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군사개입' 1996년 폐기…2000년 북러정상회담서 '유사시 협의' 명시

[장용훈의 한반도톡] 북러 사이 동맹복원은 '아직'…외교와 관리가 필요한 이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으로 북러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지만, 옛 소련 시절 동맹관계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동맹은 두 국가가 서로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동일하게 행동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한 국가가 외부의 적과 전쟁을 치를 때 다른 국가도 참전해 함께 싸워주는 관계를 의미한다.

한미동맹이 대표적이다.

한미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10월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제3조)은 한 국가가 다른 나라의 무력공격으로 위협을 받을 때 다른 당사국은 자국의 위험으로 인식하고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행동할 것을 명시했다.

이른바 자동군사개입 조항이다.

이러한 합의는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도 존재했다.

북한과 옛 소련이 1961년 맺은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에는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소련이 1990년 9월 남한과 수교하고, 이듬해 8월 소련 해체로 러시아로 전환되면서 조약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가 1996년 폐기됐다.

러시아 체제 이후 북러는 소원한 사이로 지내다가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전환점으로 복원의 길을 걸었다.

그해 2월 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북한을 방문해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경제 과학 문화 등 분야에서 양국간 협력을 명시했지만 동맹관계의 핵심인 자동군사개입까지 담아내지 않았다.

이어 7월 푸틴-김정일 정상회담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공동선언은 "북한 또는 러시아에 대한 침략위험이 조성되거나 평화와 안전에 위협을 주는 정황이 조성돼 협의와 호상 협력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지체 없이 서로 접촉할 용의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유사시 자동개입이 아닌 협의의무를 명시한 것이다.

[장용훈의 한반도톡] 북러 사이 동맹복원은 '아직'…외교와 관리가 필요한 이유
이처럼 2000년 북러 정상회담은 동맹관계 복원까지 이뤄내진 못했다.

하지만 한러수교로 소원했던 양국관계는 거리를 좁혀 전략적 협력관계 수준에는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동맹관계 복원 가능성에 눈길이 쏠렸다.

그러나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정상회담 이후 북러 정상은 아무런 합의나 선언을 내놓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 이어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의 항공기 공장 시찰, 블라디보스토크 크네비치 군 비행장에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각종 전략폭격기 참관, 태평양함대 대잠호위함 탑승 등 대외적으로 위협이 될만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런 군사적 행보 속에서 북러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감지되진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우주기술 지원이나 군사적 협력을 시사하긴 했으나, 이런 기술적 협력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당장 큰 진전을 예상하긴 어렵다.

남한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위성 발사에 성공하기까지 십수 년이 걸린 데서 여실히 드러나듯 위성이나 무기 기술 이전이 일반적인 상품구매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래서 당분간 북러 간 협력은 경제나 사회문화 분야에서 분주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러시아 연해주지사의 방북이 이어지고 노동인력 파송, 식량지원, 유류 등 에너지 지원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이며, 이때 북한이 얻어낼 결과물이 주목된다.

이제는 한국 정부의 외교가 작동해야 할 시간이다.

국제사회 제재로 고립된 러시아와 북한이 동맹관계로 나아가고, 러시아가 최신예 전투기나 폭격기, 레이더 장비 등 전략성이 강한 재래식 무기를 북한에 지원하면 가뜩이나 복잡한 동북아시아 질서는 실타래처럼 엉키고 꼬이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제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대량살상무기(WMD)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러시아와 북한 군사 거래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과 동맹, 우방국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이런 우려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장용훈의 한반도톡] 북러 사이 동맹복원은 '아직'…외교와 관리가 필요한 이유
여기에 이미 러시아가 시사한 대로 중러 합동군사연습에 북한이 참여하게 되면 한반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한랭전선이 짙어지고 구축되고 긴장이 상시화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봉쇄에 무게가 실렸던 중러 군사연습이 북중러 연습으로 확장되면 한반도로 가상의 전장이 바뀔 수 있다.

지정학적 불안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 더 짙은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

러시아의 유일한 지원 국가인 벨라루스와 북한 간 관계가 강화하는 것도 위험 요소다.

소련 해체 직후 핵무기 보유국이 된 벨라루스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위한 이동식 발사차량 제작기술 등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셈이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 15일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러시아, 벨라루스, 북한 세 국가가 협력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전직 외교안보 분야 고위 당국자는 "북러 관계가 동맹수준에 도달하면 한반도에서 군사, 외교적으로 더 복잡한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며 "러시아를 규탄하는 조치와 더불어 물밑에서는 외교를 통해 설득하는 조치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