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주어와 서술어 일치시켜야 정확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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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내용의 참·거짓 여부에 상관없이 문장 형식이 객관성을 띠고 있느냐 여부에 있다. 주어와 서술어를 일치시켜야 정확한 문장이 된다.
구한말 1895년 열강의 각축 속에 일단의 일본 자객이 경복궁을 습격해 명성황후를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을미사변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라고도 한다. 누군가 이를 ‘명성황후 살해사건’이라고 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 ‘시해(弑害)’란 부모나 임금 등을 죽임을, ‘살해(殺害)’는 사람을 해치어 죽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두 말의 결정적 차이는 누구의 관점이냐에 있다. ‘시해’는 나와 우리의 관점인 데 비해 ‘살해’는 제삼자 관점에서 쓰는 말이다. 그러니 모국어 화자는 당연히 우리 관점을 담아 ‘시해’라고 해야 한다.
저널리즘 글쓰기에서 이처럼 나의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임을 드러내는 것은 글에 객관성을 불어넣는 길이기도 하다. 이때의 객관성은 물론 형식논리상의 객관성을 말한다. 자칫 언론의 ‘객관성’을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하는 얘기일 뿐이다. ‘객관성’ 개념은 실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내용의 참·거짓 여부에 상관없이 문장 형식이 객관성을 띠고 있느냐 여부에 있다.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게 좀 더 쉽다.
“물가상승으로 단체 급식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 현대그린푸드의 올해 영업이익은 1000억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문법적으로는 이상 없지만 저널리즘의 눈으로 보면 거슬리는 데가 있다. ‘~ 것으로 보인다’를 주목해야 한다. 이는 판단 어법, 즉 화자(話者)가 단정하거나 규정하는 표현이다. 저널리즘 문장은 남의 판단을 인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려면 ‘~로 보인다’고 하지 말고 ‘~로 알려졌다’라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장에 (형식적)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사의 완성도를 더하고 나아가 글의 격을 높일 수 있다. 그것이 전달 어법의 힘이다.
①은 우리가 앞서 다룬 적 있는 ‘비정상적 명사문’이다. ‘태풍’과 ‘전망이다’를 주어-서술어 관계로 구성했으나, 실은 내용상 주술 관계를 이루지 못한다. ‘태풍은 내륙을 관통한 뒤 동해로 빠져나갈’에 주어-술어가 실현됐고, 전체 서술어 ‘전망이다’의 주체는 누군가 드러나지 않은 제삼자다. 비문인 셈이다.
그래서 문장이라도 성립하게 다시 쓴 게 피동문 ②다. 하지만 이 문장은 문장 자체는 이상 없지만, ‘저널리즘성’을 확보하지 못한, 부족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서술어를 ‘전망된다’고 하면 ‘필자가 그리 전망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전달 어법이 아니라 판단 어법이라는 얘기다. 사람들이 이를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그만큼 이런 문장에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다. 글쓴이는 옮기는 사람일 뿐이고 전망은 기상청이 한 것이므로 주체를 살려 쓰면 된다. 그래야 올바른 전달문이 되고 문장에 힘도 붙는다.
③“기상청은 태풍 000이 2일 제주도에 상륙해 내륙을 관통한 뒤 3일 밤 동해로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비로소 전달 어법이 완성됐다. 동시에 문장이 ‘객관성’을 부여받고 구성도 탄탄해졌다. ①→②→③의 과정을 비교해보면 뉴스 언어로서 어떤 게 완성도 높은 문장인지 자명하게 드러난다.
‘~로 보인다’는 필자가 판단하는 표현
글을 쓰다 보면 타인의 말이 아니라 나의 말로 전달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글을 ‘주체적 관점’에서 써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지금 말하는 게 나의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얘기임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다. 지난 호에서 설명한 ‘이른바’를 사용해 “남들이 그리 말하더라”라는 의미를 더해주는 문장론적 기법이 그런 방법론 중 하나다. 그것이 바로 전달 어법이다.저널리즘 글쓰기에서 이처럼 나의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임을 드러내는 것은 글에 객관성을 불어넣는 길이기도 하다. 이때의 객관성은 물론 형식논리상의 객관성을 말한다. 자칫 언론의 ‘객관성’을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하는 얘기일 뿐이다. ‘객관성’ 개념은 실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내용의 참·거짓 여부에 상관없이 문장 형식이 객관성을 띠고 있느냐 여부에 있다.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게 좀 더 쉽다.
“물가상승으로 단체 급식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 현대그린푸드의 올해 영업이익은 1000억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문법적으로는 이상 없지만 저널리즘의 눈으로 보면 거슬리는 데가 있다. ‘~ 것으로 보인다’를 주목해야 한다. 이는 판단 어법, 즉 화자(話者)가 단정하거나 규정하는 표현이다. 저널리즘 문장은 남의 판단을 인용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려면 ‘~로 보인다’고 하지 말고 ‘~로 알려졌다’라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장에 (형식적) 객관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사의 완성도를 더하고 나아가 글의 격을 높일 수 있다. 그것이 전달 어법의 힘이다.
주체 드러내야 힘 있는 문장 생겨
이제 날씨 기사에서 흔히 보이는 다음 문장들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찾아보자. ①“태풍 000은 2일 제주도에 상륙해 내륙을 관통한 뒤 3일 밤 동해로 빠져나갈 전망이다.” ②“태풍 000은 2일 제주도에 상륙해 내륙을 관통한 뒤 3일 밤 동해로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된다.”①은 우리가 앞서 다룬 적 있는 ‘비정상적 명사문’이다. ‘태풍’과 ‘전망이다’를 주어-서술어 관계로 구성했으나, 실은 내용상 주술 관계를 이루지 못한다. ‘태풍은 내륙을 관통한 뒤 동해로 빠져나갈’에 주어-술어가 실현됐고, 전체 서술어 ‘전망이다’의 주체는 누군가 드러나지 않은 제삼자다. 비문인 셈이다.
그래서 문장이라도 성립하게 다시 쓴 게 피동문 ②다. 하지만 이 문장은 문장 자체는 이상 없지만, ‘저널리즘성’을 확보하지 못한, 부족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서술어를 ‘전망된다’고 하면 ‘필자가 그리 전망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전달 어법이 아니라 판단 어법이라는 얘기다. 사람들이 이를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그만큼 이런 문장에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다. 글쓴이는 옮기는 사람일 뿐이고 전망은 기상청이 한 것이므로 주체를 살려 쓰면 된다. 그래야 올바른 전달문이 되고 문장에 힘도 붙는다.
③“기상청은 태풍 000이 2일 제주도에 상륙해 내륙을 관통한 뒤 3일 밤 동해로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비로소 전달 어법이 완성됐다. 동시에 문장이 ‘객관성’을 부여받고 구성도 탄탄해졌다. ①→②→③의 과정을 비교해보면 뉴스 언어로서 어떤 게 완성도 높은 문장인지 자명하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