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만 더 큰 고통 받나"…선거철 핵심 이슈 된 기후위기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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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탄소 배출량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도 되지 않는데, 영국 국민들에게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지난 20일 "기후변화 대책의 시간표를 늦추겠다"고 발표한 자리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이는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 세계를 '김새게' 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고(高)물가 등 생계비 위기에 시달리는 영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에서는 내년 조기 총선이 예정돼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주요국의 선거전에서 늘상 주변부에 머물렀던 기후위기 어젠다가 최근엔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각국의 정치권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목표치를 성공시키려면 예상했던 것보다 엄청난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각성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5년 파리 협정 이후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시간표를 제시했다. 미국과 영국 등 대부분의 나라는 자국의 탄소 순배출량을 없애는 시기를 2050년으로 설정했고, 중국은 2060년 인도는 2070년을 약속했다.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2045년으로 제시하고, 2017년 세계 최초로 이를 법제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스웨덴도 기후위기 대응에서 한발 물러섰다. 내년 기후대책 관련 예산안을 2억5900만스웨덴크로나(약 310억원) 삭감하고, 휘발유 및 경유 사용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주는 내용 등이 발표됐다. 수낵 총리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미루겠다"며 기후대책 후퇴를 공표한 날과 같은 날이었다. 스웨덴 정부는 "2045년 탄소중립 목표는 고사하고 2030년 중간 목표치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자인했다.
이는 유권자들의 여론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들은 각종 설문에서 "기후변화 대책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응답하지만, 막상 생계비 증가 등 일상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서는 태도를 바꾼다는 지적이다. 유고브(YouGov)가 지난달 영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응답률은 71%에 달했다.
반면 이와 동시에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조치를 연장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응답률도 47%에 이르렀다. 영국인들이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불충분하다고 비판하면서도 내연기관차 조기 퇴출에는 반대하는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탄소중립은 필요하지만 일반 국민들에 비용이 전가돼서는 안 된다"는 문구에는 55%가 찬성했다. 이를 두고 영국 현지에서는 <넷제로는 좋은 일, 단 유권자한테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한에서만>이라는 제목의 보도가 잇따랐다. 이 같은 여론에 따라 주요국의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후변화 정책의 완화를 선거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독일은 내년부터 일반 가정용 화석연료 보일러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한 뒤 연립정부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3690억달러 규모의 친환경 보조금을 뿌리기로 약속한 미국에서도 기후위기 대책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대표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핵 전쟁 위협이 지구온난화 위험보다 훨씬 크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위기 어젠다를 비판하고 있다. 또 다른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비벡 라마스와미도 "기후변화 위기 주장은 사기극"이라는 문구로 유권자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스티브 애크허스트 기후변화 전문 여론조사 분석가는 "미국에서는 해당 의제가 정치적으로 더욱 양극화돼 왔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지난 20일 "기후변화 대책의 시간표를 늦추겠다"고 발표한 자리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이는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 세계를 '김새게' 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고(高)물가 등 생계비 위기에 시달리는 영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에서는 내년 조기 총선이 예정돼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주요국의 선거전에서 늘상 주변부에 머물렀던 기후위기 어젠다가 최근엔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각국의 정치권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목표치를 성공시키려면 예상했던 것보다 엄청난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각성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5년 파리 협정 이후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시간표를 제시했다. 미국과 영국 등 대부분의 나라는 자국의 탄소 순배출량을 없애는 시기를 2050년으로 설정했고, 중국은 2060년 인도는 2070년을 약속했다.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2045년으로 제시하고, 2017년 세계 최초로 이를 법제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스웨덴도 기후위기 대응에서 한발 물러섰다. 내년 기후대책 관련 예산안을 2억5900만스웨덴크로나(약 310억원) 삭감하고, 휘발유 및 경유 사용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주는 내용 등이 발표됐다. 수낵 총리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미루겠다"며 기후대책 후퇴를 공표한 날과 같은 날이었다. 스웨덴 정부는 "2045년 탄소중립 목표는 고사하고 2030년 중간 목표치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자인했다.
이는 유권자들의 여론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들은 각종 설문에서 "기후변화 대책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응답하지만, 막상 생계비 증가 등 일상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서는 태도를 바꾼다는 지적이다. 유고브(YouGov)가 지난달 영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응답률은 71%에 달했다.
반면 이와 동시에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조치를 연장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응답률도 47%에 이르렀다. 영국인들이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불충분하다고 비판하면서도 내연기관차 조기 퇴출에는 반대하는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탄소중립은 필요하지만 일반 국민들에 비용이 전가돼서는 안 된다"는 문구에는 55%가 찬성했다. 이를 두고 영국 현지에서는 <넷제로는 좋은 일, 단 유권자한테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한에서만>이라는 제목의 보도가 잇따랐다. 이 같은 여론에 따라 주요국의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후변화 정책의 완화를 선거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독일은 내년부터 일반 가정용 화석연료 보일러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채택한 뒤 연립정부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3690억달러 규모의 친환경 보조금을 뿌리기로 약속한 미국에서도 기후위기 대책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대표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핵 전쟁 위협이 지구온난화 위험보다 훨씬 크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위기 어젠다를 비판하고 있다. 또 다른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비벡 라마스와미도 "기후변화 위기 주장은 사기극"이라는 문구로 유권자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스티브 애크허스트 기후변화 전문 여론조사 분석가는 "미국에서는 해당 의제가 정치적으로 더욱 양극화돼 왔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