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설경의 비밀' 스틸
사진=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설경의 비밀' 스틸
올해 상반기 매출 1조9978억원, 영업이익 -807억원. CJ ENM의 성적표다. 지난해 상반기 1052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던 회사가 적자로 전환했다.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7.0% 감소했다. 올해 이렇다 할 대표 콘텐츠가 나오지 않은 탓이다. 여기에 지난해 '외계+인' 1부에 이어 여름 영화 시장에서 참패한 '더 문'은 가뜩이나 안 좋은 CJ ENM의 상황을 더욱더 위기로 몰아넣었다. '더 문'의 제작비는 286억원. 홍보, 마케팅 비를 포함하면 3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됐으리란 관측이다. 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기준 누적 관객수는 51만명에 그쳤다. 극장 관객이 600만명은 와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영화가 그의 10분의 1도 미치지 못하는 인원만 동원한 것. 여름에 이어 극장가 대목이라 불리는 추석 연휴에 개봉하는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설경의 비밀'을 두고 영화계 안팎에서 "이번에도 망하면 CJ ENM이 영화 산업을 접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CJ ENM, 처참한 흥행 성적표

CJ ENM은 탄탄한 자본력과 번뜩이는 기획력으로 영화, 방송, 음반까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 영역을 이끌며 '엔터 공룡'이라는 평까지 받았다. 국내 영화 역대 흥행 1위 '명량', 2위 '극한직업'도 CJ ENM에서 투자, 배급한 작품이고,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역시 CJ ENM를 거쳐 탄생했다. 이를 기반으로 CJ ENM은 2021년 11월 엔데버콘텐트(현 피프스시즌) 인수를 발표했고, 지난해 초 지분 80%를 약 9300억원가량에 사들였다.

엔데버콘텐트는 HBO‧BBC 등 각국의 대표 방송 채널과 넷플릭스‧애플TV플러스‧아마존프라임을 비롯한 글로벌 OTT에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유통하며 빠르게 성장했던 것으로 평가 받는다. 할리우드 영화 '라라랜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비롯해 드라마 '킬링 이브' '더 나이트 매니저' 등의 제작과 유통‧배급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작가, 배우 노조가 파업하면서 올해 상반기 피프스시즌이 납품한 콘텐츠는 3편에 그쳤다. 올해에만 24~28편의 작품을 납품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파업 여파로 그에 미치지 못한 것.
사진=피프스시즌
사진=피프스시즌
이는 매출로 직결됐다. CJ ENM의 미국 법인인 CJ ENM USA 홀딩스는 올 상반기 매출은 912억원이었다. 전년 3417억원 대비 73% 역성장했다. 영업이익은 454억원 흑자를 기대했지만, 433억원 적자를 봤다.

여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티빙이 최근에는 넷플릭스는 물론 후발 주자인 쿠팡플레이에게까지 밀리고 있다. CJ ENM은 2020년 10월 티빙사업본부를 물적분할하며 본격적으로 OTT에 뛰어들었고, JTBC‧네이버 등과 협력하며 사업을 키워갔다. 여기에 UFC, 분데스리가 중계를 확장하며 스포츠 분야 콘텐츠 다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모바일 앱 분석 플랫폼 모바일 인덱스 집계 기준 지난달 쿠팡플레이의 월간활성자수는 562만명, 티빙은 539만명이었다. 티빙은 500만명 초반으로 제자리걸음 수준인데, 쿠팡플레이는 해외 유명 축구 구단 초청 이벤트 등으로 지난해 5월부터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티빙이 오리지널 콘텐츠로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은 '아일랜드', '방과후 전쟁활동'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면서 적자 폭을 확대했다.

전망도 '흐림'…'천박사'에 거는 기대

사진=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설경의 비밀' 스틸
사진=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설경의 비밀' 스틸
CJ ENM은 알짜 자회사 빌리프랩 지분을 하이브에 전량 매각하면서 재무구조 개선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 구조조정에 대한 말 역시 올해 초부터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올해 하반기 매출 전망 역시 밝지만은 않다. 실적이 오르기 위해서는 TV 광고 시장이 성장하고, 티빙의 유료 가입자 수가 확대되며, 피프스 시즌의 작품 공급이 예정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 경기 악화와 시청 형태 변화로 TV광고 판매는 부진하고, 미국 작가, 배우들의 파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티빙은 '이재, 곧 죽습니다' 외에 텐트폴이라 할만한 작품이 없다.

이렇다 보니 '천박사 퇴마 연구소'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의 제작비는 113억원, 손익분기점은 240만명으로 알려졌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매출을 올리는 방법이 된 셈이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 개봉한 '공조2:인터내셔날'이 698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만큼, '천박사 퇴마 연구소'가 이 정도의 성적만 거둔다면 숨통을 트여줄 수 있다는 반응도 있다.

한 관계자는 "2025년 개봉을 목표로 기획되는 작품 중 제작비 300억원 이상의 대작이라 할 만한 건 현재 두 작품 정도"라며 "대형 블록버스터가 기획 단계부터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엔터계 큰 손이었던 CJ ENM이 무너질까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