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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노조 사업장에서 교섭대표 노조의 힘은 강할 수 밖에 없다. 회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교섭대표 노조가 되지 못한 다른 노조에 대해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 교섭대표 노조가 맺은 단체협약이 회사 내 다른 노조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교섭대표 노조가 되기 위한 노노 간 경쟁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특정 교섭대표 노조가 회사와 맺은 단체협약에서, 유독 해당 노조 조합원만 직급이 승진이 되고 특정 노조가 배제되는 이상한 결과로 이어졌다면 어떻게 될까.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주심 정회일)는 지난 14일 MBC 제3노조 소속 근로자 19명이 MBC를 상대로 청구한 '직급강등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의 승소로 판단했다.
원고 근로자들은 2018년 직급이 강등된 간부급 직원들로 국장급에서 부장급으로 강등된 9명, 부국장급에서 부장으로 강등된 6명 등이 포함돼 있다. 대부분 민주노총 언론노조 MBC본부(제1노조)와 각을 세우는 제3노조 소속이다.
MBC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승호 사장이 부임하면서 2018년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감사 결과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2016년까지 파업 참여하는 등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언론노조 조합원들을 부당하게 승진 배제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결론이 나왔다.
MBC와 언론노조는 "그간 부당한 인사조치를 바로잡겠다"며 승진 규정을 대거 수정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승진을 위한 근속연수를 늘리고 기존 7개 직급을 4개로 단순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MBC는 10년차 미만은 사원, 10년차 이상 20년차 미만은 차장, 20년차 이상 30년차 미만은 부장, 30년차 이상은 국장으로 분류하면서 직원 236명의 직급을 올려주었고 106명의 직급을 강등했다. 문제는 해당 개정 규정에 따라 직급이 상향된 근로자 236명 중 191명이 언론노조 소속이었다는 점이다. 반면 하향 조정된 106명 중에는 언론노조 소속이 44명에 불과했고, 하향된 나머지 62명은 대부분 제3노조 혹은 비조합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당시 제3노조는 66명에 불과해서 제3노조 조합원의 대다수가 직급이 추락된 결과가 됐다. 이에 강등 당한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강등처분이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제3노조는 법원 선고를 앞두고 "메인뉴스에서 방송을 하지 못하면 사회적 파장과 긍정적인 변화를 몰고 오는 기획보도도, 특종보도도 할 수 없으므로 결국 취재부서가 있는 취재센터에 발령을 받지 못하게 되고, 보도국 내에서 부장이나 데스크로 승진할 기회도 박탈된다. 결국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방송기회를 배제시키는 결과"라며 "해당인원들은 조직 내의 열등한 인원으로 분류되어 직장 내 승진이나 커리어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재판부는 먼저 언론노조에 직급 상승이 편향된 점에 대해서는 우연이 아니라고 봤다.
먼저 △언론노조가 단협 체결 전 여러차례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직급 상향되거나 하향되는 근로자를 파악한 정황 △언론노조가 제3노조에게 단협 체결 과정에서 참여 기회를 전혀 주지 않은 점 △최승호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언론노조 출신인 점을 근거로 들며 "언론노조와 MBC가 이런 결과를 의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차별적인 의사가 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또 재판부는 "직급강등은 근로자의 인격적 법익과도 관계된 것으로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아 정당한 목적이 있는 경우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며 "임의로 정한 근속 연수를 기준으로 전체 근로자들의 직급을 조정하는 게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승진에서 불이익을 입은 언론 노조 조합원을 특정할 수 있는데, 아예 근로자 전체를 대상으로 새로 직급을 부여한 것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MBC가 승소한 11명에게 2018년부터 지급하지 않은 직급 및 직무수당과 퇴직연금 추가 적립액 등 1인당 2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서 확정될 경우 평직원으로 강등됐던 전 간부들이 다시 간부에 대거 오르게 된다.
이번 판결은 노동법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간 대법원은 "협약자치의 원칙상 …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노사 간의 합의를 무효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함부로 단체협약을 무효로 보거나 효력을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다만 "그러나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한다는 노동조합의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런 합의는 무효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단체협약 내용 자체가 위법해 무효라고 보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앞서 대법원 판결은 무려 16년 전 판결이다.
따라서 통상 단체협약은 개정 절차에서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얻지 못하거나 소환 절차 등에 문제가 있거나, 소수노조에 대한 공정대표 의무를 위반하는 등 절차적 하자가 발생해 무효라고 판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판결은 비록 노사가 절차를 잘 준수해서 체결한 단체협약이라고 해도, 노사합의라는 이유로 금과옥조 같은 효과를 누릴수는 없음을 보여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회사는 노사 합의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기소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근로자 측을 대리한 이동산 아이앤에스 변호사는 "법리상 단체협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판례가 있긴 했지만 매우 드물었다"며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검토해서 단협의 무효를 선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소수노조 승진길 막은 꼼수 단협, '무효'라는 법원
2018년 문화방송(MBC) 최승호 사장이 MBC 내 제3노조 소속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직급을 강등시켰던 조치가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경영진과 언론노조가 과거 자신들이 당했던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직급 승진의 폐해'를 바로잡겠다며 단체협약을 통해 바꾼 승진 규정이 '무효'라는 취지다.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주심 정회일)는 지난 14일 MBC 제3노조 소속 근로자 19명이 MBC를 상대로 청구한 '직급강등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의 승소로 판단했다.
원고 근로자들은 2018년 직급이 강등된 간부급 직원들로 국장급에서 부장급으로 강등된 9명, 부국장급에서 부장으로 강등된 6명 등이 포함돼 있다. 대부분 민주노총 언론노조 MBC본부(제1노조)와 각을 세우는 제3노조 소속이다.
MBC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승호 사장이 부임하면서 2018년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감사 결과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2016년까지 파업 참여하는 등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언론노조 조합원들을 부당하게 승진 배제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결론이 나왔다.
MBC와 언론노조는 "그간 부당한 인사조치를 바로잡겠다"며 승진 규정을 대거 수정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승진을 위한 근속연수를 늘리고 기존 7개 직급을 4개로 단순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MBC는 10년차 미만은 사원, 10년차 이상 20년차 미만은 차장, 20년차 이상 30년차 미만은 부장, 30년차 이상은 국장으로 분류하면서 직원 236명의 직급을 올려주었고 106명의 직급을 강등했다. 문제는 해당 개정 규정에 따라 직급이 상향된 근로자 236명 중 191명이 언론노조 소속이었다는 점이다. 반면 하향 조정된 106명 중에는 언론노조 소속이 44명에 불과했고, 하향된 나머지 62명은 대부분 제3노조 혹은 비조합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당시 제3노조는 66명에 불과해서 제3노조 조합원의 대다수가 직급이 추락된 결과가 됐다. 이에 강등 당한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강등처분이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제3노조는 법원 선고를 앞두고 "메인뉴스에서 방송을 하지 못하면 사회적 파장과 긍정적인 변화를 몰고 오는 기획보도도, 특종보도도 할 수 없으므로 결국 취재부서가 있는 취재센터에 발령을 받지 못하게 되고, 보도국 내에서 부장이나 데스크로 승진할 기회도 박탈된다. 결국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방송기회를 배제시키는 결과"라며 "해당인원들은 조직 내의 열등한 인원으로 분류되어 직장 내 승진이나 커리어관리가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법원, 이례적으로 "단체협약 내용이 합리성 결여" 무효 판단
법원은 "(해당 단체협약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여하여 노동조합의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고 근로자 일부의 손을 들어줬다.재판부는 먼저 언론노조에 직급 상승이 편향된 점에 대해서는 우연이 아니라고 봤다.
먼저 △언론노조가 단협 체결 전 여러차례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직급 상향되거나 하향되는 근로자를 파악한 정황 △언론노조가 제3노조에게 단협 체결 과정에서 참여 기회를 전혀 주지 않은 점 △최승호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언론노조 출신인 점을 근거로 들며 "언론노조와 MBC가 이런 결과를 의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차별적인 의사가 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또 재판부는 "직급강등은 근로자의 인격적 법익과도 관계된 것으로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아 정당한 목적이 있는 경우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며 "임의로 정한 근속 연수를 기준으로 전체 근로자들의 직급을 조정하는 게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승진에서 불이익을 입은 언론 노조 조합원을 특정할 수 있는데, 아예 근로자 전체를 대상으로 새로 직급을 부여한 것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MBC가 승소한 11명에게 2018년부터 지급하지 않은 직급 및 직무수당과 퇴직연금 추가 적립액 등 1인당 2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서 확정될 경우 평직원으로 강등됐던 전 간부들이 다시 간부에 대거 오르게 된다.
이번 판결은 노동법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간 대법원은 "협약자치의 원칙상 …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노사 간의 합의를 무효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함부로 단체협약을 무효로 보거나 효력을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다만 "그러나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한다는 노동조합의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런 합의는 무효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단체협약 내용 자체가 위법해 무효라고 보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앞서 대법원 판결은 무려 16년 전 판결이다.
따라서 통상 단체협약은 개정 절차에서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얻지 못하거나 소환 절차 등에 문제가 있거나, 소수노조에 대한 공정대표 의무를 위반하는 등 절차적 하자가 발생해 무효라고 판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판결은 비록 노사가 절차를 잘 준수해서 체결한 단체협약이라고 해도, 노사합의라는 이유로 금과옥조 같은 효과를 누릴수는 없음을 보여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회사는 노사 합의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기소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근로자 측을 대리한 이동산 아이앤에스 변호사는 "법리상 단체협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판례가 있긴 했지만 매우 드물었다"며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검토해서 단협의 무효를 선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