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안주는 없나요?" 양평 읍내에 재즈 바를 열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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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남무성의 재즈와 커피 한잔
내가 살고 있는 양평 읍내에 (아주) 작은 LP바를 열었다. 화장실 주방까지 다 합쳐서 15평 사이즈라 직원을 두지 않고 혼자서 도맡아 한다. 주문을 받고 음악도 틀고 간단한 안주를 만든다. 안주라고 해봐야 방울토마토나 치즈, 크래커 정도를 내놓는 수준이다. 수목금토 4일만 문을 열기로 하고 소일거리 삼아 그럭저럭 해내고 있다. 입구에는 'Jazz Bar'라고 써놓았다.
일본여행을 갔을 때 작은 재즈카페들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손님 대여섯 명이면 차는 공간에서 자작거리는 LP 판을 돌리고 맥주를 내놓는 곳, 빈티지 오디오 사운드가 안주를 대신 한다. 전통식 다방에서 재즈를 듣는 재즈 킷사텐(喫茶店)도 있다.
아침 일찍부터 조용히 차나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중장년층이 주손님들이다. 1950년대의 모던재즈가 흐르고 주인은 지금 돌고 있는 LP의 재킷을 카운터에 세워놓는다. 어떤 음악인지 궁금하면 그쪽을 쳐다보면 된다. LP판의 한 면이 다 돌아갈 때까지 그냥 쭉 듣는다. 모든 게 자연스럽다. 그때 언젠가 나도 이런 걸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 부근에도 재즈 바들이 있다. 해가 뉘엿해지는 오후시간에 언덕 위 노천카페에서 홍합안주로 생맥주를 마시고 내려오는 길에 재즈가 들린다. 빨간 거리에서 듣는 재즈가 샹송 같다는 착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 듣는 재즈는 엔카처럼 들리기도 했다. 양평에서 흐르는 재즈는 어떨까? 내가 문을 연 바에선 모던재즈를 주로 틀고 있다. 현대재즈에 비해 구수한 맛이 마치 사골국 같다. 로큰롤이 세상을 지배하는 1960년대를 전후해서 재즈도 깔끔한 연주로 단정해졌다. 직전의 비밥재즈가 헝클어진 산발머리 같았다면 모던재즈는 '로마의 휴일' 그레고리 펙의 2대 8 가르마다. 이른바 하드밥과 소울재즈, 쿨재즈가 모던재즈다. 그런데 사실 모던재즈는 야수의 발톱을 숨겨놓은 재즈다. 그것은 때로 현란한 즉흥연주로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쓰면 지방도시에서 재즈 바라니, 나름 근사한(?) 걸 하는구나 싶겠지만 아직은 그저 적응기간이다. 양평읍내에 딱히 LP바가 없고 더구나 재즈를 본격적으로 들려준다는 곳도 처음 문을 연 셈이다. 그게 신기한지 심심치 않게 손님이 들어온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소리가 시끄러워서 조금 있다가 나가는 사람도 있고 너무 좋다며 단골이 되기도 한다. 메뉴판을 한참 보다가 “국물 같은 거 없나요?” 물어볼 때는 난감해진다.
한번은 80세가 넘은 어르신 한분이 들어오면서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데 이런 게 생겼네?”하며 다짜고짜 신청곡을 한다. “덕 오브 바이 라는 거 있어요. 바비킴이 부른 거”
“바비킴이요? 한국 가수 말씀이신가요?”
“아니, 바비킴을 몰라? 재즈?”
나도 연식이 제법 되다보니 까마귀 같을 때가 많다.
그러다 전구가 켜졌다. ‘이 분이 비비킹(B.B. KIng)을 찾는 구나’
이럴 경우 눈치껏 곡을 들려드리면 되지만 ‘Dock of the Bay’가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노래라 헷갈리신 부분을 바로잡아드리고 LP판을 틀었더니 “옳거니!” 무릎을 친다. 재즈는 아니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 않다. 흑인 소울 가수 오티스 레딩은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때문에 후반부 가사는 임시로 불러놓았던 휘파람소리로 발매되었다. 사후 발표된 이 곡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추천곡 : 오티스 레딩의 ‘(Sittin' On) Dock of the Bay’
한 날은 젊은 부부가 가게에 들어와서 색소폰 연주자 “행크 모블리의 <Soul Station> LP있나요?” 물어본다. 멋진 하드밥 앨범이다. 꺼내서 보여주었더니 이 LP의 초반(1960년 발매)을 구하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고민 중이라며 외국 사이트에서 300달러쯤 하고 있단다. 비싸게라도 구하고 싶은 거라면 말릴 바 없지만 “재발매 음반을 사고 그 돈으로 여러 장의 음반을 더 사라”고 조언해주었다. 물론 나는 초반을 아주 오래전에 싸게 구했다.
간혹 음반을 우표 수집하듯이 모으는 친구들이 있다. 내가 <재즈 라이프>라는 책에서 유튜브를 활용하라고 쓴 건 더 많은 음악을 들어보자는 이유였다. 오디오에 빠진 사람들 중에도 정작 음악 자체에 비중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소리만 듣는다) 스피커 선 하나에 수십만 원짜리를 지를지 말지 한 달간 고민하는 시간에 음악을 적당히 즐기라는 얘기다. 그 젊은 부부가 내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천곡 : 행크 모블리의 – Remember
가게를 열고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라면 바에 앉은 손님들이 내가 쓴 <재즈 라이프>를 들고 와서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벌였던 일이다. 책을 달달 외웠는지 대화가 줄줄이 익숙하고 음악도 쉴 틈 없이 신청했다. 나로서는 참 반가운 일이었다. 그들은 나를 (당연히) 몰라봤지만 이곳에서 독자를 본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등에 식은땀이 나도록 신청곡을 모두 들려주었다. 음악을 틀며 “이거 맞지요?” 라고 하면 “들어보세요. 이런 저런 면이 좋습니다”라고 설명까지 해준다. 마리아 슈나이더에서 벤 웹스터까지, 덕분에 온갖 재즈를 함께 들으면서 재즈 바다운 면모(?)를 보여준 시간이었다.
양평 읍내에서의 재즈, 의외로 선수들이 많아서 더 흥미진진해진다.
일본여행을 갔을 때 작은 재즈카페들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손님 대여섯 명이면 차는 공간에서 자작거리는 LP 판을 돌리고 맥주를 내놓는 곳, 빈티지 오디오 사운드가 안주를 대신 한다. 전통식 다방에서 재즈를 듣는 재즈 킷사텐(喫茶店)도 있다.
아침 일찍부터 조용히 차나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중장년층이 주손님들이다. 1950년대의 모던재즈가 흐르고 주인은 지금 돌고 있는 LP의 재킷을 카운터에 세워놓는다. 어떤 음악인지 궁금하면 그쪽을 쳐다보면 된다. LP판의 한 면이 다 돌아갈 때까지 그냥 쭉 듣는다. 모든 게 자연스럽다. 그때 언젠가 나도 이런 걸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 부근에도 재즈 바들이 있다. 해가 뉘엿해지는 오후시간에 언덕 위 노천카페에서 홍합안주로 생맥주를 마시고 내려오는 길에 재즈가 들린다. 빨간 거리에서 듣는 재즈가 샹송 같다는 착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 듣는 재즈는 엔카처럼 들리기도 했다. 양평에서 흐르는 재즈는 어떨까? 내가 문을 연 바에선 모던재즈를 주로 틀고 있다. 현대재즈에 비해 구수한 맛이 마치 사골국 같다. 로큰롤이 세상을 지배하는 1960년대를 전후해서 재즈도 깔끔한 연주로 단정해졌다. 직전의 비밥재즈가 헝클어진 산발머리 같았다면 모던재즈는 '로마의 휴일' 그레고리 펙의 2대 8 가르마다. 이른바 하드밥과 소울재즈, 쿨재즈가 모던재즈다. 그런데 사실 모던재즈는 야수의 발톱을 숨겨놓은 재즈다. 그것은 때로 현란한 즉흥연주로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쓰면 지방도시에서 재즈 바라니, 나름 근사한(?) 걸 하는구나 싶겠지만 아직은 그저 적응기간이다. 양평읍내에 딱히 LP바가 없고 더구나 재즈를 본격적으로 들려준다는 곳도 처음 문을 연 셈이다. 그게 신기한지 심심치 않게 손님이 들어온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소리가 시끄러워서 조금 있다가 나가는 사람도 있고 너무 좋다며 단골이 되기도 한다. 메뉴판을 한참 보다가 “국물 같은 거 없나요?” 물어볼 때는 난감해진다.
한번은 80세가 넘은 어르신 한분이 들어오면서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데 이런 게 생겼네?”하며 다짜고짜 신청곡을 한다. “덕 오브 바이 라는 거 있어요. 바비킴이 부른 거”
“바비킴이요? 한국 가수 말씀이신가요?”
“아니, 바비킴을 몰라? 재즈?”
나도 연식이 제법 되다보니 까마귀 같을 때가 많다.
그러다 전구가 켜졌다. ‘이 분이 비비킹(B.B. KIng)을 찾는 구나’
이럴 경우 눈치껏 곡을 들려드리면 되지만 ‘Dock of the Bay’가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노래라 헷갈리신 부분을 바로잡아드리고 LP판을 틀었더니 “옳거니!” 무릎을 친다. 재즈는 아니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 않다. 흑인 소울 가수 오티스 레딩은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때문에 후반부 가사는 임시로 불러놓았던 휘파람소리로 발매되었다. 사후 발표된 이 곡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추천곡 : 오티스 레딩의 ‘(Sittin' On) Dock of the Bay’
한 날은 젊은 부부가 가게에 들어와서 색소폰 연주자 “행크 모블리의 <Soul Station> LP있나요?” 물어본다. 멋진 하드밥 앨범이다. 꺼내서 보여주었더니 이 LP의 초반(1960년 발매)을 구하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고민 중이라며 외국 사이트에서 300달러쯤 하고 있단다. 비싸게라도 구하고 싶은 거라면 말릴 바 없지만 “재발매 음반을 사고 그 돈으로 여러 장의 음반을 더 사라”고 조언해주었다. 물론 나는 초반을 아주 오래전에 싸게 구했다.
간혹 음반을 우표 수집하듯이 모으는 친구들이 있다. 내가 <재즈 라이프>라는 책에서 유튜브를 활용하라고 쓴 건 더 많은 음악을 들어보자는 이유였다. 오디오에 빠진 사람들 중에도 정작 음악 자체에 비중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소리만 듣는다) 스피커 선 하나에 수십만 원짜리를 지를지 말지 한 달간 고민하는 시간에 음악을 적당히 즐기라는 얘기다. 그 젊은 부부가 내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천곡 : 행크 모블리의 – Remember
가게를 열고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라면 바에 앉은 손님들이 내가 쓴 <재즈 라이프>를 들고 와서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벌였던 일이다. 책을 달달 외웠는지 대화가 줄줄이 익숙하고 음악도 쉴 틈 없이 신청했다. 나로서는 참 반가운 일이었다. 그들은 나를 (당연히) 몰라봤지만 이곳에서 독자를 본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등에 식은땀이 나도록 신청곡을 모두 들려주었다. 음악을 틀며 “이거 맞지요?” 라고 하면 “들어보세요. 이런 저런 면이 좋습니다”라고 설명까지 해준다. 마리아 슈나이더에서 벤 웹스터까지, 덕분에 온갖 재즈를 함께 들으면서 재즈 바다운 면모(?)를 보여준 시간이었다.
양평 읍내에서의 재즈, 의외로 선수들이 많아서 더 흥미진진해진다.