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퇴직연금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중도 인출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출금의 상당액은 주택 구입에 사용돼 안 그래도 심각한 자산의 부동산 편중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만 55세인 퇴직연금 수급 연령 요건을 충족해 수급을 개시한 퇴직연금 계좌 39만7270개 가운데 일시금으로 돈을 받은 계좌가 38만286개로 95.7%를 차지했다. 연금 방식으로 분할 수령하는 퇴직연금의 도입 취지와 거리가 있다. 2021년 퇴직연금을 중도에 빼낸 가입자 중 주택 구입 명목 인출자는 3만 명(54.4%)으로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5년 이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중도 인출 금액은 약 1조3000억원에 달했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을 때 적용되는 불이익이 적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국내에선 은퇴자가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받을 때 6.6~49.5% 세율로 퇴직소득세가 부과되지만, 근속연수 등에 따른 공제가 적용돼 실제 세금은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의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인 401K는 은퇴자가 연금자산을 일시금으로 받으면 세제 혜택을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시금으로 인출하는 비중이 2020년 기준 2%에 불과했다. 미국은 또 만 59.5세 이전에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하면 소득세와는 별도로 수령액의 10%를 추가로 과세한다. 영국도 일시금 수령 시 55%에 달하는 고율의 세금을 부과해 종신연금을 강제했지만, 2015년 ‘연금 자유화 정책’으로 제한을 풀었다. 대신 은퇴자가 일시금 인출을 요청하면 정부가 설립한 연금 전문 컨설팅기관의 상담을 받게 한다.

최만수/양병훈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