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작가 왕쉬예 개인전
모든 걸 아지랑이로 표현
'초끈 이론' 연상시켜

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초끈 이론’도 이와 관련이 있다. 거칠게 요약하면 세상 만물은 아주 작은 ‘흔들리는 끈’으로 구성돼 있다는 이론이다. 물리학계에서 세상의 기본 단위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왕쉬예(王舒野·60)의 작품은 이 같은 초끈 이론을 연상시킨다. 모든 사물과 풍경을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듯한 작은 물결 모양, 즉 ‘흔들리는 끈’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처럼 예술적 상상이 우연찮게 최신 과학 이론과 비슷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조르주 쇠라가 창시한 점묘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점묘법은 점(원자)로 모든 걸 그린다는 점에서 원자론에 자주 비유된다.
왕 작가의 이력이 특이하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중국 출신 작가다. 젊은 시절 촉망받는 작가였지만 1990년 지금의 일본인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 일본에 정착했다.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작품 활동을 일체 하지 않으면서 작품 세계를 갈고 닦았고, 2000년부터 지금까지는 일본·중국 등지에서 인기리에 활동 중이다. 이우환 화백과도 절친한 사이다.
전시장에는 그의 ‘시공나체·즉(視空裸體·卽)’ 연작 19점이 걸려있다. 시공나체를 쉽게 풀어 설명하면 이 세상의 적나라한 본질을 그대로 표현했다는 것. 학고재갤러리의 모습을 비롯해 경복궁의 전면,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등 한국의 여러 풍경을 그렸다지만 자세한 형체는 알아보기 어렵다. 비오는 날 차창 밖으로 내다본 밤거리의 아스라한 불빛도 연상된다. 작가는 “박쥐와 돌고래가 초음파로 보는 세상과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이 다르듯, 눈에 보인다고 해서 다 확실한 진실은 아니라는 철학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