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서 퇴직연금은 개인 자산운용 수단…펀드 선택지만 61만개"
“호주에서 개인 퇴직연금펀드 ‘슈퍼애뉴에이션’은 복지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자산 운용 수단입니다.”

스피로 프레메티스 호주자산운용협회(FSC) 정책총괄이사(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슈퍼애뉴에이션은 가입자마다 각자 사정에 맞게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 운용 자유도가 높은 게 특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자금을 퇴직연금 사업자에 맡기는 대신 직접 운용할 수도 있다”며 “퇴직연금 계좌에 있는 돈으로 상업용 부동산을 매입해 임대료 수익을 얻을 수 있고 다시 현금화할 수도 있다”고 했다. FSC는 호주 내 금융서비스 기업·기관 100여 곳이 모인 단체로 한국의 금융투자협회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FSC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호주 개인 퇴직연금엔 총 3조5000억호주달러(약 3006조800억원)가 쌓여 있다. 이 자금을 굴리는 펀드 종류는 61만 개에 달한다. 각각 수십~수백만 명이 가입한 주요 연금 사업자의 대규모 펀드를 비롯해 가입자가 7인 이하인 소형 펀드까지 합친 수치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투자 선택지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프레메티스 이사는 “납부와 가입 유지 단계까지만 빡빡하게 규제하고 이후 투자 결정은 각 가입자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 호주 퇴직연금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때문에 사업자도 디폴트옵션부터 라이프사이클(생애주기)형 상품, 복잡한 헤지펀드형 상품까지 매우 다양한 투자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주요 화두가 되면서 퇴직연금용 ESG 투자 상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석유·석탄 관련 기업 등엔 투자하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기업에 돈을 넣는 선택지다.

호주는 최근 수년간 소득의 퇴직연금 납부 비중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대비한 조치다. 작년엔 소득의 10.5%를, 올해부터는 11%를 퇴직연금에 납부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이 비중을 2025년엔 12%까지 올릴 계획이다. 프레메티스 이사는 “호주도 여론의 반대로 퇴직연금 납부 비중이 10여 년간 9.5% 수준에 묶여 있었다”며 “최근 연금제도를 정비하면서 가입자의 신뢰가 높아져 이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기준 미달 퇴직연금을 퇴출하는 ‘퍼포먼스 테스트’가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테스트가 불합격 연금 상품을 가려내는 한편 펀드 대부분은 잘 운용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시드니=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