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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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최대 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 대표에 골드만삭스 출신 동성애자인 스테파노스 카셀라키스(35‧사진)가 선출됐다. 친(親)시장 정책으로 민심을 사로잡은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에 대항하기 위해선 변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유권자들이 파격적인 선택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카셀라키스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당 대표 선출을 위해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56.69%의 득표율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경쟁자였던 에피 악치오글로 전 노동부 장관(38)은 43.31%를 득표했다.

이번 선거는 지난 6월 시리자가 총선에서 대패하자 15년간 집권해 온 알렉시스 차프라스 전 총리가 사임하면서 치러지게 됐다. 전국 537개 투표소에서 13만3600명의 유권자들이 이번 투표에 참여했다.

카셀라키스는 이날 저녁 시리자 본부 밖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빛이 오늘 승리했다. 나는 단지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사회의 목소리다”며 “당신들을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 내일부터 힘든 일이 시작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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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라키스는 결선투표를 불과 한 달 남짓 남긴 시점에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기 시작하며 그리스 정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주된 선거 운동 전략은 소셜미디어(SNS)였다. 그는 지난 8월 29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4분짜리 영상에서 골드만삭스에서 일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자본이 얼마나 저렴하게 노동력을 구매하는지, 어떻게 거만함에서 돈이 나오는지 등을 직접 봤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금융계 종사는 더 이상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정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미초타키스 총리에 맞설 수 있는 적임자라는 주장을 폈다. “영어 실력과 사업 수완, 학위 측면에서 더욱 우월하다”는 이유에서다. 카셀라키스는 “그리스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선 기득권자와 맞서 싸워야 한다”며 변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영상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고, 정치 경험이 전무한 신예 카셀라키스는 단숨에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패션부터 식습관, 운동 루틴까지 사생활 하나하나가 기사화됐다. 석 달 전 2차 총선에서 재외 후보로 출마했다가 소리소문없이 낙선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게시한 지 19일 뒤 시행된 1차 투표에서 카셀라키스는 악치오글로 전 장관(36%)을 꺾고 득표율 1위(45%)에 올랐다.

스타티스 칼리바스 옥스퍼드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그는 무명의 출마자였고, 정‧재계 어디에서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시리자를 포함한 그 어느 곳에서도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다”며 “사실 아주 최근까지 그는 아무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좌파 성향의 작가 디미트리스 파라스는 가디언에 “넷플릭스가 당을 장악하고 연재 시리즈를 만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사람들은 그(카셀라키스)의 정치가 어떤 것인지, 그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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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와 반(反)자본주의 사상에 뿌리를 둔 시리자를 카셀라키스가 이끌게 된 건 대이변이다. 카셀라키스는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서 트레이더로 일했고, 그 이후로는 해운업에 종사하며 자산 규모를 불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그는 동성애자이며, 미국인 간호사 타일러 맥베스와 결혼했다. 10대 시절 수학 경시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장학금을 받고 미국 메사추세츠의 명문 기숙학교 필립스 아카데미에 진학한 뒤 줄곧 미국에서 지내 온 그리스계 미국인이기도 하다.

카셀라키스는 시리자가 재집권하기 위해선 미국 민주당을 모방해 ‘중도 좌파’의 이미지를 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가능한 한 빨리 미국의 공식을 따라 ‘빅텐트(더욱 다양한 견해를 아우르는 조직)’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08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카셀라키스는 공공‧민간 근로자에 대한 과감한 세금 감면, 정교분리, 사법 개혁, 이주 아동들에 대한 시민권 부여, 동성 결혼 합법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1940년대 내전 직후 공산주의자들이 단체로 투옥됐던 에게해 마크로니소스섬을 방문하는 등 좌파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도 보였다. 그러나 시리자 내에선 그의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한 분위기다.

스테파노스 츠호마카스 의원은 “올리가르히(신흥 재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구축한 부패 시스템의 일부”라고 비판했다. 디미트리스 리아코스 의원은 “치프라스 전 총리가 구축했던, 정치 신인을 기대하는 당내 분위기를 영리하게 활용한 사례”라고 말했다. 15년 전 치프라스 전 총리는 34세의 나이에 시리자 대표에 올랐던 바 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