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욱 한국전기연구원 전력반도체연구단장(왼쪽 두 번째)과 세미랩코리아 박수용 대표(세 번째)가 탄화규소 전력반도체 이온 주입 평가기술 이전식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전기연 제공
방욱 한국전기연구원 전력반도체연구단장(왼쪽 두 번째)과 세미랩코리아 박수용 대표(세 번째)가 탄화규소 전력반도체 이온 주입 평가기술 이전식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전기연 제공
전력반도체는 첨단 전자기기의 핵심 부품이다. 전류 방향을 조절하고 전력 변환을 제어하는 등 사람의 근육 같은 역할을 한다. 전력반도체 소재로는 탄화규소(SiC)가 높은 내구성과 전력 효율로 가장 주목받고 있다. SiC 전력반도체를 전기차에 넣으면 배터리 전력 소모가 적어지고 차체 무게와 부피가 줄어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

전력반도체의 단점은 제조 공정이 까다롭다는 것이다. 통상 웨이퍼에 에피층(단일 결정 반도체 박막층)을 만들고 여기에 전류를 흘려보내 소자를 형성하는 방법을 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에피층 표면이 거칠어지고 전자 이동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에피 웨이퍼 가격도 고가라 양산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전기연구원(원장 김남균)은 에피층이 없는 반절연 SiC 웨이퍼에 이온을 주입하는 기술을 개발해 헝가리 부다페스트 소재 반도체 측정 장비 기업 세미랩에 기술이전했다고 최근 밝혔다.

강도가 높은 SiC 소재에 이온을 주입하려면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온을 주입하고 난 뒤엔 고온에서 열처리를 거쳐야 한다. 전기연은 10여 년에 걸쳐 이 기술을 개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반도체 관련 120여 건의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하고 있다.

김형우 전기연 차세대반도체연구센터장은 “이온 주입 기술을 쓰면 반도체 소자의 전류 흐름이 원활해질 뿐만 아니라 고가의 에피 웨이퍼를 대체할 수 있어 공정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SiC 전력반도체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양산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세미랩은 이 기술을 활용해 SiC 전력반도체 이온 주입 공정을 평가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할 계획이다. 박수용 세미랩코리아 대표는 “장비가 계획대로 개발되면 SiC 전력반도체의 불량률을 낮추고 소자의 수율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연은 앞서 전고체전지에 쓸 수 있는 아지로다이트(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개발한 화합물) 계열 황화실리콘을 저렴하게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았다.

전고체전지는 양극과 음극 사이 이온을 전달하는 전해질을 액체가 아닌 고체로 대체한 것이다. 액체 전해질 기반 리튬이온전지 등과 달리 화재나 폭발 위험성이 거의 없다. 다만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은 수분에 노출될 경우 유독가스인 황화수소를 발생시키는데 황화실리콘이 이를 줄일 수 있다. 이를 수분 안전성이라고 한다. 또 전고체전지용 전해질에 황화실리콘을 첨가하면 이온 전도도를 높일 수 있다. 문제는 황화실리콘 제조 난도가 높다는 점이다. 먼저 황과 실리콘을 합성할 때 매우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황의 증기압이 너무 커지는 문제도 있다. 이 때문에 황화실리콘은 20g당 가격이 17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싸다.

전기연은 황과 실리콘 배치를 최적화하는 합성 조건을 고안하고, 800도가량 고온에서 황의 기화에 따른 증기압을 견딜 수 있는 밀폐 공정 환경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황화실리콘을 전해질로 쓰면 다른 소재 대비 2배 이상 높은 이온 전도도와 수분 안전성을 나타내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성과는 에너지 분야 글로벌 학술지 ‘저널 오브 머티리얼즈 케미스트리 A’에 실렸다. 임팩트팩터(IF)가 14.511인 학술지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