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59조 세수펑크' 4대 논쟁점과 5대 진실
‘올해 세수 펑크 59조원’ 관련 논란은 최대한 길게 이어지는 게 좋다. 기획재정부엔 미안하지만 적어도 내년 예산안이 확정될 때까지는 논쟁이 계속돼야 한다. 정기국회를 예산국회라고 하는 말 그대로, 지금은 내년도 나라 살림을 짜고 그 이후 재정추계도 해야 할 중요한 시기다. 657조원 정부 지출의 용처를 확정하고, 예산 조달 방식까지 정해야 한다. 엉터리 같은 ‘유사 단식’에 국가 중대사가 가려져선 안 된다.

3년째 크게 빗나간 세수 예측과 관련된 논쟁점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왜 이렇게 오차가 큰 것이냐다. 기재부 세제실, 조세재정연구원 다 뭐했는지 확실히 짚어야 한다. 둘째, 원인 규명이다. 법인세수 급감에 소득세·부가가치세도 부진했다. 경제가 나쁘면 세금은 걷히지 않는다는 게 재확인됐다. 요인을 정확히 봐야 바른 대책이 나온다. 감세 반대론자들이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재정의 세금 의존도가 절대적인 판에 부족 예산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다. 환율 방어를 위한 비상금인 외국환평형기금을 쓰는 게 정상이냐는 문제 제기가 나오는 게 정상이다. 넷째, 그래도 계속되는 재정 지출 만능에 대한 경계다. 긴축의 내년 예산안이 정기국회에서 버텨낼지가 1차 관건이다.

네 가지 논쟁거리 모두 건설적 재정 담론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 법적 책임 규명도 필요하다. ‘못 미더운 나라 살림’ ‘주먹구구 재정’ 같은 평가는 여론의 질타일 뿐이다. 문책론이 국회에서 나온 것은 당연하다. 국회에 그럴 권한이 있다. 하지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변상·징계보다 가벼운 시정과 제도 개선을 요구할 모양이다. ‘민원’ 많이 넣는 부처라고 기재부를 봐주는 분위기다. 물론 기재부도 쉽게 수긍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수 추정치나 징세 사정과 관계없이 늘 확장재정 일변도인 국회에 부응해 어떻게든 ‘예상 세수’를 짠 죄밖에 없다고 할 만하다. 국채 발행을 피하면서 늘어나는 지출에 맞추다 보니 세수 목표치를 높게 잡은 것이라고 할 것이다. 경제가 나빠 세금이 안 걷힌 것은 세계적 현상이니 세수 펑크가 한국만의 오류가 아니라고도 항변할 만하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기재부가 국회에 휘둘리지 않는 용기와 배짱,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1절이다.

2절은 세금 부족이 내년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적 가정에서 시작한다. 세수 전망의 정확도는 기재부만 정신 차리면 비교적 쉽다. 경제성장률을 보수적으로 잡고 징세 조건을 정상 반영하면 세수가 줄어도 펑크 냈다는 비판은 면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본질은 지출을 줄이지 않을 경우 국가 채무가 급증한다는 사실이다. 1200조원에 달한 나랏빚은 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27년 1417조원으로 치솟는다는 게 기재부 전망이다. 필시 이보다 더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놀랄 것이다.

지난달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낮추면서 세계 증시가 흔들린 것은 이 대목에서 시사점이 크다. 압도적 기축통화국 미국도 29년 유지해온 AAA등급에서 미끄러진 판에 앞으로 한국은 어떨까. 국가 신용등급이 조금 깎인다고 바로 재정위기나 외환위기를 거론한다면 ‘괜한 엄살’이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공기업을 위시한 기업 자금조달비용이 늘어나고 재정의 운신 폭도 줄어들 것이다. 주식·채권시장은 그만큼 예민하다. 그 숱한 촉구에도 재정준칙 하나 못 만드는 나라를 국제신용평가업계의 냉혈한들은 어떻게 볼까.

이례적 세수 펑크가 새삼 일깨워준 나랏빚 문제에서 몇 가지 편치 않은 진실을 추론해본다.

첫째, 세수 부족도, 급증한 국가 채무도 일회성 이슈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시로 우리 경제를 흔들 것이다. 재정 정책에서 주요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됐다. 연금개혁이라도 잘하면 한숨 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 둘째, 괜찮다, 위험하다는 우리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글로벌 신평사 등 나라 밖 평가가 중요하다. 셋째, ‘적정 수준’ 논쟁은 무의미해졌다. 감축이 어렵다면 증가 속도라도 확 낮춰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 등 국제 기준에 맞춰야 한다. 넷째, 미래 세대 목소리가 선명하게 나와야 하고 정책에도 반영돼야 한다. 잘못된 유산을 거부하는 청년들 각성이 절실하다. 다섯째, 미국은 달러라도 찍어댄다지만,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지 해법을 더 고민해야 한다. 대부채 시대다. ‘누가 나랏빚을 두려워하랴’라며 대충대충 넘기기는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