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970년대 콩기름 흔해지자 프라이팬이 부엌에 입성했다
프라이팬이 한국에 전해진 것은 일제강점기지만 대중화된 것은 1970년대다. 오뚜기와 해태 같은 식품회사들이 콩기름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다. 한국에서는 식용유가 귀했기 때문에 볶음요리가 발전하기 어려웠고 프라이팬의 쓸모도 적었다. 프라이팬은 올리브유가 풍부한 서양에서나 어울리는 주방용품이었다. 콩기름이 흔해지면서 한국인은 프라이팬이 필요해졌고 콩기름과 프라이팬의 조합으로 탄생한 것 가운데 하나가 김치볶음밥이다.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는 이렇게 프라이팬 냄비 칼 도마 젓가락 그릇 냉장고 등 주방 물품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 장원철은 국문과를 나와 몇 권의 책을 쓰고 번역했다. 어느 날 글로 먹고사는 미래가 슬슬 불안해진 그는 장사에 뛰어들었다. 2012년부터 5년간 서울 남대문 그릇 도매상가에서 업소용 주방 기물을 취급했다. 그릇뿐 아니라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선풍기 쓰레기통 신발 등까지 거래한 뒤 다시 글쟁이로 돌아와 쓴 책이다.

매력적인 책이다. 책 뒤편의 방대한 참고문헌 목록이 보여주는 것처럼 저자는 자료 조사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이런 깊이 있는 조사가 저자의 글솜씨와 맞물려 독자의 눈앞에 매끄럽게 펼쳐진다. 재미와 정보를 다 잡은 수작이다.

유리는 서양에서 발달했다. 왜 동양은 유리에 무심했을까. 식기로 너무 우수한 도자기의 발달이 원인이라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유리는 생각보다 유용했다. 식기와 창문뿐 아니라 렌즈를 만들 때도 쓰였다. 안경과 망원경, 현미경의 토대가 됐다.

현재 주방용 칼은 일본식과 서양식 칼로 양분돼 있다. 하지만 저자는 “목적과 기능에 있어 중식 칼만큼 탁월한 칼은 없다”고 말한다. 요리사 세계에서 정식 일본 요리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6~7가지의 일식 칼이 필요하다. 야채용, 어패류용, 횟감, 갯장어와 뱀장어용, 초밥용 등이다. 서양 요리는 이보다 더 복잡해 대략 17개의 칼을 상비해야 한다. 중국 칼은 오로지 한 가지다. 이 칼로 잘게 다지기, 얇게 썰기, 채 썰기, 돌려 깎기 등이 모두 가능하다.

한국 음식점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그릇은 멜라민수지로 만든 플라스틱 그릇이다. 이유가 있다. 한식은 반찬이 많다. 하루 종일 서빙하고 설거지하는 사람에겐 가벼운 그릇이 최고다. 스테인리스 밥공기와 식기가 잘 쓰이는 것도 가볍기 때문이다. 고급 식당은 가벼운 그릇과 식기를 쓰지 않는다. 책은 맛에 대한 인상에 식기의 무게감이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실험을 했다. 같은 요리인데도 무거운 식기를 쓴 사람들이 더 높은 평가를 내렸다. 칼과 도마, 젓가락, 냄비 등 주방 물품들이 전해주는 역사가 생각 이상으로 흥미롭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