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친족 회사 없으면 총수 지정 예외' 방안 등 거론
쿠팡 김범석 의장 제외 가능성…"관계부처와 계속 협의"
통상마찰 벽 부딪힌 외국인 총수 지정…공정위 돌파구 마련 고심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상 마찰 우려가 없는 외국인 동일인(총수) 지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연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 지정 여부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외국인 동일인 지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안을 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 등과 협의하고 있다.

작년 7월 말 공정위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려다 산업부 등의 반대로 연기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요건을 어떻게 정할지 관계부처가 계속 의견을 교환하면서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의 범위와 대기업 규제 적용 대상을 결정하는 기준점이다.

원칙적으로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사람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해당하는 사람이 없으면 국내 최상단 회사나 비영리법인을 지정한다.

외국인 동일인 지정 문제는 2021년 쿠팡이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공정위는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제도적 미비'를 이유로 한국계 미국인인 김범석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는데, 국내 기업인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었다.

기업집단의 총수는 지정자료 제출 의무와 사익 편취 규제를 적용받고 위반 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지정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집단의 동일인이 외국 국적만 보유한 사례는 이중국적이었다가 한국 국적을 상실한 OCI 이우현 회장이 유일하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기업인 아람코가 최대 주주인 에쓰오일과 미국계 제너럴모터스 그룹의 한국지엠은 국내 대표회사 법인이 동일인이다.

공정위는 쿠팡 외에도 동일인 2세·배우자가 외국 국적(이중국적 포함)을 보유한 기업집단이 다수 존재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명확한 외국인 동일인 지정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통상 마찰 가능성이다.

쿠팡은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고, 산업부도 자유무역협정(FTA) 최혜국 대우 규정 위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내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과 관련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통상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쿠팡은 현재 국내에 김범석 의장 개인이나 친족이 경영하는 회사가 없어 쿠팡 법인이 아닌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더라도 사익 편취 규제 적용 범위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 요소다.

공정위는 사익 편취 규제 공백을 없애면서도 통상 마찰 우려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방침이다.

국내에 본인·친인척이 지분을 보유한 다른 회사가 없어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사익 편취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더라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다고 규정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쿠팡 김범석 의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가 연내 관계부처와 협의를 마치고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연내 입법예고가 시작되지 않으면 내년 4월 말께 이뤄지는 2024년도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때 적용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