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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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에 대한 고율의 횡재세 부과 방침으로 유럽 시장을 출렁이게 했던 이탈리아 정부가 결국 한발 물러섰다. 일정 조건을 충족시키는 은행에는 납세 의무를 면제해주기로 한 것이다. 야당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까지 횡재세 부과 정책을 비판하고 나서자 타협에 나섰다는 평가다.

25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지급준비금 규모를 세금 부담액의 2.5배만큼 늘려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높이는 데 사용하는 은행은 횡재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이 포함된 개정안을 마련했다. 다만 이렇게 축적된 지급준비금이 추후 배당금으로 지급될 경우 해당 은행은 세금 전액과 만기 이자를 합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개정안은 또 횡재세 부담액의 상한을 은행 총자산의 0.1%가 아닌 위험가중자산(RWA)의 0.26%로 설정했다. 부과 기준은 2021~2023년 순이자수익(NIM) 증가분 중 10% 초과액으로 계산된 은행의 초과 수익이다. 전체 징수액은 초안 때와 같이 30억유로(약 4조2700억원)로 유지된다. 개정안은 이번 주 의회의 승인을 받아 다음 주부터 구속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8월 7일 시중 은행들의 순이자 수익에 40%의 일회성 횡재세를 부과하는 특별 법안을 기습 발표해 유럽 주요 은행들의 주가를 10%가량 끌어내렸다. 고금리 기조에 따라 가계와 기업이 모두 고통받고 있는 와중 은행들만 초과 이익을 챙겼다는 논리에서였다. 은행들이 예금 금리 인상은 거부하면서 대출 금리만 올려 가계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 현 정부의 주장이다. 세금 수입은 중소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과 대출 확대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이탈리아의 행보는 십자포화의 대상이 됐다. ECB는 “유럽의 경기 침체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며 횡재세 도입을 재고하라고 요구했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끌고 있는 우파 연립정부(연정)에도 균열이 갔다. 고(故)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의 장녀인 마리나가 이탈리아 경제인협회인 콘핀두스트리아 총회에서 공개적인 비판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마리나는 “‘추가 이익’이라는 단어에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선동적이며,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베를루스코니 가문이 세운 지주회사 핀인베스트는 횡재세 부과 대상에 속해 있는 자산운용사 메디올라눔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멜로니 총리는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횡재세 부과 방침을 고수했지만, 정치‧경제적 압박에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정 3당 중 하나인 전진이탈리아(FI)의 대표 안토니오 타야니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이번 개정안이 “개인 보호와 글로벌 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 시절에도 에너지 기업을 타깃으로 횡재세를 부과한 적이 있다. 유럽에서 금융권을 대상으로 횡재세를 도입한 국가는 스페인, 헝가리 등이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