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PRO] 운용사 대표도 꺼리는 비상장사…"지금은 매수 타이밍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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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운용사 대표, 비상장 주식 투자 시 자금 묶일 수도

낮아진 주식 가격에 현혹되선 안 돼…투자 리스크 가장 큰 시기
운용사나 VC도 방어적 투자, RCPS 대신 CB 발행 요구 봇물
[마켓PRO] 운용사 대표도 꺼리는 비상장사…"지금은 매수 타이밍 아냐"
"비상장사 주식, 가격 떨어진 지금이 기회? 투자 리스크가 가장 클 때입니다."

메자닌과 초기 기업 투자에 강점을 지닌 한 자산운용사의 대표 A씨는 이 같이 말했다. 2021년 공모주 광풍이 불면서 상장이 점쳐지는 비상장주식을 미리 사두는 투자 전략이 인기를 끌었으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투자금 회수(엑시트)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A씨는 지금 같은 시기엔 비상장 주식 투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벤처캐피탈(VC) 시장의 자금줄 마르자 이해관계자 간 합의에 따라 몸값을 높일 수 있는 비상장사 기업가치 평가에 높은 할인율이 적용되고 있다. 일각에선 기업가치 조정은 저가 매수 기회란 분석이 나오지만, 자칫 투자금이 장기간 묶일 수 있단 조언이 나온다.

A씨는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비상장사 시장에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상환전환우선주(RCPS)에서 전환사채(CB) 위주로 비상장사 신주 발행 형태가 바뀌었다는 점을 예시로 들었다. 그는 "2021년까지만 하더라도 비상장사들이 주로 RCPS를 발행했는데, 올 들어서는 투자 리스크 헤지(회피)를 빌미로 CB를 요구한 투자자들이 급증했다"면서 "CB는 회사가 망하더라도 상환을 해야 하는 채권이지만, RCPS는 회사가 돈을 벌어야 상환할 수 있는 종류주식"이라고 설명했다.

RCPS는 회사가 부도날 경우에는 투자자들도 100%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회사가 망해도 상환 권리가 있는 CB보다는 위험한 투자 방식이다. 유동성이 넘치던 2021년에는 RCPS 발행 비중이 높았다.

올 들어 신규 투자사들의 잇따른 CB 발행 요구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A씨는 설명한다. 그는 "투자자금이 VC 시장에 몰렸을 땐 너도나도 비상장사 투자에 나섰으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눈에 띄는 실적이 나오지 않는 이상 비상장사의 자금 조달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기업 가치가 하락했을 때 싼값에 알짜 회사 지분을 사두려는 투자법과 관련해서 주의를 당부한다. 얼어붙은 증시에 비상장사 기업가치가 잇달아 하락하고 있다. 비상장사들은 한때 재무적투자자(FI)의 돈을 가려서 받았지만, 요즘은 밸류에이션을 대폭 내리더라도 투자 유치에 성공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다.

그는 "비상장사의 밸류에이션이 이전보다 크게 낮아졌다는 것은 그동안 거품이 껴있었거나, 성장성이 정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기업가치가 낮아졌다는 것은 향후 기업공개(IPO) 등을 통한 엑시트 기회도 미뤄졌단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이 낮아진 주식 가격에 현혹돼 투자금이 장기간 묶이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상장사는 이해관계자 간 합의에 따라 기업가치가 높아진다. 통상 시리즈 투자가 진행될수록 기업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A씨는 "주식을 더 비싸게 매수할 한 명만 있다면, 비상장사의 기업가치는 계속해서 높아지는 구조"라면서도 "요즘같이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비상장사 주식은 폭탄 돌리기와 같다"고 비유했다.

A씨는 시리즈 투자 과정에 기업가치가 낮아질 때 주의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운영자금 확보 등이 절실한 비상장사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낮아진 가격에 자금 조달에 나서지만, 신규 투자자 모집에 집중하는 사이 기존 투자자들이 이탈하는 사례도 종종 생겨난다"면서 "자금이 이탈했을 때 자칫 기업의 디폴트까지 우려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비상장사 주식 투자는 수익성보다 리스크가 더 크다"고 진단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