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판타지가 주는 위안
즐겨보던 네이버 웹툰 ‘위아더좀비’가 2년7개월간의 연재를 마쳤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좀비물이다. 이 만화 속 좀비는 나약하고 코믹하게 등장해 전혀 위협적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좀비는 배경 설정일 뿐, 좀비로 득실대는 서울의 한 타워에 갇힌 사람 개개인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애초에 등장인물들은 ‘자발적으로’ 좀비 타워에 갇히기로 선택한다. 굳이 타워 밖 안전한 현실로 탈출하려 하지 않는다. 취업난, 우울증, 폭력 등으로 죽은 사람처럼 살아갔던 저마다의 과거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오히려 죽은 사람들과의 공존이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힘든 현실에서 도피해 원했던 욕망을 펼치기. 그런 사람끼리 모여 하나의 공동체 만들기. 여기서부터 좀비 타워는 현실과 동떨어진 일종의 판타지로 채워진다.

판타지라고 해서 타워 생활이 거창하게 그려지진 않는다. 누군가 던지는 쓸데없는 질문 하나에도 심각하게 회의를 열며 하루를 보내거나, 누군가의 사랑 고백을 돕거나, 자신의 보람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식물을 가꾸고 식자재를 정리하며 보내는 식이다. 몇 년 뒤 좀비 타워를 벗어난 주인공이 스스로 반복해서 새긴 주문은 한 문장이다. “충분히 행복했다. 충분히 행복했다.” ‘충분’이라는 단어엔 더 이상 타워 생활에 미련이 없음을, ‘행복’이라는 단어엔 앞으로 살아갈 현실을 버티게 하는 희망을 담은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타워에서 나온 등장인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뿔뿔이 흩어진 채 각자의 현실로 복귀한다.

판타지 작품이 위안을 주는 방식은 은근하다. 분명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상상력의 옷을 입고 있어 신파극이나 자기계발서보다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적다. 언제 어디서 재난과 사고가 터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오늘날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좀비 바이러스 사태만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재난 설정마저 상상의 영역이니 그 속에서의 욕망 실현은 더욱 편안하고 완벽한 판타지로 다가온다.

반면 등장인물들이 타워 탈출을 두려워하던 삶, 즉 만화 속 현실은 진짜 세계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주인공은 탈출 후에도 여전히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채우며 하루를 아르바이트로 버틴다. 깨어나기 싫었던 꿈이 사라지니 일상의 무력감은 더 크게 다가온다. 매일 회사로 출퇴근하고, 아이를 돌보고, 외로움을 견디는 보통 사람 모두가 좀비 타워 생활에서 자신만의 판타지를 충족할 수 있었던 이유다. 현실과 판타지의 간극이 꽤나 크다는 걸 깨달으니 헛헛한 마음이지만, 이 작품에 푹 빠졌던 나와 사람들에게 “충분히 행복했다”는 위안만큼은 이따금씩 생각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