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번의 마룻바닥 콘서트…21년간 그려낸 '클래식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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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선애 스무살 하콘 기획자 노트
출근 전에 수영장에 간다. 7년을 꼬박 수영장에 발도장을 찍었지만,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정체기가 꽤 오랜 기간 지속되며 그나마 남은 흥미도 사그라들려는 찰나, 드디어 다음 반으로 올라가게 됐다. 그런데 어쩐지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새로운 레인에서는 10바퀴 이상을 쉼 없이 도는 것으로 워밍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숨이 차지 않고 오래, 길게 수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튜브를 찾아보고, 연습하며 터득한 ‘긴 수영의 방법’은 이렇다.
일단 몸에 힘을 빼야 한다. 발차기 속도는 기존의 절반으로 줄이고, 온몸에 힘을 뺀 상태로 몸을 띄운 채 앞으로 나아간다. 속도를 내기 위해 발을 빨리 차거나 물밖으로 과하게 머리를 젖힌다면, 금세 숨이 가빠 올 것이다. 일정한 호흡의 리듬이 무너지면 긴 수영을 하기 어렵다. 또한, 코어를 잘 잡아야 한다. 코어가 무너지면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몸이 가라앉게 된다. 몸이 가라앉으면 쓰는 에너지만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고, 몸에 힘이 들어가며 호흡의 리듬이 무너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날쌘 물개 같은 수영 고수의 비법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수영장에 나오는 것에 있었다.
“힘을 빼고, 균형을 유지한 채, 호흡의 리듬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꾸준히.”
나는 긴 수영의 방법을 몸으로 터득해 나가며 하우스콘서트를 떠올렸다. 하콘의 스태프로, 또 매니저로 20년 가까이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익혀왔던 것이 수영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론화된 듯한 느낌이었다. 1000회 하우스콘서트를 맞기까지 21년. 그 오랜 기간 단 한 번도 공연의 흐름이 끊긴 적이 없었던 것은 그럴 만한 상황이 뒷받침되었던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가고자 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초창기 연희동 집을 나와 많은 공간을 이동하며 지낸 숱한 어려움 속에도, 하콘의 사무실에 화재가 나고 공간의 냉방 기기가 작동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자연재해에도, 팬데믹 시기에도… 하우스콘서트의 호흡은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하고, 우리와 비슷한 공연을 만드는 공간에서 조언을 구해오기도 하는데, 그저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다만, 그 꾸준함 속에서 일관성 있게 지켜온 하콘의 주요 원칙을 말하자면 이렇다. ① 관객은 마룻바닥에 앉는다 | 비슷한 형식의 다른 공연이 많이 생겼어도 마룻바닥에 방석을 놓고 앉는 방식은 하우스콘서트를 규정짓는 시그니처다. 일반 공연장과 비교하자면 불편한 것이 당연하지만, 의자에 앉아서는 느끼기 어려운 음의 진동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② 모든 공연은 사진, 녹음, 영상으로 기록한다 | 하우스콘서트는 1회부터 모든
공연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 하콘 사무실에 화재가 났을 때 가장 먼저 체크한 것이 바로 이 아카이빙이었다. 6mm 테이프부터 외장하드까지 기록 방식의 변화에서마저 느껴지는 20년사 그 자체다.
③ 공연 후 와인파티 |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연주자와
관객이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게 되는데, 공연 후의 와인파티는 이들이 보다 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때로는 와인파티에서 연주자나 관객들이 직접 연주를 펼치는 3부 공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④ 초대권 없는 공연 | 하우스콘서트에는 초창기부터 초대권이 없었다. 출연하는
연주자에게만 일부 제공하던 것조차도 이제는 완전히 없앴다. 공연의 관람료를
지불하고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⑤ 개런티는 입장료의 절반 | 마찬가지로 1회 하우스콘서트부터 유지해 온 원칙
이다. 관객이 많이 온 날은 연주자에게 돌아가는 개런티가 많도록 했다. 수용할
수 있는 관객의 규모에 한계가 있다 보니, 만석이더라도 개런티가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점은 늘 미안한 부분이다.
⑥ 연주자의 프로필만을 믿지 않는다 | 어떻게 하면 하우스콘서트에 설 수 있냐는 연락을 많이 받는데, 이때 프로필과 함께 꼭 확인하는 것이 연주 실황이다. 화려한 프로필에 연주 실력이 못 미치는 경우도 있지만, 신예 연주자들에게서 가능성을 보기도 한다. 작년에 영국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하콘에 연락을 해와서 오는 11월 공연을 잡았다. 이 친구는 2023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일관된 지속성. 하우스콘서트가 1000회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같은 일을 꾸준히,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지속해 나가며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21년간 그려온 기나긴 파노라마에 함께해 준 4700명의 연주자와 5만여 명의 관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10바퀴의 고지를 한 번 뛰어넘으면, 15바퀴, 20바퀴… 더 길게 나아갈 수 있는 긴 수영의 그 호흡처럼, 앞으로도 우리의 리듬을 잃지 않고 천천히 발전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또한 함께 전한다.
일단 몸에 힘을 빼야 한다. 발차기 속도는 기존의 절반으로 줄이고, 온몸에 힘을 뺀 상태로 몸을 띄운 채 앞으로 나아간다. 속도를 내기 위해 발을 빨리 차거나 물밖으로 과하게 머리를 젖힌다면, 금세 숨이 가빠 올 것이다. 일정한 호흡의 리듬이 무너지면 긴 수영을 하기 어렵다. 또한, 코어를 잘 잡아야 한다. 코어가 무너지면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몸이 가라앉게 된다. 몸이 가라앉으면 쓰는 에너지만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고, 몸에 힘이 들어가며 호흡의 리듬이 무너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날쌘 물개 같은 수영 고수의 비법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수영장에 나오는 것에 있었다.
“힘을 빼고, 균형을 유지한 채, 호흡의 리듬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꾸준히.”
나는 긴 수영의 방법을 몸으로 터득해 나가며 하우스콘서트를 떠올렸다. 하콘의 스태프로, 또 매니저로 20년 가까이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익혀왔던 것이 수영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론화된 듯한 느낌이었다. 1000회 하우스콘서트를 맞기까지 21년. 그 오랜 기간 단 한 번도 공연의 흐름이 끊긴 적이 없었던 것은 그럴 만한 상황이 뒷받침되었던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가고자 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초창기 연희동 집을 나와 많은 공간을 이동하며 지낸 숱한 어려움 속에도, 하콘의 사무실에 화재가 나고 공간의 냉방 기기가 작동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자연재해에도, 팬데믹 시기에도… 하우스콘서트의 호흡은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하고, 우리와 비슷한 공연을 만드는 공간에서 조언을 구해오기도 하는데, 그저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다만, 그 꾸준함 속에서 일관성 있게 지켜온 하콘의 주요 원칙을 말하자면 이렇다. ① 관객은 마룻바닥에 앉는다 | 비슷한 형식의 다른 공연이 많이 생겼어도 마룻바닥에 방석을 놓고 앉는 방식은 하우스콘서트를 규정짓는 시그니처다. 일반 공연장과 비교하자면 불편한 것이 당연하지만, 의자에 앉아서는 느끼기 어려운 음의 진동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② 모든 공연은 사진, 녹음, 영상으로 기록한다 | 하우스콘서트는 1회부터 모든
공연을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 하콘 사무실에 화재가 났을 때 가장 먼저 체크한 것이 바로 이 아카이빙이었다. 6mm 테이프부터 외장하드까지 기록 방식의 변화에서마저 느껴지는 20년사 그 자체다.
③ 공연 후 와인파티 |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연주자와
관객이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게 되는데, 공연 후의 와인파티는 이들이 보다 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때로는 와인파티에서 연주자나 관객들이 직접 연주를 펼치는 3부 공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④ 초대권 없는 공연 | 하우스콘서트에는 초창기부터 초대권이 없었다. 출연하는
연주자에게만 일부 제공하던 것조차도 이제는 완전히 없앴다. 공연의 관람료를
지불하고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⑤ 개런티는 입장료의 절반 | 마찬가지로 1회 하우스콘서트부터 유지해 온 원칙
이다. 관객이 많이 온 날은 연주자에게 돌아가는 개런티가 많도록 했다. 수용할
수 있는 관객의 규모에 한계가 있다 보니, 만석이더라도 개런티가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점은 늘 미안한 부분이다.
⑥ 연주자의 프로필만을 믿지 않는다 | 어떻게 하면 하우스콘서트에 설 수 있냐는 연락을 많이 받는데, 이때 프로필과 함께 꼭 확인하는 것이 연주 실황이다. 화려한 프로필에 연주 실력이 못 미치는 경우도 있지만, 신예 연주자들에게서 가능성을 보기도 한다. 작년에 영국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하콘에 연락을 해와서 오는 11월 공연을 잡았다. 이 친구는 2023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일관된 지속성. 하우스콘서트가 1000회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같은 일을 꾸준히,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지속해 나가며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21년간 그려온 기나긴 파노라마에 함께해 준 4700명의 연주자와 5만여 명의 관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10바퀴의 고지를 한 번 뛰어넘으면, 15바퀴, 20바퀴… 더 길게 나아갈 수 있는 긴 수영의 그 호흡처럼, 앞으로도 우리의 리듬을 잃지 않고 천천히 발전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또한 함께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