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모리스 프랭크와 미국 최초의 안내견 ‘버디’가 1920년대 후반 뉴욕 거리에서 보행 시범을 보이고 있다. Getty Images Bank
시각장애인 모리스 프랭크와 미국 최초의 안내견 ‘버디’가 1920년대 후반 뉴욕 거리에서 보행 시범을 보이고 있다. Getty Images Bank
인류의 역사에서 개가 인간과 더불어 살기 시작한 건 15만 년도 더 됐다. 언제부터 개들이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일을 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오래된 그림이나 동굴 벽화에서도 안내견의 모습이 등장한다. 16세기 화가 틴토레트의 작품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 속에, 13세기 중국 족자화인 ‘황하의 봄’ 안에도 시각장애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개와 함께 걷고 있다.

개들이 사람의 눈이 돼준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는다. 영국 미국 뉴질랜드 일본 등 34개국 100여 곳엔 안내견 양성 기관이 있다. 안내견 수는 2만여 마리. 매년 3000여 마리가 분양된다. 한국에선 1993년부터 본격적인 안내견 사업이 시작됐고, 현재 76마리의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활동 중이다.

시력 잃은 군인 돌보고 있던 ‘개’

눈 다친 군인, 그 곁에 네 발의 천사가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개를 훈련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1780년께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이었다. 오스트리아 빈, 스위스 등에서도 1800년 전후 개를 훈련시킨 기록이 남아 있다. 안내견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였다.

당시 시력을 잃은 군인이 수천 명에 달했다. 독일 의사인 게르하르트 스탈링 박사는 피해를 본 이들의 재활을 위해 독일 올덴부르크에 최초의 안내견 훈련 센터를 세웠다. 1916년의 일이다. 10년간 500여 마리의 안내견을 분양했고, 세계 최초의 공식 안내견은 셰퍼드 종이었다. 스탈링 박사는 어느 날 개와 환자를 두고 긴급 호출을 받아 자리를 비웠는데, 돌아와 보니 개가 눈이 안 보이는 환자를 돌보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공식적인 안내견 학교는 1929년 미국에서 설립됐다. 안내견에 대한 인식을 세계로 확산시킨 여성은 도로시 유스티스. 10대 때부터 시각장애가 있었던 모리스 프랭크에게 ‘버디’라는 이름의 안내견을 분양해 미국 최초의 안내견으로 등록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안내견 학교인 ‘더 시잉 아이(The Seeing Eye)’를 설립했다. 프랭크는 당시 부유층 여성이었던 유스티스가 스위스 등에서 군대, 경찰, 관세청을 위해 전문적으로 개를 훈련하고 있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한 뒤 그에게 편지를 썼다. 이후 프랭크는 “나는 단 5센트로 100만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기사를 샀고,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스위스로 날아가 훈련받은 프랭크는 미국 최초의 안내견 버디와 함께 귀국해 당시 큰 화제였다.

독일 미국 거쳐 전 세계로

미국 경험의 성공으로 유스티스는 1928년 스위스에 안내견 학교를 세운다. 영국은 도로시의 도움으로 1931년 안내견 네 마리를 분양받는다. 훈련사를 영국에 파견하고, 안내견 학교 설립 비용을 지원했다.

1950년대 이후 안내견은 본격적인 세계화의 길을 걸었다. 1951년 호주, 1952년 프랑스, 1957년 일본, 1973년 뉴질랜드 등 세계 각국에 안내견 학교가 세워졌다. 한국 최초의 안내견 파트너는 임안수 대구대 교수였다. 1972년 말 미국 유학을 마치고 셰퍼드 종인 안내견 사라와 함께 귀국했다. 이후 외국 기관에서 몇 차례 분양이 있었지만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과 사후 관리의 어려움이 있어 극히 드물게 눈에 띄었다. 체계적인 과정을 거친 안내견은 1994년 양현봉 씨가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서 분양받은 리트리버 종 ‘바다’였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