.
강 전 대표가 떠나고 이마트는 당분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향은 두 가지다. 전임자의 유산을 수용하고, 뛰어넘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전임자의 과오를 밝혀내는데 집착하고, 이를 부정할 것인가다. 한채양 신임 이마트 대표가 짊어질 짐 역시 만만치 않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